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이 글은 “베프레터”(3월 둘째주 목요일 발행호)에 실렸던 <궁금해요, 맑스쌤>를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Q. 자본주의가 아닌 완전히 다른 사회라면 결국 이미 망한 소련이나 중국, 북한 같은 곳들 아닌가요? 그런 사회보다는 차라리 지금 자본주의 체제, 자유민주주의가 훨씬 나은 사회 같아요.
A. 사실 맑스가 직접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다른 사회의 예시로서 제시한 것은 프랑스의 1871년 파리꼬뮌 뿐입니다(<프랑스 내전>). 맑스가 살아있을 때는 소련, 중국, 북한 같은 나라들이 없기도 했지만, 그 나라들의 특징은 그가 파리 꼬뮌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주목한 부분과 너무 큰 차이가 있습니다. 파리 꼬뮌은 노동자들과 평범한 민중이 직접 운영하는 국가였습니다. 법관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과 대표는 노동자들이 직접 선출하고, 언제든지 노동자들이 소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특권층이 아니라 노동자 평균 정도의 임금만 받고 일했습니다. 야간 노동이 금지되고, 임대료 체불을 이유로 한 강제 퇴거도 금지되었으며, 작업장과 공장을 노동자들의 조합이 운영했습니다. 모든 아동은 무상교육을 받았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도 초기에 파리 꼬뮌과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고, 성공 직후 역사상 유례 없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병사들의 평의회가 군대를 움직이고, 노동자들이 대표를 선출해 공장을 운영하고, 농민들은 지주를 쫓아내고 토지를 얻었습니다. 노동자, 농민, 병사로 구성된 평의회(소비에트)가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했고, 선출된 대표들은 언제나 소환될 수 있었습니다. 여성들의 보통 선거권, 이혼의 권리, 임신 중단의 권리가 보장되었고, 옛 러시아 제국에서 분리하기를 원한 소수 민족들에게는 독립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러시아 혁명은 내부로부터 붕괴했습니다.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의 혁명이 실패했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러시아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러시아의 백래시 세력과 손잡고 쳐들어왔고, 이를 막기 위한 과정에서 전쟁과 극심한 기아 때문에 새로운 사회를 운영해오던 주체인 혁명적 노동자 계급이 사라졌습니다. 혁명 러시아는 주인을 잃은 사회가 되었고, 그 권력의 공백을 노동계급의 ‘대표’를 자임하는 공산당 관료들이 메웠습니다. 결국 러시아는 사회주의와 노동자의 이름으로 관료들이 노동자를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서방 자본주의와 군사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자본을 축적하고 노동계급을 쥐어짜기 시작했고, 불평등과 차별, 혐오, 비민주성이 다시 사회를 채웠습니다. 소련은 자유 시장경제와는 겉보기는 다르지만, 실상 서방 자본주의와 다름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북한과 중국도, 노동자와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당 관료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점은 똑같습니다. 소련과 차이가 있다면, 두 국가는 아예 노동계급이 실제로 권력을 잡아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만든 적조차 없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북한은 소련의 군대가 김일성 정부를 수립한 것이고, 중국 역시 농민을 주된 지지 기반으로 하는 공산당이 무장한 군대로서 권력을 잡은 것이니까요. 노동 계급 대중이 대규모 파업을 통해 정치의 주체로 거듭나고, 평의회를 세워 그 이름으로 기성 사회의 국가를 해체한 적이 없는 것입니다.
맑스가 제시한 사회주의 사회는 곧 가장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단순히 몇 년에 한 번 하는 형식적 선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대표와 권력은 소환 가능해야 하고, 소위 시장경제의 고유 영역이라고 불리는 모든 경제적 영역들까지 노동자들이 직접 민주적으로 계획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맑스가 지금 살아있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사회주의의 모델로 소련이나 중국, 북한 등을 제시한다면, 아마 그는 우리가 참고할 역사적 경험과 사례는 아주 다른 데에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