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종전 협약 : 미국의 패배, 중동에 평화는 오는가?

이란의 승리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패배했습니다. 미국의 이란 침공은 세계를 압도적인 불안정으로 뒤흔들었지만, 미국 자신부터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치솟은 물가를 끝내 버티지 못하고 전쟁을 끝내야 했습니다. 트럼프가 한때 호언장담하던 “문명의 파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란이 승리했다는 점은 미국과 이란 사이에 체결된 MOU(양해각서)를 봐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전후 협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무엇을 이행해야 하는지 여부입니다. 이번 MOU에 따르면, 미국이 먼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해제해야 합니다. 이란은 그걸 보고 자신들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과거 북한과 미국 사이에 온갖 협상의 시도가 있었음에도 좌절됐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양자가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북한이 먼저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폭파했을 때에도 결국 협상 타결이 되지 않았던 것은, 미국이 제재 해제 등 그에 상응하는 후속 행동을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MOU에서 이란은 미국의 행동(봉쇄 해제, 원유수출 허용, 동결자산 해제 등)을 먼저 확인한 다음 나머지 조항에 대한 최종 협상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북미 회담 때와 달리, 이번에는 이란이 ‘갑’인 셈입니다.

이스라엘의 독자적 이해관계

물론 이번 협상이 정해진 그대로 이행되려면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헤즈볼라를 공격한다면서 레바논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당장 MOU 제1조(“미국과 이란, 각각의 동맹세력은 전쟁을 즉시 그리고 영구적으로 종료한다고 선언한다. 여기에는 레바논 전선도 포함된다.”)를 위반한 것입니다. 레바논에서 활동하는 헤즈볼라는 이란의 ‘대리세력’으로 분류되는데, 이란 국외에 있는 집단이지만 이란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군사적-정치적 방향을 함께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 대한 공격은 곧 이란에 대한 공격과 다름 없는 것입니다.

미국-이란 종전 합의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해 15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 연합뉴스

미국-이란 종전 합의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해 15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 연합뉴스

그런 점에서 보면, 현재 이스라엘은 마치 이란이 언제든 자신들의 레바논 공격을 명분 삼아 미국과의 MOU 파기를 주장하기 바라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군수 지원을 끊어버리면 이스라엘의 전쟁수행능력이 극도로 떨어지겠지만,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의 최고위층은 지금 네타냐후에게 짜증은 낼지언정 자신들이 지닌 가장 강력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록 이란과 굴욕적인 협상을 체결하기는 했지만, 그 MOU를 철저히 지켜내겠다고 가장 든든한 중동의 우방국과 척을 지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자유로운 군사활동 내지 그들이 야기하는 얼마간의 불안정성이 자신들에게 장기적으로 이란을 견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볼 것입니다.

평화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전쟁을 중단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미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군사력과 산업능력을 축적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방위 체계인 아이언돔이 이번 전쟁에서 이란의 구형 미사일과 드론으로 뚫리는 것을 모두가 보았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중동 인근 국가와 비교하더라도 결코 무적이 아니며, 미국의 지원이 없다면 장기적으로 전선을 지탱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MOU가 체결되어 중동에서 전쟁이 중단되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불리합니다. 평화가 지속되는 동안 이스라엘을 둘러싼 이란 등 적대적 세력이 힘을 키울 것이고, 이는 덩치가 작은 이스라엘에게 계속 위협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지배계급은 이 점을 알기 때문에 이란과의 핵협상에서 미국이 완전한 타결을 맺지 못하도록 군사행동으로 압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이런 일을 벌이더라도 미국이 중동 개입의 발판인 자신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숱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또 희생되고 있습니다.

아이언돔 개념도. 이로 인해 이스라엘이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다고 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 매일경제

아이언돔 개념도. 이로 인해 이스라엘이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다고 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 매일경제

다시 이스라엘을 앞세울 수 있는 미국

레바논을 둘러싼 상황은 정말이지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은 이란 지배계급의 머리도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란 지배계급은 이번 MOU를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어려운 시간을 버텨서 거둔 승리라는 것이 기본 입장입니다. 하지만 레바논 상황을 MOU 제1조에 넣어놓고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하는 일이 이어지자, 호르무즈를 재봉쇄하고 다시 ‘긴장 모드’로 돌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란 역시 헤즈볼라 문제에서 내부적으로 단일한 입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서도 본 것처럼,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생긴 자생적 정치세력이면서 동시에 이란에 군사적으로 크게 의존하는 무장조직입니다. 이란 지배계급 모두는 우방인 헤즈볼라의 ‘유용성’을 인정하겠지만, 그 안에서 ‘헤즈볼라는 우리의 형제’라고 생각하는 집단도 있고 ‘그래 봐야 이란은 아니’라고 보는 집단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 차이는 ‘잡음’이 있더라도 지금의 MOU 국면을 지켜 나가느냐, 헤즈볼라와 레바논을 지키기 위해 MOU가 파탄나더라도 감수할 수 있느냐는 선택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지금 이 틈을 이스라엘이 활용하고 있는 것이고, 미국도 아직까지는 이스라엘을 실질적으로 제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레바논 문제는 이후 전망을 살필 때 중요하게 다뤄야 합니다. 레바논 문제에서 생긴 입장의 간극이 이 위태로운 협정을 파국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미국과 이란이 MOU에서 정한 시한인 60일 이후 모종의 진전된 합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실제로 지켜질 것인지는 또다시 레바논에서의 대리전 문제로 시험대에 오를 것입니다. 이번 협상에서 이스라엘은 당사국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아마도 협상장에 이스라엘이 들어왔다면, MOU 자체부터 맺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장 협상장에서 이스라엘을 치운다고 해서, 중동 정세를 좌우하는 이스라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이 벌이는 참극이 예외적 일탈이 아니라 향후 정세에서 협상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라면, 이후에는 그들이 가능한 최대의 군사력을 레바논에 투입해서 협정 자체를 좌초시키려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 지배계급, 트럼프 정부가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보를 언제나 못마땅하게 여기리라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중국과 패권을 겨루는 중인 미국 지배계급에게 중동은 언제나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입니다. 이란을 경유해 중국의 영향력이 중동에서 확대된다면, 미국은 이스라엘을 앞세워 다시 중동에서 군사적 행동을 벌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운동의 과제

따라서 이런 가정과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의 관건은, 미국이 그 시점에 이스라엘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대중적 반전 운동을 건설하는 일입니다. 당장은 트럼프 자신도 중간선거를 의식해서 이란과의 협상을 서둘렀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형성된 물가상승 압력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간선거가 끝나 ‘급한 불’이 꺼지면, 앞서 본 이유 때문에 트럼프는 중동에서(또는 다른 지역에서) 다시 어떤 위험한 일을 벌이려 할지 모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번 협정조차 항복문서라며 이란에 양보하지 말아야 했다고 비난하는 민주당 의원들이 과연 트럼프를 막으려 할까요? 또, 중간선거 전에라도 선거 전망이 지금보다 더 어두워지면 트럼프는 최후의 도박으로 더 좁은 지지층을 바라보고 다시 확전을 도모할 수도 있습니다. 아예 이란과의 전쟁 국면을 만들어서 애국주의 선동으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전쟁 기간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달러 미만에서 4달러 이상으로 뛰었고, 

에너지 가격 상승은 물가 압력으로 이어졌습니다. ⓒ MBC뉴스 

전쟁 기간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달러 미만에서 4달러 이상으로 뛰었고,  에너지 가격 상승은 물가 압력으로 이어졌습니다. ⓒ MBC뉴스 

한국전쟁 당시 UN군과 북한군, 중국군은 정전 그 자체에는 일찌감치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얼마나 주도권을 잡을지를 둘러싸고 3년 가까운 시간을 밀고 당겼습니다. 그 사이 숱한 젊은이들이 의미도 없는 고지전에서 목숨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미국과 이란이 일단 체결하기로 한 MOU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이렇게 바뀔 수 있습니다. 지배자들끼리 내거는 ‘평화’ 협정을 손 놓고 쳐다보는 것만큼 무기력한 것은 없습니다. 운동의 힘이 지배계급을 강제하지 못하는 한, 언제든 충돌은 상상도 못 했던 갖가지 버전으로 변주되어 현실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이번에 패배했지만, 우리가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닙니다.[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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