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9월 MBC 소속 아나운서가 직장내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이번해 가해자에게 민사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직장내괴롭힘 사안은 보통 형사처벌이 불가하며 회사의 징계 처리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처벌 가능한 법으로는 노동관계법이 있는데, 폭언 폭력 비정규직차별 등이 발생한 경우 해당된다. 이번 사건의 경우 여론의 압력으로 고용노동부가 MBC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해 사건 처리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남은 고비가 많다. 고인은 프리랜서 계약이라는 직종의 특수성으로 노동자성 문제를 먼저 다투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으로 프리랜서 등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도 직장내괴롭힘 규정을 적용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법적으로 노동자인지 여부를 증명하는 책임을 사업주에게 부여하는 내용도 있다. 이와같은 흐름은 사건 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계와 서열, 성별, 고용형태 등에 의한 괴롭힘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괴롭힘이 용인되는 조직
중요한 건 괴롭힘을 가능케 하는 조직내 위계질서, 괴롭힘이 발생해도 괜찮은 조직문화다. 개인은 조직에 소속되어, 조직에서 이탈당하지 않도록 조직에 자리잡혀있는 문화에 자신을 맞추기 마련이다. 물론 문제적 조직문화를 방관하지않고, 불이익을 감수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용감한 개인 또는 무리도 있지만,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는 아니다. 회사의 고위직들의 입장에서는 조직 내 분란이 생기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이들은 상명하복, 집단주의 문화를 부추기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의 편에 선다. 이런 권력관계가 유지되어야 조직을 입맛대로 ‘통솔’할 수 있고, 그것이 회사의 이윤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결국 가해자는, 이런 조직문화에 흡수되어 이 조직 내에서 누군가를 괴롭혀도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문제를 찾아내고 잘라낼 수는 있다. 하지만 잘라내는 것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그 뿌리를 뽑아내는 일이 원칙임은 분명하다. 괴롭힘 사건은 조직이 변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사망 후 사건 해결도 중요하지만 사건이, 누군가의 사망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
직장 내에서 위계나 서열이 생기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고용형태에서 극대화되곤 한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도 문제된 방송국의 경우, 작가, 촬영 보조, 행정 ,VJ 등 숱한 업무를 기간제, 도급, 파견,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있다. 방송작가들을 중심으로 지난 몇 년간 계속해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대한 폭로와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비정규직이 없어지면 괴롭힘 문제도 없어지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확언할 순 없다. 우리는 종종 괴롭힘 사건을 기사로 접한다. 해결은 가해자 신상공개, 처벌로 이루어진다. 가해자 처벌이 이루어지기 힘든 현실도 문제지만, 설사 처벌이 이루어진다하더라도 이것은 가지를 잘라내는 것이다. 이윤을 극대화 하려는 회사, 그런 회사의 고용체계와 조직문화라는 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괴롭힘으로 규정되지 않는 제도적 차별
오요안나씨가 겪은 불행한 사건을 바라보며, 다른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연들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매일 같은 일터에서 내 옆의 동료와 동일한 업무를 하는데도 차별적 노동조건을 받고, 쉽게 잘리는 하청노동자. 수십년을 일해도 가차없이 잘릴 수 있는 비정규노동자. 내가 갑질에 참고 견디며 일하지 못 하면 먹고 살 수 없는 특수고용노동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체류자격이 없으면 불법으로 낙인찍혀 단속당하고 추방당하는 이주노동자. 노동법 밖의 노동자. 즉, 근로기준법이 정한 직장내 괴롭힘 조항의 적용조차 못 받는 사람들. 모두 노동을 하는 노동자인데 왜 이런 차별과 배제가 존재할까. 자본은 갈수록 노동자를 값싸고 쉽게 이용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언제든 자른다. 정부 또한 한 마음이 되어 이주노동자를 무차별적으로 들여와 정주노동자를 대체하고 턱없이 낮은 임금을 주고 사용한다. 비정규직 보호 제도랍시고 마음껏 쓰다버릴 일회용품처럼 사용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줬다. 특수고용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노동자로서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해 갔다.
뭉쳐야 산다, 흩어지면 ‘죽는다’
많은 사람들이 내 직장, 내 일터를 이렇게 무자비한 방식으로 잃곤 한다. 온갖 차별적인 고용형태로 불안정 노동을 양산하는 이 체제를 바꾸려면 뭉쳐야 한다. 절망의 일터에서 흩어진 한 개인으로 노동하며 앓고 앓다 죽지 않으려면, 내 노동에 비해 부당하게 많은 부와 이윤, 국가의 재생산을 누리게 하는 체제를 뒤바꿔야 한다.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노동자의 단결이 필요하다. 일터를 변화시켜야 괴롭힘없이, 그리고 동료의 죽음 없이 일할 수 있다. 노동하는 모든 사람은 노동자다. 법의 테두리 속에서 노동자가 아니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딱지를 붙이면 이같은 부조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의 안전보건, 그 너머 노동권을 바라보아야 한다. 직장내괴롭힘은 사후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말한대로 근절되어야 할 문제이다. 협소한 진일보 속에서, 그 걸음걸음 중간에 또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큰 한 걸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는 비정규직 철폐를 함께 외치고 평등한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정규직인 나의 노동환경도, 프리랜서인 나의 노동환경도, 대학원생인 나의 노동환경도, 라이더인 나의 노동환경도, 취업을 준비 중인 나의 노동환경도 나아지는 길이다.[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