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3월은 ‘세계 여성의 날(3.8)’과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3.31)’이 공존하는 달입니다. 이 글은 3월 21일에 진행한 <이달의포럼> “배제의 페미니즘을 넘어; 진정한 래디컬 정치로”에서 발제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최근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뮤지션 키라라는 본인이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며, 트랜스젠더인 이들에게 “울지 말고, 자살하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오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SNS 일각에서는 “그래도 남자는 여자가 될 수 없다”거나, “꾸미는 행위가 성별을 결정하는 게 아닌데 왜 본인이 여자라고 생각하냐”는 식의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통상적인 극우나 보수 개신교 세력의 혐오와는 결을 달리하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트랜스젠더를 비판하는 목소리였습니다.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성벽
이러한 흐름이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2010년대 중반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급진 페미니스트(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TERF, 이하 ‘터프’)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2020년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합격자 입학 반대 사건입니다. 당시 성확정 수술과 법적 성별 정정을 마친 트랜스여성 A씨의 합격 소식이 알려지자, 서울 지역 6개 여대의 21개 단체는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 변경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A씨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존재했지만, 거센 배제와 압박 속에서 A씨는 결국 입학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트랜스젠더가 ‘여성’을 위협하는 ‘가해자’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처사입니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의 65% 이상이 차별을 경험했는데, 이는 응답자 절반 이상이 우울증을, 1/4 가량이 공황장애를 겪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반인의 우울증 평생 유병률이 5%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2016, 보건복지부), 트랜스젠더는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셈입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도, 실제로 시도하는 비율도 훨씬 높습니다(2017,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단지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했다는 이유로 군에서 강제 전역당하고 삶을 놓아야 했던 변희수 하사의 사례처럼, 트랜스젠더는 일터와 일상 모두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터프(TERF)’는 왜 부상했을까
소수자 배제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터프(TERF)’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치부되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2018년 10만여 명을 모은 혜화역 시위나 2024년 6천여 명이 집결한 딥페이크 집회 등, 이들은 대규모 집회를 활기차게 주도하며 많은 이의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따라서 여성운동이 나아갈 길을 고민한다면, 이들이 부상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로, 2010년대 중반 이후 여성운동에서는 소라넷 폐지 운동, 강남역 살인사건,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낙태죄 폐지 운동, 미투 운동, ‘버닝썬’ 사건으로 대두된 남성 약물 카르텔 규탄 시위, N번방 시위, 딥페이크 엄벌 촉구 집회 등 여성의 생명과 안전과 관련된 사건들이 두드러졌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여성들은 성폭력 가해자와 이를 두둔하는 남성 집단에 분노하고, 가해자 남성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국가를 불신하게 됐습니다. 이 분노와 불신은 ‘여성들만의 안전한 공간’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고, ‘생물학적 남성’을 배제하는 감각이 트랜스여성에 대한 배제로까지 확장된 것입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남성 연대자를 거의 목격하지 못한 것도 이러한 배제 심리를 더욱 강화시켰을 것입니다. 논리가 아닌 실천으로 남성 집단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했음에도, 남성들을 포함한 기존 “운동권” 활동가들의 다수는 주장으로 남성 배제 경향을 비판하는 데에만 그치고 말았습니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에서 ‘피해자성’마저 자원이 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헬조선’과 ‘N포 세대’로 상징되는 극한의 경쟁 속에서 누가 ‘진정한 피해자’로서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이죠. 남성들조차 ‘역차별의 피해자’임을 자처하는 상황에서, 피해의 주체를 ‘생물학적 여성’으로 좁게 설정해야 한다며 결집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입니다.
기존 여성운동의 공백이 미친 영향
무엇보다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기존 여성운동의 한계에 대한 환멸’입니다. 7~80년대 노동운동, 민주화운동과 함께 사회 변혁을 꿈꾸던 여성운동은 90년대 형식적 민주화 이후 다른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급격히 제도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많은 단체가 정부 지원금을 받는 사단법인이 되었고, 활동가들은 국회의원이나 정부 위원회 위원 등 제도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운동의 방식도 집회나 시위보다는 서명, 청원, 성명 발표, 기자회견, 피켓팅, 로비 등으로 온건해졌습니다.
여성운동의 노력으로 법과 제도가 바뀌는 등 성과도 물론 있었지만, 대다수 평범한 여성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존 일부 단체들이 새로운 세대의 분노를 ‘과격하다’거나 ‘올바르지 않다’며 선을 긋는 듯한 태도는 엘리트 여성운동에 대한 불신을 키웠습니다. 그 공백을 뚫고 대중의 정서를 직관적으로 대변하며 전투적인 행동주의를 보여준 흐름이 바로 지금의 ‘터프(TERF)’입니다.
실제로 2024년 9월에 열린 두 개의 딥페이크 규탄 집회는 기성 여성단체들과 투쟁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대 여성들의 정서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144개 단체가 모인 ‘딥페이크 성범죄 아웃(OUT) 공동행동’은 처벌뿐만 아니라 가부장제와 성교육, 성평등 정책, 성 보수주의, 규제받지 않는 플랫폼 등 다양한 구조적 원인을 짚었으나, 서울 지역 6개 여대 학생들이 중심이 된 ‘여성혐오폭력 규탄 공동행동’은 “만든 놈, 판 놈, 본 놈 모조리 처벌하라”는 선명한 구호에 집중했습니다. 참가 인원이 6배나 차이 난 것은, 당장 관련 법조차 없어 처벌이 요원한 현실에서 ‘총체적 구조’를 논하는 요구가 일상과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성은 왜 안전하지 못한가
‘터프(TERF)’의 전투적 행동주의는 대중행동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고, 여성들이 느끼는 분노를 선명하게 대변한다는 점에서 정당합니다. 그러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의 원인에 대한 이들의 진단, 특히 여성은 그저 ‘생물학적 여성’이기에 안전을 위협받고 차별받는다는 이들의 관점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진단에서 보면,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조건이 계속되는데 ‘여성이 안전하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지도 머릿속에 그리기 어렵습니다. 여성들이 더 많이 정치인이 되고 부유해지고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 지금의 문제가 해결될까요? 하지만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과 차별, 편견과 혐오가 가득한 세상에서 여성들 다수가 갑자기 사다리 높이 올라가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문제는, 여성들 개인 또는 일부 집단의 노력으로 좀처럼 극복하기 어려운 여성차별적 사회의 작동 방식 그 자체에 있습니다. 지금의 사회는 여성차별이 누군가에게는 돈이 되고, 사회 전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도 보탬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오늘날 이윤이 우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성은 과거 어느 시기보다 대규모로 상품화되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합니다. 성매매는 물론 엔터테인먼트, 광고 등 온갖 ‘성산업’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심화하고, 이렇게 여성이 남성의 성적 소비 대상으로 취급되는 사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성폭력이 사라지기 어렵습니다. 자본주의 국가의 형식적 규제나 처벌만으로는 이러한 성산업을 막을 수 없습니다. 성을 구매하려는 사람과 판매하려는 사람을 대거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그대로 둔 채 “문제적 개인”들만 규율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자본주의 체제는 성역할이 공고하게 유지되도록 만드는 데에도 엄청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성역할 구분을 토대로 하는 가족제도에 기대어 돌아가는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되는 핵가족 안에서 출산과 양육, 돌봄 등 원래 국가가 책임져야 할 재생산의 짐을 여성들이 모두 짊어지는 것은 자본에게 엄청난 이익이 됩니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가족제도를 지키기 위해 트랜스젠더를 포함해 규범에 벗어나는 성소수자들 역시 배척하고 차별합니다. “Girls Can Do Anything”이 의미하는 것은, 여성은 한 명의 주체로서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고 그 삶을 지지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는 성소수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여성스러움”, “남성스러움”, “정상성” 등을 내세워 여성들을 억누르고, 마찬가지 이유에서 성소수자들을 차별하고 배척합니다. 트랜스젠더와 여성들이 받는 차별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뒤집는 급진적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감으로써 차별과 혐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결론: 진정한 래디컬 정치를 향하여
오늘날의 래디컬 페미니즘은 목표를 쟁취하는 방법과 투지에 있어서는 기성세대 여성운동 활동가 또는 그 출신의 정치인이나 전문가 상당수보다 훨씬 급진적이고 단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의 성차별적 사회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하기보다, 여성들끼리 단결해 자본주의 경쟁과 성폭력 속에서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는 온건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서고자 하는 기성 여성운동의 소수 좌파적 활동가들과 대중투쟁을 건설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대의 전투적 여성주의자들이 함께 만나 서로의 장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두 흐름이 만나려면, 이러한 연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 활동가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할 것입니다.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지금의 사회경제적 구조,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크게 바뀌거나 사라져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성산업’이 폐지되고, 재생산 노동을 여성이 아닌 사회 공공 영역이 전담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성역할’이나 여성혐오 같은 이데올로기도 힘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목표는 자본주의의 생산을 멈출 수 있는 노동계급이 여러 정체성을 넘어 단결해 싸울 때에만 성취할 수 있습니다. 차별과 혐오에 맞선 투쟁과, 이 체제의 다른 부정의에 맞선 투쟁들을 연결시킨다면 우리의 힘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바로 앞서 본 급진적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는 이러한 차이를 넘어선 계급의 단결, 피억압자들 사이의 연대가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도 항상 애써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운동의 단결과 연결은 결코 저절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 쟁점을 하나로 엮어 더 큰 투쟁을 만들어 나가려는 활동가들의 집요하고 섬세한 조직적 노력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해방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배제의 페미니즘을 넘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대중 투쟁’이라는 급진적인 방식과 ‘반자본주의’라는 급진적인 사상이 결합한 진정한 ‘래디컬 정치’입니다.[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