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이 글은 3월 셋째주 월요일 베프레터에 실렸습니다.
지난 3월 9일, 베프레터는 한국이 “2000년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혈맹’으로서 어떤 역할을 요구받게 될 수도 있다”고 파병 요청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더 빨리 트럼프 정부가 한국을 압박해왔습니다. 한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4개 나라와 중국에 이란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청한 것입니다. 트럼프는 “미국은 해안선을 폭격”할테니, 다른 나라들이 직접 “군함을 보내” 유조선과 상선을 호위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제까지 미국이 요구한 침략 전쟁, 특히 중동에서 벌인 전쟁에 계속해서 협력해왔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도 파병했고, 중동의 미국 동맹국들에도 무기를 지원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을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한국 정부가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중동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의 경험이 오히려 이런 필요성을 더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정당성이 조금도 없는 전쟁
이란 전쟁에 한국 군대가 파병되어서는 안되는 가장 분명한 첫째 이유는, 이 전쟁에 아무런 정당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이란의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워 공격을 시작했지만, 3월 13일 CNN과의 인터뷰에서는 본심을 드러냈습니다. ‘이란이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며 “미국과 이스라엘을 잘 대우하”는 정부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 것입니다. 실제 공격의 결과 역시 민주주의의 진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 반대였습니다. 독재자 아버지보다 더 강경한 모지타바 하메네이가 권력을 승계했고, 170여 명 초등학생 사망 등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은 하나로 단결해 외세에 맞서자는 여론을 결집시키고 있습니다.
한 이란 언론인이 지적한 것처럼, 현 시점에서 이란에 민주주의가 꽃필 현실적인 경로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트럼프는 이미 2018년에도 핵 합의를 걷어차고 이란에 최대 압박 제재를 가하면서 도리어 이란 내의 자생적인 개혁 운동을 약화시킨 적이 있습니다. 이번 공습은 이란 내 세력관계에서 그보다 더한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내세우며 전쟁을 시작했지만, 그 끝은 탈레반의 완승이자 여성 인권의 유례없는 재후퇴였습니다. 2003년 ‘독재자 후세인 제거’를 내세워 시작한 이라크 전쟁은 2010년대 ISIS의 부상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이런 무의미한 전쟁에 한국인들이 연루할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쉽게 끝나지 않을 위험천만한 전쟁
트럼프 정부와 미국 지배계급은, 그럼에도 이란의 민주주의 대신 이 전쟁을 통해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중동의 주요국가들을 모두 통제권 범위에 넣음으로써, 중동 지역으로부터 다량의 석유를 수입하고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입니다. 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당시 의도했던 것처럼,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를 보임으로써 동맹과 경쟁국들 사이에서 확고한 서열을 정리하려는 것입니다. 트럼프로 한정해 보자면, 그는 국내에서 처한 정치적 어려움을 전쟁을 통해 타개하려는 의도 또한 분명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전쟁을 하는 바로 그 이유, 중동이 지정학적으나 경제적으로나 매우 중요하다는 그 사실이 이 전쟁을 쉽게 끝내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미 보고 있듯이, 석유가 이란의 최대 무기가 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유가가 폭등하자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우호국만 선별해 통과시킴으로써 유가 인상으로 인한 타격을 극대화하려 합니다. 트럼프가 돌연 셀프 종전 또는 승리 선언을 하며 출구 전략을 찾는 이유도, 이란이 오히려 “전쟁을 끝낼지 말지 정하는 것은 우리”라며 강하게 나오고 있는 것도 모두 이런 조건 때문입니다. 이란은 이번 기회에 미국이 다시 섣불리 공격할 수 없도록 상황을 확실히 정리하기를 원합니다.

공중에서의 미사일 공습만으로 이란을 굴복시킬 수 없다면, 결국 미국 입장에서는 지상군을 투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지상군을 보내 20년 동안 싸웠지만 결국 패배하고 철수했습니다. 이라크에도 2003년 군대를 보냈지만, 상황을 정리하기는커녕 저항군과 끝없는 전투의 수렁에 빠져 2011년부터 철수해야 했습니다. 시리아에서도 미국의 지상군은 12년 만에 전원 철수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란은 이 나라들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인구는 거의 1억에 가깝고, 면적도 이라크의 3~4배 수준입니다. 하메네이가 직접 통제하는 혁명수비대는 19만 명, 정규군 병력도 42만 명에 이릅니다. 결국 미국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주로 공중전에 국한될 수밖에 없고, 이란은 이에 대응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필사적으로 이어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교착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상호 교전은 호르무즈에서 이루어질텐데, 미국은 바로 이곳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라고 한국군에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익”이라는 허상, 평범한 사람들만 희생될 전쟁
지금 트럼프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를 받는 국가들”이 이 전쟁의 ‘비용’을 나눠서 감당해야 한다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전쟁을 시작한 것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를 받는 국가들”이 아닙니다. 그 나라들의 국민, 심지어 미국의 국민들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롯이 트럼프 자신이, 멋대로 이 부정의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야기하고 있는 온갖 문제를 해결할 유일하고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쟁을 즉각 끝내는 것입니다. 여러 나라들을 끌어들여 충돌을 확대한다면, 전쟁은 더 길어지고 그로 인한 파장도 지금보다 더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파병이 “국익”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입장에 설 수도 있습니다. 비록 파병 반대 입장을 밝히기는 했지만, <한겨레> 같은 진보 언론 역시 파병의 판단 기준이 “국익”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뒤 관세 인상과 대미 투자 확대 요구, 국방비 증액 압력과 주한미군 재배치 움직임 등 경제·안보 전반에 걸쳐 압박이 고조되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인 건 맞다. 꽉 막힌 남북 관계의 혈로를 뚫기 위해 그의 협조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트럼프에게 신라 금관까지 선물해가며 “관세 합의”를 이끌어 냈지만, 트럼프 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슈퍼 301조 발동 등을 내세우며 관세 인상을 수시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의 일방적 요구에 따르거나 악행에 동참하는 것으로 “국익”을 도모할 수 있는지조차 의문스러운 것입니다. 만일 한국 정부가 군대 파병에 동의한다면, 트럼프는 그 다음에 더 큰 희생과 비용을 한국에 요구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미국이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베네수엘라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트럼프는 세계 전역에서 더 위험천만한 일을 벌이며 한국의 동참을 요구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체 이란의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켜가며 지켜야 할 우리의 “국익”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란 전쟁으로 사망한 미군 7명과 부상자 140명은 모두 미국의 평범한 노동계급 사람들입니다. 미국 본토에서 벌어진 이란 공격 보복 테러 의심 사건의 희생자들도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나 미국의 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유가 폭등으로 경제적으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도 미국의 서민들입니다. 이런 위험을 대가로 생길 수도 있는 전쟁의 “이익”은 기업들에게 돌아갈 뿐입니다. 한국이 파병한다면, 그 이후 벌어질 상황을 직접 감내해야 하는 이들 역시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라크 전쟁 중 미군 부대에 군수품을 납품하다 저항세력에 살해된 김선일씨 사건 같은 비극을 떠올려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단결된 반전운동, 국제적 반전운동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원해야 하는 결말은, 바로 트럼프 정권의 종식입니다. 그러려면 미국 내 이란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 트럼프에 반대하는 운동이 더 커져야 합니다. 한국이든 다른 어떤 나라에서든 파병이 이뤄지면, 이는 이 침략 전쟁에 대한 지지로서 트럼프를 우쭐하게 만들고 미국 반전 여론의 사기를 꺾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파병에 반대하는 운동이 대중적으로 벌어져, 한국 정부가 전쟁에 동참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2003년 이라크 전쟁과 파병에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하면서, 수만 명의 목소리를 거리에서 결집시키는 데 성공한 바 있습니다. 비록 당시 파병을 막지는 못했지만, 국제 반전 운동의 일부로서 한국의 운동은 미국이 벌인 전쟁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운동을 다시 재건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의 대중적 반전 운동은 과거보다 약화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회 단체와 진보 정당, 활동가들이 단결해 미국의 이란 침략에 분명한 초점을 맞추어 규탄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지금은 이란 정권에 대한 비판보다 트럼프 정부의 전쟁을 멈추는 것이 모두의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이란의 민주주의는, 오직 이 전쟁이 끝난 뒤에야 이란 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될 수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