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클하다 진실 고백한 이재명 – 개혁을 원한다면 “중도보수” 정당에 기대지 말아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이하 직위 생략)가 기득권 세력을 향한 ‘고백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성장 중시’, ‘실용주의’ 같은 말들을 이어 가더니, 어느 새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 자산 과세 유예, 상속세 완화 등까지 발표했다. 이재명은 반도체특별법에 대해서도 주52시간 제한 예외 조항을 두는 것을 처음 찬성했다가, 반발이 크자 입장을 어수선하게 주워담았다. 그리고 어제 이런 모든 행동이 민주당의 본래 정체성, “중도보수”에 부합한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말 잔치조차 안 하겠다는 언행일치

이재명의 우클릭은, 윤석열 내란 이후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길 바라는 대중에 대한 무시이자 배신 행위다. 그는 진보적 시민들을 완전히 잡은 토끼 취급하고 있다.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머무르자, 중도-보수층 지지까지 끌어내야 안정적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전형적 선거 논리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재명은 단순히 유권자 개개인이 아니라, 이 사회의 가장 보수적인 집단에게 잘 보이는 일에 여념이 없다.  “기업이 앞장서고 국가가 뒷받침해 다시 성장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공언하고(1월 23일), 재벌들을 직접 만나 “기업인, 경제인들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다”(2월 5일)고 러브콜을 보냈다. 국가를 운영하려면 경제권력자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익숙한 논리, 노동자 서민의 권익은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겨운 알리바이가 벌써부터 들려오는 듯하다.

▲ 극우정당과 “중도보수” 정당이 서로 자신들이 진짜 기업편이라고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우클릭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 행위의 실질이 무엇인지도 직시해야 한다. 이재명은 지금 민주당을 진보적 실천에서 보수적 실천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민주당이 그동안 지지층 관리를 위해 써 온 ‘진보’라는 포장지를 과감히 떼고, 실천에 걸맞게 보수적 언어를 당당히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중도보수” 선언은 분명 진실을 담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돌아보았을 때, 민주당 정권이 “진보”라는 수사에 맞는 어떤 실천을 해왔는가? 이들 정부는 국민의힘 계열 정부와 함께 지난 이삼십 년 간 한국 사회에 승자독식 신자유주의 경쟁 질서를 뿌리내리게 한 책임자들이었다.

민주당 ‘진보’ 정권의 실천

당장 촛불의 힘 덕에 당선되었던 문재인 정부조차 최저임금 1만원을 공언했다 금세 말을 바꿨다. 차별금지법은 ‘나중에’ 할 일로 치부했다. 노동시간 단축 공약은 온갖 유연근로시간 제도 도입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자회사 정규직화’라는 꼼수로 무늬만 바꿨다. 그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되려 늘어나고(2017년 전체 임금근로자의 32.9%에서 2021년 38.%로 증가),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격차는 23.9배(2018년)에서 25.6배(2022년)배로 뛰어올랐다.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고, 근로 의욕을 잃은 사람들은 도박이나 다름없는 주식과 코인 투자에 뛰어들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포함한 국정농단 세력은 슬그머니 가석방과  특별사면으로 풀어줬고, 5년 동안 대기업에 4조 원이나 감세해줬다. 눈물 흘리며 “원전 제로”를 외쳤지만, 탈원전 공약도 쉽게 폐기 했다.

민주당은 종종 선거 시기에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운동에 몸담았던 인사들을 영입하곤 했지만, 이들은 가끔 민주당을 ‘빨간 칠’ 할 뿐, 민주당을 ‘진보정당’으로 만들지 못했다. 당의 핵심 기반과 가치 지향이 시장경제와 대기업을 거스르는 데 있지 않고,제도 정치 자체가 이런 압력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동가 출신 정치인들도 결국 여기에 굴복했다. 이러한 개혁 배신에서 온 대중의 실망감은, 정치에 대한 환멸감을 키우고 사회 변화에 대한 희망을 잃게 만들었다. 일부 청년들이 허울뿐인 ‘경쟁의 공정성’을 정의라고 믿게 된 것도, 극우가 급격히 힘을 불린 것도 이런 사회적 경험들이 쌓인 대가였다.

대통령 이재명의 미래

지금 이재명의 노골적인 우경화 행보 역시 남태령 투쟁 이후 간신히 소생하던 아래로부터의 개혁 열망에 또 찬물을 끼얹을 것은  분명하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바로 이런 시기에 민주당을 넘어선 독립적인 정치 대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재명도 말했듯이, “민주노동당이나 정의당 같은 곳들이 진보”를 내건 세력들이었지만, 지난 20년 동안 이들은 크게 약화됐다. 아프게 돌아보자면, 이는 이들 정당 또한 주류 사회질서와 제도정치의 논리에 적응해온 탓이다. 진보정당은 민주당의 위선을 폭로하면서 독립적으로 활동하기보다, 의석 수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민주당과 타협하며 주류 정치 내의 지분을 넓히는 일에 집중했다. 정당들 뿐 아니라,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 상당수도 지난 10년 동안 민주당 내 ‘진보’ 국회의원 분파에게 의존하고 운동 건설은 부차화하는 경향으로 기울었다. 마치 미국이 그러하듯이, 한국 역시 사회운동과 민주당 사이 담장이 무서울 정도로 낮아져 왔다.

시장경제와 의회 정치의 논리를 넘어서서, 대중의 불만을 과감하게 대변하려는 세력의 빈 자리가 사무치게 아쉽다. 대중의 직접 행동을 조직하고 그 행동을 급진화하려는 흐름이 전략의 중심으로 복원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전과 달리, 벌써부터 아무 기대도 갖지 말라고 경고하는 이재명이 등장한 지금 이런 방향성은 더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당선한 이재명은 경제 위기와 트럼프 정부의 등장을 내세워 집권 초 부터 지배계급을 위한 ‘사회대개혁’으로 질주하려 할 수 있다. 그는 한 손으로 자신이 싫으면 국민의 힘을 상대해야 한다는 채찍을 휘두를 것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대화와 합의’를 거쳐 개혁의 내용을 채우자는 당근을 던지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민주당과의 타협이 아닌 대중 투쟁으로 개혁을 얻어낸다는 관점이 없다면, 우리는 또다시 초라한 무늬만 개혁의 대가로 크나큰 양보를 강요받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이 이변없이 탄핵되더라도, 진정한 개혁으로 가는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아마 개혁을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선에서 국힘에 반대해 민주당에게 투표할 것이다. 그러나 제한적 선택지 뿐인 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하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관점에서 선거 이후를 바라보느냐, 선거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회변화를 염원하는 시민과 노동자, 활동가들은 민주당에 기대를 걸고 그들과 제휴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선명한 주장으로 연대와 지지를 구하며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독립적인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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