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여러 언론이 윤석열 탄핵 심판 결과가 조만간 헌법재판소에서 발표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아직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결정되어 있지 않고, 내란세력에 대한 응분의 처벌까지도 갈 길이 멀다. 윤석열 파면이 결정된다면 한국 정치와 사회 운동은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다. 심판 결과 발표를 앞두고, 이후 우리의 과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분명히 하기 위해 윤석열의 내란 시도와 그에 맞선 운동의 궤적을 돌아본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이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감행했다. 국민의힘 스스로도 정당화하지 못할 정도로 명분은 취약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윤석열은 선거결과를 검증하겠다며 선관위로 계엄군을 보냈고, 부정선거로 당선되어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했던 국회를 해산시키려 했다.
그러나 다행히 결과적으로 계엄은 실패했다. 실패한 일차적인 요인은 비상계엄의 명분이 너무나도 취약했기에 계엄군의 지휘부와 사병 모두의 사기가 낮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계엄군이 계엄의 취약한 명분을 확인하는 계기가 바로 시민들의 저항이었다. 일례로 시민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퇴각하는 계엄군의 사진이 찍혔는데, 이는 투입된 계엄군의 낮은 사기와 시민 저항의 정당성을 상징하는 장면이 되었다.

1막 : 공세, 내란 세력 포위
하지만 역사에서 배운 것은 우리 편만이 아니었다. 국민의힘 일당은 박근혜 탄핵 때 처럼 순순히 물러나서는 또 다시 한동안 정치권력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친윤계는 한동훈에 맞선 당내 투쟁에 박차를 가했고 주도권을 되찾아왔다. 윤석열은 박근혜와 달리 관저에서 농성하기를 선택했고, 자신의 주변으로 극우세력이 결집하도록 호소했다.
이에 맞서 윤석열을 즉각 체포해야 한다는 요구가 대중들 사이에서 급격히 떠올랐다. 윤석열의 지난 폭정을 상기시키며 윤석열 이후의 사회는 전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문제제기도 자유발언을 가득 채웠다. 12월 21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이 이에 호응하여 전봉준투쟁단을 조직해 윤석열 구속과 양곡관리법 거부 규탄을 외치며 상경했으나, 서울 입구인 남태령에서 가로막혔다. 계엄 당시 국회의원과 시민들을 단속하던 경찰이 다시 농민들을 공격하자 남태령으로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압도 다수는 젊은 여성이었다. 이들의 연좌와 전농의 투지가 민주당의 개입을 불러왔고, 전농 트랙터는 윤석열이 있는 관저 앞까지 진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른바 남태령 대첩이었다.
바로 이 시점을 전후해 국민의힘에 맞선 운동의 힘은 정점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특징은 계엄을 일으킨 내란 세력이 극도로 위축된 가운데 광장에서는 윤석열 이후의 사회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남태령 집회에 모인 대중은 농민운동, 노동자운동,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운동을 모두 지지하거나 호의적인 동시에, 누구보다 윤석열 퇴진과 처벌을 위해 강력한 행동에 나서길 원하는 이들이었다. 이 때 운동이 보여준 급진성과 잠재력이 계속 행동으로 표현되고 확대된다면, 운동 참가자들이 소원하던 ‘사회대개혁’이 이후 실제로 가능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변수는 민주당과 운동 세력 내에 민주당 집권에 의존적인 다수파 경향의 입장이었다. 민주당이 과연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이 계속 확대되길 원할까? 물론 2024년 연말까지만 하더라도 민주당은 국민의 힘에 맞서 적극 싸우려는 것처럼 보였다. 국무총리로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한덕수가 윤석열 내란특검 등을 거부하자 잠시 머뭇거리기는 했으나 오래지 않은 12월 27일에 탄핵했다.

2막 : 극우의 반격
그러나 윤석열의 관저 농성이 장기화하자 모든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윤석열의 바람대로 극우가 결집을 이어갔다. 반면 운동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대중은 윤석열 체포를 위해 더 강력한 행동을 열망했지만,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아하 비상행동) 다수파는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경찰과 공수처만 쳐다보고 있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남태령 밤샘 투쟁의 영감을 받아 관저 앞 밤샘 집회를 기획했지만, 그보다 나아간 다른 방안은 내지 못했다. 관저 안으로 직접 진입하는 진격 체포 투쟁을 선동했지만 실질적으로 체포를 이룰 수는 없었고, 노동자의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투쟁 수단인 파업은 제대로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윤석열 체포를 요구하는 시위대열은 체포를 집행할 의사가 별로 없었던 공권력에 청원하는 역할로 점차 한정되었다. 반면 체포가 하루이틀 미뤄지자 극우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윤석열 체포를 막았다는 생각에 점차 승리할 수 있다는 의식이 확산되었다. 특히 공수처의 영장 집행이 저지된 1월 3일에 극우의 승리감은 최고조로 치솟았고, 본래 압도적으로 소수였던 이들이 거리에서 비슷한 숫자로 보이기까지 했다. 이제 점점 극우의 행동 규모와 영향력은 비상행동이 소집하는 집회와 비등해지고 있었다.
윤석열은 1월 15일에 결국 체포되었지만, 극우의 숫자와 자신감은 줄지 않았다. 비상행동은 이제 윤석열을 잡았으니 사회대개혁을 실현하자며 윤석열 이후 사회의 모습을 제안하는 운동으로 전환했다. 윤석열 탄핵과 처벌을 위해 대중 행동이 지속, 확대되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이는 극우의 준동을 과소평가하는 것이었다. 극우 세력은 윤석열 체포에 대한 분노를 서부지방법원 폭동으로 표현했다. 폭동 직후 사회적 비난이 이어졌지만, 극우는 잠시 위축되는 듯하다가 다시 더 큰 행동을 조직해 반격을 이어갔다. 전한길과 같은 새로운 스피커가 등장했고, 탄핵심판에 윤석열이 직접 나타나 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주장이 여과 없이 보도되자 극우 집회는 전국적으로 더욱 기승을 부렸다. 특히 법원 폭동은 극우가 더 이상 무시해도 되는 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으며, 폭동에 나선 이들을 애국시민으로 비호하면서 국민의힘이 본격적으로 극우 색채를 드러내는 신호탄이 됐다.
윤석열 체포 후 국면의 특징은 극우의 세력화와 국민의힘 자신의 극우화로 인하여 좌우간 대치가 팽팽해졌다는 점이다. 특히 극우는 이 때를 기점으로 기층대중의 조직화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전광훈(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과 손현보(세이브코리아)가 분리하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보다 직접적으로 기층의 조직화를 추진하는 전광훈과 교회조직을 활용하는 손현보의 성격이 달랐으며, 서울에서 오랫동안 조직해온 전광훈과 부산에서 교회 부흥에 성공한 손현보의 지역적 차이도 작용했다. 하지만 둘의 분리는 분열이라기보다 ‘분화’에 가깝다. 전체 극우 세력이 성장하면서 그 안의 조직적 인적 차이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탄핵에 찬성하는 대열은 윤석열 체포를 지나며 줄어들었다. 집회 규모가 확연히 줄어든 시기는 명절 연휴를 지나서였다. 국힘 국회의원들까지 다수 탄핵반대 집회에 참여하면서 극우가 세를 결집하는 동안, 비상행동은 다분히 한가하게 사회대개혁을 외치며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에 실패했던 것이다. 그 결과, 매주 주말 집회에서 극우 집회의 규모가 비상행동 집회의 규모보다 크게 조직됐고 그 정치적 효과는 분명했다. 첫째, 극우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과대 대표되게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극우의 주장을 귀기울일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윤석열과 그 측근인 내란세력 일당은 물론, 한국 지배계급 내 국민의힘 지지자들, 보수언론, 중도층 모두가 극우 주장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다. 둘째, 극우 세력의 자신감이 강화되고 조직화 정도가 진전됐다. 이전까지 사회적으로 고립된 소수로서 스스로를 인식하던 극우들이 자신감을 갖고 양지로 나오게 됐고, 특히 일부 극우 청년들은 온라인 세상에서 내뿜던 혐오와 차별 정서를 현실 세계에서 표현해도 된다는 용기를 얻게 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비상행동이 극우에 대한 대응보다 강조하는 ‘사회대개혁’ 요구가 운동세력 상층의 일방적인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회대개혁은 탄핵을 촉구한 미조직 대중들이 전처럼 살 수 없다며 외친 말들을 담은 것이었다. 그러나 운동의 상층부는 대중의 염원을 수용하면서 대중에게 그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더 강력하게 싸우자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대중 투쟁 건설을 회피하는 카드로 사회대개혁을 꺼내들었다. 비상행동 다수파의 사회대개혁은 민주당 정권이 조기대선에서 당선하여, 민주당 정부가 비상행동이 정식화한 요구를 제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었다. 이런 공식에 따르면, 윤석열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이므로 더 이상 집회와 시위를 확대하는 것은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된다.
그러나 윤석열이 탄핵되면 극우는 소멸할 것이라는 안일한 정세인식 속에서, 운동 세력은 한파를 뚫고 모인 대중들에게 우리의 상대가 극우라는 것을, 향후 사회개혁을 저지하고 민주당을 더 오른쪽으로 견인할 세력이 극우라는 점을 인식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극우에 대한 경계심은 운동 세력 활동가가 아닌 일반 참가자들의 발언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이 때에도 발언자들은 우리가 저들보다 많아야 한다는 의식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민주노총을 비롯한 운동 단체들은 2월 15일 하루 집중한 것을 제외하고는 조직의 세를 중시하지 않았다.

3막 :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지금은 대치국면이 장기화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이재명을 가리키는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게 나오고 있지만, 여의도와 광화문으로 나뉜 극우집회의 참가자의 숫자가 탄핵찬성 집회의 숫자를 앞서고 있다.
최근 민주당의 역할에 대해서도 별도로 언급할 만하다. 민주당은 내란국면 초기 자신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정권을 탈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능동적으로 대응했다. 이재명은 긴급하게 국회로 모여달라고 호소했고, 이에 호응하여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윤석열 탄핵에서 총결집해 탄핵국면을 주도했다. 하지만 윤석열이 탄핵되고 정권탈환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민주당은 체제의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더욱 두드러지게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재명은 주요국 대사들과 회담을 잡고 재벌, 경제기관 관리자들과도 면담을 이어갔다. 미국과 재계의 지지를 받는 최상목이 거듭 내란수사를 방해했지만, 민주당은 한덕수 탄핵 이후로 최상목에 대한 탄핵은 논의도 하지 않았다. ‘과잉 대응’이 오히려 지배계급 내 여론을 안 좋게 만들고, 중도층과 보수층 대중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 탓이다. 이재명은 오히려 현재 이들에게 우클릭을 통해 한국 경제와 기성 사회질서를 책임질 수 있다는 신뢰를 주려 애쓰고 있다.
박근혜 탄핵 당시와 비교해보면 이 차이는 두드러진다. 박근혜 탄핵은 대중운동을 통해서 촉발되었고, 민주당은 우물쭈물하다가 운동에 끌려들어왔다. 민주당은 ‘이게 나라냐, 적폐청산’ 등 대중운동이 외치고 있던 개혁에 대한 미사여구를 뒤늦게 공유함으로써 대중의 신뢰를 얻었고, 대선에서 승리한 뒤에야 ‘무늬만 개혁’으로 기득권과 지배계급의 이익을 지켜냈다. 반면 지금의 민주당은 내란 직후부터 국회에서의 탄핵 절차를 주도했고, 비상행동 안팎에서 지분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운동의 지지를 받기 위해 개혁을 약속할 필요가 크지 않고, 국민의힘이 극우 행보를 강화하는 상황이니 마음놓고 우경화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의 집권 이후에도 운동에 부담을 덜 느낀 상태로 노골적으로 배신할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배신은 다시금 극우가 성장하고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민주당은 운동의 압력에 따라 행보를 달리 했지만 그 본질에서는 같은 위치에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즉 민주당은 민주화 운동과 사회 개혁 운동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지지자들을 결집 시키지만, 진지하게 사회 개혁을 할 의지도 이해관계도 없는 모순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세 번이나 수권 정당이 되면서 한국의 기업 중심 신자유주의 질서를 확립하는 구실을 했고, 그 자신이 이 질서를 수호하는 거대 보수 양당정치의 기득권자가 됐다. 재계와 보수층에 민주당은 최우선순위 선호정당은 결코 아니지만, 그들도 대중의 사회에 대한 불만이 강할 때는 민주당이 진보적 언어를 사용해 사회운동의 요구를 적당히 무마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민주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 한국 지배계급의 차순위 선호정당이자 국민의힘과는 다른 스타일을 가진 체제 관리자인 것이다.
과제 : 극우에 맞선 투쟁
탄핵 선고의 결과가 무엇이든, 이후 극우의 부상에 대한 좌파적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 한국 운동에서 가장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할 과제가 있다. 하나는 극우를 위협적인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어느 작은 좌파 단체는 “궤멸단계에 놓인 수구세력이 ‘여기서 밀려나면 완전히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하는 마지막 발악”을 한다면서 극우의 위협이 현존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극우는 이제 막 본격적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뿐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당장 윤석열 탄핵-처벌 국면에서도,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 계속해서 상황의 유동성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극우의 부상을 전제로 이들에 맞서 민주당을 포함한 모두가 총단결해야 한다는 함정이다. 그러나 극우의 성장은 궁극적으로 보수양당 정치, 민주당 정권에서 비롯되었다는 명백한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민주당과 선을 그어야 하는 이유는 민주당이 단지 사회운동과 구분되는 제도권 정당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한국 기성사회 질서의 일부이며 그들의 모순과 배신 속에서 극우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극우가 성장한 곳이라면 모두 반복된 패턴이 그랬다. 민주당과 유사한 중도보수 정당이 좌우 양쪽의 압력 속에서 집권하여 결국 체제친화적인 배신을 하면, 배신감에 환멸을 느낀 대중이 중도주의 엘리트를 적대시하며 극우의 의제로 쏠려갔던 것이다. 기성 사회질서를 급진적으로 바꾸려 하는 좌파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건설하며 극우에 맞서야만, 보수양당정치에 대한 환멸에 빠진 대중이 극우가 아닌 좌파적 대안을 진지하게 고려할 것이다.
두 가지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해야 할 당장의 과제들은 극우를 거리에서 고립시키는 것이다. 극우보다 거리 시위에서 좌파들이 우위를 점해야, 극우가 진정 이 사회의 무시해도 되는 ‘소수’라는 점이 분명해질 수 있다. 또, 그래야 극우 세력 자신이 자신감을 잃고 양지에서 음지로 돌아갈 수 있다. 현실에서 극우의 동원력이 약해지고 극우의 조직이 위축되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서 극우는 아직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했다. 극우가 가장 적대시하는 노동조합과 비교하자면 기층의 조직수준이나 경험에서 아직 극우는 견줄 대상이 못 된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주류정치의 후원을 받고 거세게 성장하고 있다. 전광훈의 얼굴을 보면 낯선 표현일 테지만, 이들에게는 젊은 조직 특유의 활력이 생기고 있다. 극우가 아직 강력하지 않을 때 서둘러 고립시키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한편, 극우가 성장할 토양은 결국 계급투쟁이 성장하는 토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류 정치인들이 대중의 의사를 거슬러서 자신들만의 이권을 추구하고, 자본가들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착취를 효과적으로 하지 못한다고 여길 때 극우가 부상할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주류 정치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가 하락하고 자본가들이 착취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벌일 때 계급투쟁도 일어날 수 있다. 만일 계급투쟁이 성공을 거두고 대중의 사회변화에 대한 낙관이 강해지면, 극우는 다시 약화될 수 있다. 반면 극우가 성장하고 이들이 적극적으로 투쟁의 전진을 방해해 성공을 거두면, 노동계급과 사회운동의 사기가 떨어지고 투쟁이 약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사태 전개에는 운동 참여자들과 활동가들의 자의식적이고 조직적인 노력이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극우의 성장과 계급투쟁의 전진 중 무엇도 아직 결정되어 있지 않다.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양극화가 이제 눈앞으로 다가온 지금,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