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07년 설립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한국 사회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장애인 인권 운동 단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21년 12월부터 혜화역 등 주요 지하철역에서 장애인들이 집단적으로 지하철에 탑승하는 시위를 진행해왔다. ‘시민의 발’인 지하철이 장애인에게는 이동수단이 되기 얼마나 어려운지 드러내려는 노력이다. 이 글은 단체 대표인 박경석 씨의 말들을 담은 책 <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의 내용을 중심으로 장애인 인권 운동의 요구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이를 가로막고 있으며 우리는 요구를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

“이게 지하철행동을 통해서 드러난 이 사회의 본질이에요. 쓸모 있는 사람만 시민권 열차에 태워가지고 열심히 운반하고, 쓸모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예 무정차하고서 내버려두고 떠나는 거.”
– 박경석, 전창조 지음, <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위즈덤하우스, 2024.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지하철행동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승강장이 아니라 개찰구 앞에서부터 서울교통공사 직원들과 경찰들이 장애인들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그렇게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면서, ‘출근하는 듯 보이는’ 비장애인들은 별도로 비워둔 개찰구로 친절히 안내했다. 나도 아무런 문제 없이 개찰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상했다. 나는 사실 회사가 아니라 저 아래 승강장의 사람들과 함께 싸우러 가는 건데, 비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쉽게 통과할 수 있다니. 전장연의 요구가 이동권만이 아니라 굉장히 많다는 것, 이 사회가 장애인의 권리를 그렇게나 무시한다는 것도 그때 제대로 알았다.
전장연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1.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
2001년 1월 한 장애인이 서울 오이도역의 휠체어 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이 일로 전장연은 서울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2002년에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2015년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22년에는 서울교통공사가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약속들은 2025년 현재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비록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역이 이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남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역에서 장애인은 여전히 ‘살인 기계’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거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인근 다른 역까지 이동해야만 지하철을 탈 수 있다.
버스는 사정이 훨씬 심각하다. 2024년 전국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약 40%에 불과하다. 택시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대도시들에서도 장애인콜택시를 한 번 타려면 한두 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한다. 광역 이동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결국 어떤 방법을 택하더라도 원하는 곳에, 원하는 시간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다.
2. 집단거주시설을 벗어나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권리
문제투성이 대중교통마저도 시설에 갇혀 사는 장애인들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다. 중증장애인들은 종종 ‘사회에서 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장애인 집단거주시설에 들여보내지지만, 시설 또한 살기 어려운 매우 열악한 공간이다. 장애인 집단거주시설에서는 여러 명이 한 방에서 개인 공간 없이 산다. 프라이버시도 없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자고, 밥을 먹어야 한다. 뭘 먹을지도 선택할 수 없다. 종교도 시설 재단에 따라 정해지고, 마음대로 외출도 불가능하다. “시설에 갇혀 사는 삶은 인간다운 삶 자체를 빼앗기는” 것이다.
그래도 ‘안전’은 보장되지 않을까? 그렇지도 않다. 장애인들은 자기보다 경증인 다른 장애인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시설 종사자들에게 학대당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죽기도 한다. 코로나 19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장애인 시설을 포함한 집단거주시설에서 사망했다.
중증장애인이 시설에 가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박경석 대표의 말처럼, 장애인도 평범한 삶이 가능하도록 “지역사회가 조건을 갖출 생각을도 안 하면서 중증장애인들의 존재를 그렇게 낙인찍고 있을 뿐”이다. “주거 공간을 안정적으로 마련해주고, 활동지원서비스가 제대로 제공이 되고, 소득체계가 잘 갖춰지면 자립이 절대 불가능한 게 아니”다.
3.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세상과 관계 맺을 권리
장애인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단연 노동이다. 노동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자 이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통로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노동에서 배제되어 있다. 전체 장애인 중 경제활동인구는 38%에 불과하고, 중증장애인은 이보다도 훨씬 낮다. 운 좋게 일자리를 얻더라도 다음 문제가 있다. 최저임금법은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장애인들에게는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실제로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의 평균 월급은 믿을 수 없게도 37만 원 정도다.
전장연이 최근 특히 목소리를 냈던 것은 전장연의 요구로 2020년 서울시에서 도입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와 관련된 문제다. 이 일자리는 기존 노동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다. 장애인이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등의 활동을 통해 한국 정부가 비준한 <UN장애인권리협약>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하면, 이를 노동으로 인정해 시에서 급여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4년 1월 이 일자리를 돌연 폐지하면서, 이를 통해 처음으로 일자리를 가져본 최중증장애인 노동자 400명이 순식간에 해고됐다. “전체 장애인 일자리 수는 늘어난다”는 것이 서울시의 해명이지만, 그 일자리들은 행정도우미, 사무보조, 보육도우미, 어르신 식사도우미 등으로 최중증장애인들은 애초에 참여할 수조차 없다. 어떻게든 ‘생산적인’ 노동만을 노동으로 인정하겠다는 의미다.

자본주의와 장애
장애인들의 이동권, 탈시설권, 노동권이 방치되는 이유는 하나다. 돈이 들기 때문이다. 저상버스 1대당 가격은 2억 2천만 원 정도로 일반버스에 비해 2배가량 비싸다. 지금도 시설에서는 “어차피 돈도 못 벌어다 주는 장애인들 제일 값싸게 관리”하기 위해 한 명의 노동자가 여러 명을 버겁게 돌보는데,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흩어져 산다면 훨씬 많은 수의 장애인 활동지원사들이 필요하다(이들의 노동은 중요하지만 특별히 이윤을 내지는 않는다). 또, 장애인 노동자를 고용하면 기존에 비장애인 노동자들에 맞춰 만들어놓았던 작업시설과 방식 등을 모두 조정해야 한다. 그래서 법에 따라 장애인을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 기업과 공공기관들도 차라리 ‘부담금(벌금)’을 납부하기를 선택한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지키는 곳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가 만들어낼 이윤을 위해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보건, 교육, 복지 서비스에 돈을 투자한다. 그렇기에 필요를 충족시켜줘도 미래의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 장애인들에게는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흔히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경쟁력이나 힘은 기업이 ‘생산적인’ 노동자를 통해 이윤을 내 국가에 납부하는 세금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따라서 사회적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결정할 때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 항목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산업을 뒷받침하는 데는 수조 원씩 투자하더라도, 사회적 약자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데는 인색한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장애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전장연의 요구에 “예산을 그렇게 배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 자체를 문제삼지 않고서는 장애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낫게 만들 수 없다. 바로 이런 점을 두고, 1976년 영국의 어느 장애인 사회주의 활동가들(UPIAS, 분리에 저항하는 신체 장애인 연합)은 이렇게 정리했다.
“신체적 손상을 입은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사회다. 신체적 손상을 장애로 규정해 우리를 불필요하게 고립시키고 사회 생활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도록 배제하는 것이다. … 우리는 손상을 ‘사지의 전부 혹은 일부, 장기, 신체 메커니즘이 결여된 상태’라고, 장애를 ‘오늘날 사회가 신체적 손상을 입은 이들을 거의 또는 하나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그런 사람들을 사회 활동의 주된 영역에서 배제해 발생하는 활동상 불이익이나 제약’이라고 규정한다. 장애인의 빈곤은 우리가 받는 억압의 한 측면일 뿐이다. 가난은 교육과 직장, 이동권, 주거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고립되고 분리된 결과다.”
장애는 선천적 요인이나 후천적 사고로 발생하는 단순한 개인적 불행이 아니라, 명백한 사회적 차별이다. 신체적 손상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데도 자본주의는 이런 가능성 자체를 사회 운영 방향에서 배제한다.
왜 지하철인가
그런 점에서 전장연이 싸우는 장소인 지하철은 상징적이다. 박경석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지하철은 “노동력을 실어나르는 컨베이어벨트”다. “정시성에 맞춰 컨베이어벨트가 잘 굴러가야 노동자들도 공장에 가고, 학생들도 쓸모 있는 노동력으로 성장을 해가지고 자본도 계속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야 이 나라도 계속 성장”한다. 그렇기에 전장연이 지하철을 지연시키기 전까지 지하철에서 했던 다양한 방식의 저항-결의문 낭독, 삭발, 노래, 사진 전시 등-이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지하철이 멈추지 않는 한 자본주의 사회는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들만 데리고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이 굴러가기 때문이다.
이윤을 위해 내달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도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억압적”이다. 박경석 대표는 매 지하철행동마다 전장연의 시위를 막기 위해 동원되는 서울교통공사 노동자들이 겪는 일상적 어려움도 자본주의 사회의 속도와 무관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서울교통공사가 “맨날 정시성 외쳐대면서 돈 논리에 따라서 지하철 노동자들 인원 제대로 확충도 안 해주고, 도리어 줄이려고만 하고, 싼값에 빨리빨리 부려먹으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지하철 지연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출근 시간에 늦더라도 아무런 불이익도 없고 이 사회에서 뒤쳐지지도 않는다면 그때도 지하철행동이 지금과 같이 비난받을까? 결국 장애인도, 노동자도, 그 누구라도 제대로 해방되려면,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는 이 시스템과 함께 싸워야 한다.
국회 정치가 아닌 거리 투쟁의 힘으로
박경석 대표는 지하철 승강장 바닥에서 경찰에게 끌려가지 않으려 처절하게 버티는 대신, 국회 정치인이 될 수도 있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됐지만 거절했다. 여전히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는 국회 정치에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국회 정치는 “결국 합리적인 법률적 한계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인데, 그러다보면 “국회 밖에서 어쩔 수 없이 ‘비합리적’으로 싸우고 있는 현장 대중들과 멀어”진다. “당 눈치도 봐야 하고, 당내 권력 싸움도 해야 하고, 공천받으려면 현장이 반영된 자기 목소리도 계속 못” 내게 된다. 한두 명이 대표로 국회에 들어간다고 한들,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제도권 정치의 압력에 길들여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거리 투쟁의 현장에서 장애인 운동 조직을 건설하고 그 힘으로 세상을 바꾸기로 했다.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너희가 원하는대로 세상이 돌아가게 놔두지 않겠다’는, 강력한 거리의 힘이 있어야만 진정으로 권력자들을 압박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영국 장애 인권 운동의 사례도 그의 이러한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준다. 1997년 신노동당이 장애인권위원회를 신설해 장애차별금지법을 보완하고 제대로 집행하겠다고 약속했을 때 당시 장애 인권 운동의 지도적 인물 대부분은 위원회에 합류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정부는 운동의 언어를 빼앗아 지키지도 않을 계획만을 잇달아 내놓았고, 장애인들이 통제하고 운영하던 단체들은 의도적으로 해체됐으며, 장애 인권 운동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결국 영국의 장애 인권 운동뿐만 아니라 수많은 나라의 역사에서 사회개혁을 이끌어 낸 근본적인 동인은 언제나 제도권 정치가 아니라 시위와 파업과 같은 대중 행동이었다.
다시 지하철행동으로 돌아가보자. 박경석 대표의 소망은 “모두가 각자의 의제를 가지고서 이 시스템과 싸우기 위해 지하철에 모”이는 것, “이 체제의 피해자가 된 모든 사람들이 단 하루만 이 시스템을 다 같이 멈춰 세”우는 것이다. 지하철을 운행하는 서울교통공사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함께 행동에 나서면 어떨까?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많은 노동자들도 모두 파업을 하고 함께한다면? 그럼 장소는 꼭 지하철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하철뿐만 아니라 이 자본주의 사회 곳곳에서, 빠짐없이, 권력자들이 우리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게 될 테니까. 그 어마어마한 힘으로 우리는 정말로 이 세상을 아주 멋지게 바꿔낼 수 있을 것이다.[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