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변희수 하사 4주기] 존재 가치 잃은 인권위원회를 향한 분노가 거리를 채우다

2021년 3월 3일, 변희수 하사가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았다는 소식에 사무실에서 소리내어 울던 동료의 모습을 기억한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은, 자기답게 존재하고 싶다는 기본적인 소망조차 무시당하는 퀴어들에게 아픈 상처가 되었다. 성확정 수술을 받은 뒤에도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다던 그의 소박한 바람은, 시스젠더-이성애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꿈도 못꿀 일’이었다. 변희수 하사가 숨진 지 2년 6개월이 지나서야 법원은 군의 강제전역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고, 3년 1개월이 지나서야 그의 사망이 군에서 순직으로 인정됐다. 그러나 그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고, 이제 차별 반대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별이 되었다.

변희수재단의 설립 허가 관청이 안창호 인권위라니

그런 그를 기리는 올 해 4주기는 또 다른 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가 됐다.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고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비영리법인 ‘변희수 재단’의 설립을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노골적으로 방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영리법인을 설립하려면, 설립하고자 하는 단체의 활동을 관장할 정부기관을 주무관청으로 하여 그 곳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변희수 재단의 업무와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은 인권위였고, 설립 준비 책임자들은 인권위에 법인 설립 허가 서류를 제출했다. 그러나 극우 안창호 위원장이 이끄는 인권위는 9개월이나 서류를 검토조차 하지 않으며 시간을 끌다가, 2월 20일 상임위원회에서 안건을 다음에 다시 상정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들은 9개월이나 지났으니 관련 서류를 다시  제출하라는 둥, 유가족 입장 확인이 필요하다는 둥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댔다. 윤석열과 내란 세력 군 장성의 ‘인권’을 위해서는 그토록 열심히 동분서주하던 자들이, 이 문제에서는 노골적 태업으로 설립 방해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기갑의 돌파력으로 그런 차별 없애버릴 수 있다”

바로 이런 막가파식 내로남불의 ‘반인권위’에 분노한 수 백 명이 2월 22일 토요일 오후 인권위 건물 앞에 모였다. 추모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차별 OUT 혐오 OUT”, “내란세력 비호하는 안창호 OUT” 등 분노를 담아 힘찬 구호를 외쳤고, 윤석열 처벌과 탄핵을 요구하는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 집회 장소인 동십자각까지 유쾌하게 행진했다. 행진 도중 안국역 근처에서 별도의 사전 집회 중인 민주당 당원 수 천명의 대열을 지나쳤는데, 민주당 주요 정치인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동조하거나 방치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민주당원들은 추모 행진 대열에 기꺼이 연대의 환호를 보내주었다.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도 윤석열 퇴진 운동에서 만난 사람들과 더 많이 함께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가오는 봄, 윤석열이 권좌에서 물러나고 새로운 정부를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시작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제2, 제3의, 수많은 변희수들의 삶이 지금과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변희수 하사가 남긴 말처럼 우리의 “돌파력으로” 모든 차별을 없애버리는 날까지, 투쟁은 계속 되어야만 한다.[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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