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와 시위는 왜 중요한가

한국에서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통해 유의미한 사회변화를 이끌었던 경험은 많다. 집회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고, 시위는 이러한 행위를 거리 행진 등을 통해 좀 더 위력있게 보여주는 것을 뜻한다. 한국 현대사의 모든 질곡에는 대중투쟁이 있었다. 헌법도 3·1운동과 4·19를 국가 정통성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오늘날의 정치체제는 사실상 5·18광주민주화항쟁과 87년 6월항쟁의  결과물이다.

역사적 변화를 만든 집회와 시위들

1995년 전두환·노태우 구속투쟁은 6월 항쟁 이후에도 단죄받지 않았던 쿠데타 세력을 법정에 세워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고, 2002년 여중생 압사사건에 항의하는 대중투쟁은 당시 미 대통령 조지 부시가 직접 사과하도록 만들었다. 2004년에는 노무현 탄핵에 반대하는 거대한 대중투쟁이 벌어져 대통령 탄핵을 무산시켰으며 2008년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이명박 정권 초반 각종 개악 동력을 일부 무력화했다. 2016년에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대규모 집회가 벌어져 박근혜가 권좌에서 쫓겨나게 됐다.

굵직한 것만 꼽아도 이 정도이니 한국에서 집회 해봐야 별 것 없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다수의 언론은 집회의 순기능이 있다는 점을 일부 인정하더라도 집회나 시위로 세상이 바뀐다는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도리어 특정 정치인의 결단이나 대승적 차원의 양보 등으로 집회와 시위의 의미를를 축소하기 일쑤다.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한 노태우의 6·29선언이 대표적인 예시다. 이는 실제로는 6월 항쟁에 대한 항복이자 정권 유지를 위해 일단 급한 불은 끄자는 기만이었지만, 당시 언론은 차기 대통령감인 노태우의 결단으로 포장했다. 오늘날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언론은 지금 탄핵안이 역대 최장 평의 기록을 연일 갱신하고 있는 것을 재판관들이 심사숙고하는 것으로 묘사하곤 한다. 실제로는 집회와 시위로 결집된 탄핵 찬반세력의 눈치를 보는 것에 불과함에도 말이다.

집회의 효과

대중이 한 곳에 모여 집회를 하는 일은 사람들의 의식에 심대한 변화를 끼친다. 더 나아가 한 세대의 사회적 경험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스포츠 경기장이나 콘서트장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무언가 하나를 열망한다는 감정에 벅차하곤 한다. 정치사회적 문제에서도, 집회와 시위를 함께 함으로써 사람들은 흩어져 있던 개인의 힘이 아니라 강력한 집단적 힘을 경험하게 된다. 일상적인 시기에 무력감을 느끼고 사회를 전혀 통제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의식적인 각성이 일어나는 것이다. 

특히,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온라인에서 댓글을 달거나 게시물을 공유하는 것보다 훨씬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한 날 한 시에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은 참여자들을 그 자체로 고무하고, 제3자들을 놀라게 한다. 발언과 팻말, 구호, 유인물, 대화 등을 통해 함께 문제의식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는 행위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활동은 집회 참가자들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고, 이후 더 많은 행동에 참여하고 주변을 설득할 수 있게 한다. 

집회가 벌어지면, 기존에 어떤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던 언론들도 대규모 집회에 대해서는 보도할 수밖에 없게 된다. 또, 주변의 행인들도 집회를 지켜보면서 참여자들의 주장에 대해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권력자들이 추진하는 일이 얼마나 정당성 없고 동의를 받지 못하는지 현실에서 드러나며, 그들의 명분과 추진력은 약화된다. 또한 집회 과정에서 집회의 자유를 제약하는 경찰 등 국가권력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들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기관이 아니라 실은 강자를 편들고 약자를 억압하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각성된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집단 행동의 잠재적 힘과 중요성을 신뢰할 수 있다. 만일 단결된 목소리가 실제 사회를 바꾸는 결과를 내게 되면, 대중의 정치적 자신감과 능동성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을 “개돼지”로 생각하는 이 세계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쉽게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집회와 시위로 평범한 사람들이 다수의 위력을 보여주면 그렇지 않을 때와 태도부터 완전히 달라진다. 평상시엔 평범한 사람들을 그저 무시하기만 했던 이들이, 두려움을 느껴서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거나 대화로 달래려고 하게 된다. 역사상 지배자들의 숱한 양보들은 양보의 형식을 갖췄을 뿐 실제로는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긴 것이다. 이 점은 지배자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어서, 이들은 집회와 시위가 잠잠해지면 양보한 것을 언제든 도로 빼앗으려 했다. 윤석열이 계엄을 일으킨 목적도 결국은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권력을 영구히 가지겠다는 것이었음을 생각해보면, 민주적 권리 또한 저들에게는 얼마든지 도로 빼앗을 대상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소규모 집회는?

대규모 집회를 주로 염두에 두고 이야기했지만 소규모 집회도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 작은 투쟁에서라도 집단적으로 승리한 경험이 있다면, 그 경험을 한 사람들은 큰 투쟁을 할 때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고 승리를 이끌어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설령 어느 투쟁이 패배한 경우라 할지라도, 정확한 평가를 통하여 지난 싸움의 장단점과 한계, 의의 등을 낱낱이 규명할 수 있다면 다음 투쟁을 승리로 이끌 전략과 전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 또, 작은 집회라 할지라도 집단적 힘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큰 집회와 같이 참가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예컨대, 세계를 바꾸는 힘은 전세계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에서 나올 것이고, 그에 비하면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투쟁은 상대적으로 작은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거대한 투쟁이 승리한다면, 마치 1990년대 필리핀 민주화 시위와 몇 년 전 홍콩 민주화 시위의 참여자들이 집회장에서 한국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것에서 보듯이 다른 나라에서의 투쟁을 고무하고 영감을 줄 수 있다. 국가 단위 뿐 아니라, 하나의 기업, 특정한 부문과 집단 등 어디서든 벌어진 투쟁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라 할지라도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자극한다. 하나의 투쟁은 다른 투쟁을 부르고, 각각의 투쟁은 서로 연대로 연결되고 강해지는 법이다. 더 많은 집회와 시위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만일 집회와 시위로 힘 있는 자들이 물러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계를 멈추는 다음 단계의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고 반드시 나아가야 할 것이다. [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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