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11월 5일, 미국 뉴욕 시장 선거에서 “민주사회주의자” 조란 맘다니가 당선했습니다. 임대료 동결, 무상버스 도입 등 급진적인 공약을 내건 그의 당선은 미국의 반트럼프 정서와 No Kings 시위의 성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2025. 10. 18. 진행한 <이달의 포럼> “트럼프는 왜 저럴까“의 발제와 토론을 정리한 것으로, 트럼프의 행동을 트럼프라는 ‘개인’의 특징 대신 미국 자본주의와 지배계급의 이해관계, 그의 지지 기반 등에 초점을 두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들어가며
트럼프를 보는 가장 흔한 시각은, “쟤 왜 저래”일 것입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 상태’라고 생각하는 규칙이나 상태를 무시하고 뒤흔듭니다. 중국과 요란하게 관세전쟁을 벌이고, 조지아주에서 멀쩡한 한국 노동자들을 잡아가고, 군대를 유명한 미국의 대도시들에 투입합니다. 법원에서 군 투입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려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트럼프가 언제나 일관되게 막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트럼프는 종종 허세를 부리는 것으로 보일 때도 있고, 입장이 순식간에 오락가락하기도 합니다. 중국에게도 으름장을 놓았다가 다시 잘 해보자고 했다가 난리법석이고, 한국과도 7월에 협상을 잘 타결했다고 자랑하더니 또 뒤에서는 다른 요구를 갑자기 제시합니다.
이런 좌충우돌을 ‘트럼프 특’의 협상 기술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이는 트럼프 또는 트럼프가 대변(해야)하는 미국 자본주의와 자본가 계급의 모순되는 이해관계, 트럼프 지지 기반 내부의 모순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트럼프가 벌이는 모든 비합리적이어 보이는 행동은, 그런 관점에서 관찰할 때 비로소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20세기 자본주의에서 미국의 패권적 지위
먼저,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기존 자본주의 흐름을 역행하는 쌩뚱맞은 시도라고 볼 수 있는지 살펴봅시다. 신자유주의가 상식이 된 지난 수십 년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을 동의어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국제적 성격과 보호무역은 양립해왔습니다. 예컨대, 1차 세계 대전이 자본주의 열강들 사이에서의 식민지 경쟁, 각 국가의 독점적 원료 수급처와 시장 확보 때문에 벌어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자유무역은커녕, 총칼을 동원한 자국 우선의 보호무역이었던 거죠. 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 체제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도 관세와 무역장벽은 계속 존재해왔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미국이 한국에 구제금융의 대가로 요구한 것도 온갖 시장을 외국 자본에 자유롭게 개방하라는 것이었으니까요.
다만, 미국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 시장이 점점 더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과정에서 쌓은 패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브레턴우즈 체제를 설계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기구를 만들었고, 마샬 플랜을 통해 전후 유럽의 산업 재건을 지원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에도 막대한 경제 원조를 제공했죠. 군사적으로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만들어서 유럽의 방위를 보조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서유럽 국가들과 신흥 자본주의 국가들은 미국에 의존했고, 미국 자본가들은 최강대국의 주인으로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세계 체제를 만들어 관철할 수 있었죠. 예컨대, 미국은 자신들이 유리한 분야에서는 자유무역을 주장해 경쟁국의 관세 철폐, 시장 개방 등을 요구했지만, 미국 경제를 위해서는 슈퍼 301조 등을 내세워 자유무역 협상이 결렬되면 보복 관세를 매기는 등 사실상 보호무역 조치를 취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질서는 1990년대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의 문을 닫고 시장 자본주의로 전환하면서 결국 전 세계로 확장되게 됩니다.

미국 자본주의의 모순
그러나 이런 과정을 미국 자본주의의 승승장구로만 이해하는 것은 일면적입니다. 미국의 패권을 확고히 하는 과정이 곧 미국의 입지를 점점 더 불안정하게 하는 모순적인 현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미국 자본주의의 지배력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는 굉장히 단단해 보였습니다. 자본주의의 황금기인 이 시기 동안, 경제는 마치 성장만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막대한 자본이 이미 파괴된 상태였고, 냉전기 군비경쟁으로 막대한 자본이 군수산업에 투여되면서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자본주의의 이윤율 저하 경향이 마치 사라진 듯 보였지요.
하지만, 오일쇼크를 전후로 다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본격화됩니다. 잘 나가던 나라의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미국 자본주의도 여러모로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미국은 정부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즉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패권 국가로서 미국이 추구한 전략의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미국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로부터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유럽과 일본의 경제를 살리려 애썼습니다. 그래서 이들 나라의 자본가들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물건을 수출할 수 있게 적극 허용했고 이는 결국 무역적자로 이어졌습니다. 또, 미국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고 자본주의 진영 안에서의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군비를 지출했는데, 이것이 베트남 전쟁 장기화와 패전으로 맞물리면서 정부 재정적자의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막대한 돈을 군비에 쏟아붓는 동안, 독일과 일본 등 경쟁국가들은 모든 자원을 경제성장에 집중시켰습니다. 그 결과, 경제력에서 보면 미국의 독주 체제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독일은 EU 창설을 주도해 유럽 자본주의의 입지를 더 키우려 했고, 일본은 버블 붕괴 이전 경제 전성기를 누리며 지금의 중국처럼 미국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흐름에 위협을 느낀 미국 자본가들은 기존 전략을 일부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경제적으로야 후발 주자들과의 격차가 사라지고 있었지만 냉전기부터 쌓아온 압도적 군사력만큼은 여전했기 때문에, 미국 자본주의는 이 힘을 전 세계에 과시해 패권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미국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을 통해, 경제적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한 것이죠. 그래서 미국은 주요 자본주의 열강이 아닌 나라들, 특히 미국에게 대항하는 주변부 국가들을 대상으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9.11. 테러를 구실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이 바로 그런 사례였습니다. 그러나 그 전쟁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오히려 미국의 군사력이 가진 취약성을 드러냈습니다. 미국의 군사적 패권마저 과거에 비해 약화된 것이죠.

중국 자본주의의 부상
이런 상황은 중국이 자본주의 핵심 국가로 떠오르는 과정과 맞물렸습니다. 중국은 단일한 정치세력(공산당)이 국가기구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고, 그 국가기구가 자본을 통제하는 나라입니다. 시장경제를 도입해 이윤 논리에 따라 수많은 기업들이 움직인다는 점에서 서구 자본주의와 큰 공통점이 있지만,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그 기업들을 강력히 개입하고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 국가 역시 중국 자본주의 전체의 이윤과 경쟁력을 위해 그런 통제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서구 자본주의 국가와 본질적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지요. 마치 한국에서 박정희, 전두환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자본주의 시장 경제라는 무대 위에서 기업들이 배우로 움직이지만 국가는 연출자로서 강력한 존재감을 내뿜으며 장면마다 강하게 개입한다는 것이죠. 어찌 됐든, 강력한 국가의 리더십 하에 국제 자본주의 시장에 뛰어든 중국은 수십 년 만에 거대한 노동력 시장과 소비 시장을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자본 축적을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중국은 미국에 유일하게 견줄 수 있는 경제적, 군사적 강국입니다. 미국이 세계 GDP의 25% 정도 비중을 차지한다면, 중국은 15% 정도의 비중을 차지합니다. 세계 무역 비중은 미국과 중국이 모두 10% 가량 차지하는데, 중국이 소폭 더 많은 무역 액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수치는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서 핵심적 생산기지, 글로벌 공급망의 기점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반영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이 최근 미국과의 관세전쟁에서 내세운 희토류는 반도체와 첨단 무기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원료지만, 전 세계 생산량의 92%가 중국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 없이는 반도체도, AI도 없는 것입니다. 애플의 아이폰을 포함한 수많은 제품은 중국에서 생산되고, 세계로 수출됩니다. 또, 중국은 아이폰의 미국 다음 가는 시장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제조업 분야의 생산과 소비 모두에서 중국을 뺀다면, 세계 시장 자체가 굴러갈 수 없는 것입니다.
중국은 이런 성장을 기반으로 자신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만들고자 합니다. 중국 정부는 “중국제조 2025″라는 경제 개발 계획을 세웠습니다. 중국이 선정한 핵심 산업 분야에는 반도체, 신소재, 공작기계와 로봇, 신에너지자동차, 바이오의료기기, 우주설비, AI, 양자컴퓨터 등이 포함됩니다. 미국이 자신들의 중요한 먹거리로 삼는 초대형 기술 산업들, 즉, 전기차, IT, 첨단기기 등과 상당 부분 겹칩니다. 또, 중국은 2020년 미국 정부에 돈을 가장 많이 꿔 준 나라 2위였습니다(채권 보유국 1위는 일본). 중국은 자신들이 가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방예산도 계속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309조원을 국방비로 사용했는데, 이는 미국이 군사비를 줄이고 있는 상황과 대조됩니다. 여전히 세계 군사력 1위는 미국이지만, 중국의 군사비 증가 속도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을 훨씬 초월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러한 국방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에 맞서는 지정학적 블록을 만들고자 합니다. 육상과 해상의 실크로드를 만든다는 ‘일대일로’ 정책으로 아프리카와 중동, 동남아시아를 묶고, 이제 남아메리카에도 진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 미국 지배계급의 핵심 과제; 중국에 대응하기
일찍이 레닌은 고도화된 자본주의의 핵심 특징이 바로 자본주의 열강들 사이의 군사적 경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강대국 사이의 경제적 경쟁이 결국 정치적 대립과 군사적 경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세계 1,2차 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의 크나큰 재앙이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은 국제 자본주의 시장에서 패권적 지위를 확립하였지만 지금은 그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위협하는 것은 바로 중국 자본주의고요. 실제로 두 열강은 지정학적으로도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도 그렇고, 특히 한반도에서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 등을 명분 삼아 사실상 중국을 겨냥해 한국과 일본까지 동원한 군사훈련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견제는 트럼프 고유의 것이 아니라, 민주당 행정부 때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해왔습니다. 오바마 정부는 대외전략의 핵심을 아시아로 이동시킨다며 ‘피봇’ 전략을 천명했고, 바이든도 이를 계승해 ‘피봇 2.0’을 천명했습니다. 바이든 정부도 2024년 180억 달러의 수입물품을 대상으로 중국에 관세 폭탄을 때린 바 있습니다. 중국의 부상을 틀어막고,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 지배계급 전부의 목표이자 합의인 것입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한다면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서의 지위를 곧 잃어버리게 될 수 있을테니까요.
트럼프주의의 고유성
민주당과 트럼프의 차이는 바로 이러한 공통의 목표를 실현하는 방법적 차이에 있을 뿐입니다. 민주당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 의존성을 좀 더 고려해야 하고, 과거 미국이 써왔던 전략대로 ‘큰 형님’으로서 유럽과의 전통적 동맹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런 방식이 너무 미온적이라고 봅니다. 그는 중국은 물론, 유럽이든 일본이든 미국의 ‘희생’에 무임승차하는 경쟁자들에게 어떤 양보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민주당 정부의 무능에 환멸을 느끼면서 ‘급진적’ 사회 변화를 원하는 대중의 지지를 결집시켰습니다.
예컨대, 트럼프는 동맹들에게 안보 비용의 분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관세를 무기로 나토 회원국들이 GDP 대비 2%의 국방비를 지출하라고 압박한 것입니다. 또, 트럼프는 지난 세기에 미국 자본주의가 관대하게 허용해왔던 동맹국들의 경제적 성장을 더는 순순히 허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관세 전쟁은, 미국도 똑같은 플레이어로서 다른 나라 자본가들과 경쟁하겠다는 적극적 의사표현입니다. 특히, 트럼프는 미국의 쇠퇴한 제조업을 다시 부흥시켜 유럽, 일본 등과 경쟁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심지어 애플처럼 해외에 생산기지를 둔 미국 자본에게 다시 국내로 돌아와 공장을 지어 생산하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해야 미국인을 위한 일자리가 늘어나고, 서민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트럼프주의의 특징들은 분명 앞서 본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미국의 제조업 부흥과 연결된 또 한 가지 트럼프주의의 특징은 바로 이민자 혐오입니다. 트럼프는 미국 경제의 불황, 그로 인한 서민들의 생활고와 인플레이션, 실업 등이 모두 외국(인) 탓이라고 주장합니다. 전통적 동맹국을 포함한 외국들이 모두 미국에 물건을 팔아치우면서 이득만 보고 미국 경제를 죽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외국 제조업 때문에 미국 제조업이 망해서 일자리가 없고, 가뜩이나 부족한 일자리도 외국인(불법이민자)들이 차지해 미국 노동계급이 더 힘들어진다는 논리입니다. 트럼프는 이런 전형적인 극우 논리를 통해 자기 지지 기반을 조직해 나갔습니다.
트럼프의 모순
문제는 트럼프의 애국주의와 극우 선동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자본가들의 이해관계와 항상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기업 규제 완화, 감세, 감세를 뒷받침하는 복지 제도 축소 등의 측면에서는 공화당 전통에 완전히 충실하고, 이는 일론 머스크 같은 자본가들이 트럼프를 지지할 분명한 이유가 됩니다. 중국 기업과 국가에 대한 적극적 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적으로, 중국 전기차 산업과 첨단 산업을 견제하겠다는 것은 테슬라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자본가들의 상당 수는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통합되어 이윤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애플은 중국에 생산 근거지를 두고 있고, AI 사업체들은 반도체, 즉 희토류가 필요합니다. 미국 자본가들은 2022년 상반기 기준으로 핵심광물, 에너지, 정보통신기술, 공중보건에서 굉장히 많은 핵심 부품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46개 품목은 100%, 56개 품목은 90% 이상 중국에서 들여옵니다. 따라서, 트럼프가 벌이는 관세 전쟁과 중국과의 긴장 지속, 나아가 값싼 인건비로 돌릴 수 있는 멀쩡한 해외 공장을 뜯어서 미국으로 들어오라는 압박 등은 자본가들에게 전혀 달가울 수 없습니다. 관세 전쟁으로 주가가 널뛰기 하면 금융 자본가들도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트럼프를 지지하는 극우 세력, 미국 민주당의 배신과 무능에 환멸에 차 있는 우경화한 노동계급, 중간계급 대중의 일부는 트럼프의 애국주의 선동에 호응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스티브 배넌입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수석전략가로도 일한 바 있는 이 극우 인사는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에, 관세를 지지하고 심지어 부자들을 쥐고 흔들고 싶어합니다. 배넌은 극우 대중운동을 만들고 싶어하고, 자본가들이 국가를 위해 세금을 더 내고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얼마 전 사망한 찰리 커크 역시 이민자 혐오, 인종 차별 지지, 여성 혐오, 성소수자 혐오 등으로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조지아 주에서 한국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검거한 사건 역시 트럼프의 극우 지지자의 신고로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조지아주에서 현대차의 투자에 엮여 있는 미국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은 이 신고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현대차 사건뿐 아니라, 멕시코 등 남미 출신 불법 이민자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이 자기 사업에 유용한 자본가들은 ‘도를 넘는’ 이민자에 대한 트럼프의 비난과 단속이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 권력을 유지하고 휘두르기 위해, 이렇게 서로 상충하는 지지 기반에 기대야 합니다.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 계정에 극우적 선동을 올리고, 동맹국들을 비난하고, 관세 협상의 성과를 과장하는 것은 모두 극우 또는 우익 포퓰리즘 성향 대중의 지지를 결집하려는 목적과 연동되어 있습니다. 미합중국 이민세관단속국(ICE)를 내세워 잔혹한 이민자 사냥을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행위에 반대하는 미국 진보 대중의 시위와 여론에 맞서려면, 트럼프 입장에서는 더더욱 이런 극우 대중의 존재와 지지가 필요해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트럼프는 미국 자본가들로부터의 지지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자본주의 국가 권력의 존재 목적은 그 나라 자본주의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고,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하는 모든 일도 결국 중국을 누르고 미국 자본주의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그런 일의 일부는 중단기적으로 미국 자본가들의 상당수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러한 자본가들은 국가 권력을 운영할 다른 정치세력, 즉 민주당으로 기울 것입니다.
전망
미국 자본가 일부와 미국 진보 대중의 반트럼프 정서는 이미 전국적 차원에서 거대한 투쟁으로 발전해 있습니다. 지난 10월, 트럼프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 5백만 명은 2,100개가 넘는 도시와 마을에서 ‘왕은 없다 No Kings’ 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트럼프는 이전부터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주방위군을 주요 도시에 투입해왔고, 민주당 출신 주지사와 시장 등은 반트럼프 운동의 입장을 대변하며 반기를 들었습니다. 미국 법원의 일부 판사들도 트럼프 정책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 미국의 정치 상황은 굉장히 유동적입니다. 미국의 정치적 지배계급과 경제적 지배계급이 트럼프 지지와 반대로 분열하고 있고, 진보 대중은 행동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기존에 대중에게 주목받지 못하던 좌파적 정치세력도 새로이 영향력을 가질 기회를 얻을 수 있고(뉴욕 시장 선거에서 조란 맘다니 같은 좌파 후보가 급부상하게 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투쟁에 개입할 기회도 잡을 수 있게 됩니다. 트럼프는 미국 자본주의를 구출하기 위해, 그리고 그런 구원자인 자신의 정치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계속해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대중의 저항을 더 키울 것이고, 그러한 저항은 트럼프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게 만들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정한 방향이 무엇이든, 이미 자본의 생산과 소비 세계화가 상당 부분 진척되어 있어 이 추세를 단기간에 역전시키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자본가들 상당수부터 이를 원하지 않을테니까요. 아마 트럼프가 이런 모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더 단호해지고 더 극우적이 된다면, 그에 맞선 투쟁 역시 더 커질 것이고 반드시 커져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계급투쟁에 미칠 영향?
한편, 트럼프의 행보는 한국 자본주의 경제 또는 한국 자본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유럽과 일본에게 그랬듯이, 한국에게도 관세 인상을 압박하고 수천억 달러를 (강제) 투자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주한미군의 방위비 인상 또는 부대 주둔 토지 증여 등의 요구도 내놓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한국 자본가들이 받아들이고 감당 가능할 만한 수준의 거래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압박에만 있지 않습니다.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도 신경써야 합니다. 한국 역시 경제적으로 중국에 대한 대외 의존도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미중 갈등에서 일방적으로 미국의 편만 들었다가는 한국 자본가들부터 반발할 것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줄타기와 협상이 어떤 결론에 이를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설령 미국과 어떤 접점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지난 7월 협상 때 그랬던 것처럼 미국 정부의 뒤통수 치기나 말 바꾸기, 협정 해석과 적용을 둘러싼 긴장이 계속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협상 과정에서 이재명 정부가 한 합의의 결과가 한국 노동계급의 삶의 수준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한국의 정치상황도 크게 요동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일부 민족주의 좌파 경향의 활동가들이 주로 ‘굴욕적 대미협상 반대’ 등을 외치며 시위에 나서는 수준이지만, 그때는 대중투쟁이 벌어지게 될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운동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그 투쟁은 대중 의식의 모순을 드러낼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잘못된 협상의 책임을 정부에게도 물어야 하는지, 아니면 ‘우리’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트럼프에 대해서만 반대해야 하는지 같은 논쟁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해 협상 결과의 대가를 노동자도 함께 져야 한다는 논리도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혼란은, 활동가들이 운동을 회피하거나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아니라 정반대로 적극 뛰어들 이유입니다. 현재 미국의 No Kings 시위에도 트럼프의 대안이 도로 민주당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개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유능한 급진좌파 활동가들이 있는지 문제가 결국 운동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결국 트럼프의 등장은 기존의 세계 자본주의 질서,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트럼프의 행동은 미국 안팎의 투쟁의 촉매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러한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할까요? 지난 몇 년 중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과제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져야 할 시점입니다.[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