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단 여성을 살인자로 낙인 찍는 사회, 여성은 뒷전인 이재명 정부

지난 4일, 법원은 ‘36주 태아’를 대상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진행하여 출산한 뒤 냉동고에 넣어 살해하였다는 이유로 임신 중지 여성(징역 3년ㆍ집행유예 5년), 병원장(징역 6년), 집도의(징역 4년)의 살인죄 유죄 판결을 했습니다. 태아가 사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배출될 것이라는 점을 여성이 알았음에도, 수술 이후 태아가 어떻게 될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며 ‘살인의 고의’를 인정한 것입니다.

임신 여성의 현실

그러나 이런 판단의 프레임 자체가 임신 중지를 결정하는 여성들의 처지에 대한 무지를 드러냅니다. 임신 중지를 결정하는 여성들은 당장의 출산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절박함과 불안 속에서, 시술의 의학적 과정(태아가 체내와 체외에서 어떻게 되는지 등)이 아니라 ‘임신 중지가 가능한지’, 임신 중지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의 문제에 모든 주의가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건의 여성처럼 임신한 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사실을 갑작스레 알게 되었다면, 더더욱 불안감이 극에 달했을 것입니다.  

임신 중지를 했거나 고민하는 여성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임신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여성들을 더 곤혹스럽고 궁색한 처지로 몰아가는 일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처럼 임신 중지 수술로 큰 돈을 벌고자 하는 의사와 브로커들에게만 득이 될 것입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국가가 여성들에게 임신중지가 가능한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임신 중지를 위한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노력에 나서는 것입니다. 나아가, ‘중산층 이상의 정상 가족’에 속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출산 이후 양육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임신 중단 입법 공백을 방치하는 정부

하지만 지금 현실의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벌써 7년이 되어가는데도 입법 공백이 방치되고 있습니다. 2019년 이후 대통령이 세 번 바뀌었는데도 입법 공백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여성, 소수자들이 참여한 ‘빛의 혁명’에 빚진 이재명 정부 역시, 출범 10개월이 된 현재까지도 어떤 움직임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임신 중단 문제 외에도, 비동의강간죄 도입, 교제폭력처벌법 제정, 스토킹처벌법·가정폭력처벌특례법 개정, 성평등 임금공시 5법 등 여성들의 삶을 위한 여러 과제가 이재명 정부에서 방치되어 있습니다. 여성과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차별금지법 논의는 더더욱 요원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8일“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건 전 정부로 인해 성평등 정책이 축소되고 후퇴”하였다며, “이제 그 흐름을 되돌려 성평등 정책을 제자리로 복원하고 … 실질적인 성평등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메시지를 내었습니다. 이재명과 민주당의 이해관계가 걸려있거나 주요 의제로 삼고 있는 사법개혁 3법, 상법 개정안, 행정 통합 특별법 등은 일사천리로 힘차게 밀어붙이면서, 여성과 소수자의 삶은 뒷전으로 내팽개친 채 말만 늘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가만히 내버려 두기만 한다면 결코 정부가 ‘알아서’ 우리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VF]

VERY FRONT 베리프론트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