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내란수괴 윤석열과 극우세력의 졸개로 전락했다. 지난 2월 10일, 인권위는 제2차 전원위원회를 열어 윤석열 등 내란죄 피의자들의 방어권 보장을 주요 골자로 하는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관련 인권침해 방지 대책 권고’를 6대4로 통과시켰다. 한술 더 떠서 18일에는 내란 가담 군 장성들의 인권을 보호하라는 결정까지 내렸다. 고 변희수 하사 재단 설립 안건은 9개월을 끌다 결국 반려시켜버린 것과 너무나도 대조되는 행태다. 안 그래도 정권 내내, 윤석열이 임명한 안창호(위원장), 김용원·이충상(상임위원)은 온갖 막말과 추태를 쏟아내고 태업으로 일관하더니 결국 선을 넘어도 단단히 넘었다. 안창호는 물론 ‘인권’을 논할 자격 없는 자들은 모두 인권위를 당장 떠나야 마땅하다.
이렇게 극우화된 인권위를 바로잡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민사회에서 커지고 있다. 그런데 시민사회연대체가 이번 안창호 인권위의 결정을 규탄하며 던진 구호 중 하나가 바로 인권위 “정상화”다. 인권위 “정상화”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이며, “정상화”는 가능할까?
이명박근혜 시절에도 인권위는 정상이 아니었다
살펴보면, 극우 세력이 인권위를 손쉽게 장악할 수 있던 것은 인권위원을 임명하는 권한 주체가 대통령(4인), 대법원장(3인), 국회(여야 각 2인)이기 때문이다. 민의의 선택과 압력을 직접 받지 않아 얼마든지 엇나갈 수 있는 대법원장은 물론이고, 대통령과 국회 역시 자신들의 성향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이 위원을 임명할 수 있다. 실제로 정권의 입맛에 따라 인권위의 성격은 이리저리 변모해 왔다. 이명박근혜 시절, 무려 6년(2009~2015)을 인권위원장으로 재직한 현병철은 “깜둥이”, “야만족” 등의 혐오발언을 공개적으로 일삼았고, 용산참사·세월호참사·민간인 사찰 등의 사건에서 침묵하거나 면죄부를 주어 정권에 충실히 복무했다. 윤석열 정부의 인권위가 최소한의 역할조차 똥통에 빠뜨려서 그렇지, ‘무력화된 인권위’, ‘권력자의 이익을 지키는 인권위’의 칭호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당 정부에서의 인권위는?
그렇다면, 민주당 시절의 인권위는 어땠을까? 일각에서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인권위가 우리 사회의 인권 이슈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제대로 된 역할을 하던 정상적인 시기였다고 평가한다. 당장 많은 사람들이 이번 인권위의 변희수재단 설립 방해 공작을 보며, 문재인 정부 시절 인권위가 고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 긴급 구제신청을 받아들인 일을 떠올릴 것이다. 이처럼 인권위는 국가기관 여기저기서 거부당한 약자들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자, 자원이 별로 없는 인권운동의 입장에서도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우리 편’이라는 인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 이미지를 걷어내고, 실상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본다면 어떨까?
국힘의 인권위가 국힘의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 않는 ‘후진’ 인권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민주당의 인권위 역시 민주당의 인권 의식과 걸음을 맞추며 그에 어긋나지 않으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민주당 정부에서 외면받거나, 우선순위에서 벗어난 ‘인권’ 의제는 인권위에서도 비슷한 대접을 받기 일쑤였다.
민주당 시절의 인권위는 출범부터 제도화를 통한 ‘인권운동 길들이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독립성, 자율성을 보장받은 기구로서 실효성 있는 ‘인권 바로잡기’를 원하던 시민들의 열망과 다르게, 김대중 정부는 애당초 인권위 법을 누더기로 만들어 권한을 축소시켰다. 또한, 김대중-노무현의 인권위는 장애, 이주, 비정규직 등의 인권 이슈에 대해 머뭇거리거나, 후퇴하는 입장을 내기도했다. 그래서 한 때는 전장연, 이주노조 등의 점거농성이 줄을 이었다. 실제로 출범 이후 5년간(2002~2007) 이뤄졌던 인권위 점거 기간은 352일로서 약 1년에 달했다. 이는 정상적인 시절이었다고 낭만화되는 인권위의 모습과 거리가 매우 있어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인권위 역시 동성애자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종종 머뭇거렸다. 문재인 정부는 출발부터 이명박근혜가 파탄 낸 인권위의 위상을 회복하겠다고 천명하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인권위의 기능적인 역할, 구성 등을 “정상화” 했을지라도, 핍박받는 동성애자의 인권 문제는 끝끝내 사회적 합의(사실상 ‘방치’)의 영역으로 격하시켰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2019년 영국에서 동성혼 관계로 인정받은 한국인-영국인 동성커플의 결혼이민비자 신청을 법무부가 거부하자, 이에 대한 차별 진정을 무시해버렸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성소수자 차별을 용인한 것이다.
인권위 권고의 효과
가장 큰 문제는 설사 인권위가 ‘좋은’ 권고나 입장을 낸다고 하더라도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고, 사회 안에서 ‘소수의견’으로서 주변적 위치를 점할 뿐이라는 것이다. 인권위가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 철회 권고를 하여도, 파병은 철회되지 않았다. 인권위가 2004년 국가보안법에 대해 폐지 권고를 하여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우리의 ‘인권’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 2020년 고 변희수 하사의 강제전역에 대한 인권위의 구제명령도 마찬가지였다. 국방부는 ‘강제성이 없다’며 인권위의 결정을 무시했고,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 역시 전역 심사를 앞두고 철저히 침묵을 유지했다.
이렇게 한계가 있는 권고임에도, 민주당 정부가 임명한 인사들이 주도하는 인권위의 ‘좋은’ 결정은 민주당 정부를 인권 친화적인 정부, 국힘 정부보다는 ‘말이 통하는’ 정부로 올려치기 하는 매력적인 재료로 활용된다. 역사적으로 민주당 정권은 인권위의 이미지를 활용하되, 인권위의 입장을 실제로는 수용하지 않는 투-트랙으로서 국힘에 대비되는 환상과 알리바이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환상은, 민주당 정부의 반인권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단체들이 계속해서 ‘차악론’으로서 민주당과 동맹하는 구도를 만들어 낸다. 만일 인권위 “정상화”의 실천적 의미가 결국 국힘의 인권위 대신 민주당 정권 하의 인권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라면, 민주당의 인권 감수성 너머를 지향하더라도 민주당의 집권에 배팅하는 전략을 세울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인권위가 아닌, 인권이다
인권위가 정권에 따라 인권-워싱의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극우 세력의 졸개로 변모하는 것은 결국 국가 권력 그 자체의 한계 때문이다. 각 정부는 힘 있는 기득권과 연대하면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한 조직적 수단 중 하나로 인권위를 활용한다. 인권위는 인권 운동의 요구 일부를 국가가 수용하는 모양새를 보임으로써(어차피 강제 조치는 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주류 제도권 정치와 기성 사회질서가 가진 정당성을 공고히하는 구실을 한다. 국가 권력에 정치적으로 종속된 인권위는 이러한 본질적 한계를 쉽게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인권위가 일부 인권 친화적인 기능을 수행하더라도, 차별과 억압에 고통받는 현실을 바꾸자는 시민들의 압도적인 목소리가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국가 권력이나 그와 동맹한 기업 입장에선 인권위를 깡그리 무시하면 그만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인권위가 ‘닉값’을 제대로 하도록, 더 나은 인권위가 되도록 요구하고 비판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다만, 설사 지금의 인권위가 “정상화”되더라도, 그 칼날은 무딜 수밖에 없다는 본질적 한계를 인지하면서 국가 기구나 기관에 수렴되지 않는 관점으로 대중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따라서 인권위의 정상화와 민주당의 집권을 위해서 민주당의 잘못과 한계를 비판하는 것을 망설이거나, 독립적 정치 대안의 가능성을 질식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단지 인권위의 “정상화”가 아닌 차별과 억압이 사라진 사회를 만드는 것이며, 이는 결국 평등 사회를 원하지 않는 권력자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만큼의 압도적인 힘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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