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네팔은 에베레스트 산을 떠올리는 것 이외에는 낯선 나라입니다. 조금 더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네팔은 중국과 인도 사이에 낀 가난한 나라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하지만 네팔의 실상을 찾아보면 의외의 숫자를 마주하게 됩니다. 총 인구는 3천만 명이 조금 못 되지만 면적은 14만 제곱킬로로 남한의 1.5배 가량인 꽤 큽니다. 중국과 인도 사이에 있어서 그렇지 네팔은 중간 규모는 족히 되는 나라인 것입니다. 이 작지 않은 나라가 최근 뒤흔들리고 있습니다.
1. SNS 금지가 그토록 큰 시위를 불러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발단은 네팔 정부의 SNS 금지조치였습니다. 정부는 SNS가 가짜뉴스를 퍼뜨리기 때문에 규제한다는 명목 하에 감독관을 지명하여 정부의 규제를 받아들이도록 업체에 강요하였습니다. 하지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X 등 미국 기반의 업체들은 규제를 따르지 않았고, 정부는 이들의 사용을 금지시켰습니다.
SNS 금지는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네팔에서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네팔은 인력수출국가입니다. 자국 내 산업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없고, 네팔 내 청년 실업률은 20%에 달합니다. 그러다 보니 해외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네팔 GDP의 1/3이 해외에서 돈을 벌어 네팔로 송금하는 것일 정도입니다.
해외에 나간 이 사람들이 본국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송금하는 창구가 바로 SNS였습니다. 한국에서 SNS가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의미에 가깝다면, 네팔에서 SNS는 말 그대로 네팔 사람들의 밥줄이 걸린 문제였던 것입니다. 더구나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오랜 기간 무능했으니 SNS 기업이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데에 일조한다는 정부의 주장을 일축하고 금지조치에 강력하게 반발했던 것입니다.
모든 시위가 그렇듯, 시위가 촉발된 계기가 곧 시위의 원인은 아닙니다. 정부가 SNS를 막은 조치에 반발하여 모인 시위대는 자신들의 궁핍한 생활과 네팔 지배층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권의 부패는 고질이었고 수사와 처벌은 유야무야되기 일쑤였지만 네팔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차곡차곡 분노를 쌓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모인 시위대는 곧장 정부청사와 국회를 봉쇄하였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정권이 경찰을 투입하여 폭력적으로 시위대를 진압하려 했고 최소 72명이 사망했습니다. 분노한 시위대는 정부청사와 국회에 불을 질렀고, 부패의 상징이던 힐튼호텔을 완전히 태워버렸습니다.

2. 좌파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라던데요?
전세계가 다층적인 정치경제적 위기에 봉착한 지금, 기성정치에 분노하여 시위가 발생하는 것이 특이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네팔의 시위가 전세계 좌파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가볍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위대가 그토록 증오하는 정부가 그동안 “좌파”를 자칭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시위 이전까지 네팔에서 가장 의석수가 많은 정당은 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많은 정당은 중국의 마오쩌둥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었습니다. 이들이 연합하여 정부를 구성했기에 네팔의 정권은 그간 좌파로 분류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이제까지 여러 사회개혁을 시도하다가 시위에 직면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네팔은 2008년에야 왕정이 폐지될 정도로 억압적인 군주제 국가였습니다.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왕정에서 귀족을 담당하던 이들은 유력 가문이 되어 여전히 막대한 정치경제적 권력을 휘두르고 있고, 네팔 정치는 회전문이라고 불릴 정도로 귀족들이 돌아가며 집권하여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권력을 잡은 좌파정당들은 기존 질서를 재편하기는 커녕 그들 스스로 기존 질서의 일부가 되기를 선택했습니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이름을 걸고 지주제에 도전하여 농민들을 위한 토지개혁에 나선 적도 없었고, 경제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확대한 적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 자신은 먼저 자본주의를 네팔에 정착시키고 평화롭게 “사회주의”로 이행하겠다는 단계적인 구상을 제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선거 결과는 대중의 상태를 정확히 대변하지 않습니다. 가령, 투표율이 낮거나 대안이 마땅치 않아 마지못해 지지한 경우 등 다양한 왜곡 변수가 있습니다. 네팔 사람들이 위 좌파 정당들을 제1당, 제3당으로 선출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삶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그 지지가 열광적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고려한다면 네팔의 현재 문제가 봉건왕정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조차 타당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17년 동안 사회를 개혁하지 못한 것은 왕정의 책임이 아니라 왕정 폐지 이후 정치권의 문제니까요.
네팔 사람들을 가장 분노하게 만든 것은 왕정을 폐지하고 집권한 이들조차 자녀들을 미국에 유학보내고 사치스럽게 살았다는 점입니다. 왕정 시절에는 인민의 벗이라 자칭하며 게릴라전에 나섰던 마오주의자들은 그 자신이 집권하자 급속도로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틱톡에는 어렵지 않게 네팔 부유층 자녀들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며 이를 자랑하듯 올리는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네팔에 일자리가 없어서 어느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지를 고단하게 고민하는 평범한 청년들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진들이었습니다.


3.“반정치”를 표방하는 시위인 건 문제가 있지 않나요?
이러니 네팔 청년들이 좌우를 막론하여 정치 전반을 불신하고, 심지어 시위가 잦아든 이후에도 이 시위가 다른 정치인들에게 이용되었다고 여기는 것은 정당합니다. 시위대는 디스코드라는 어플을 통해 집단적인 결정으로 전 대법원장인 수실라 카르키를 임시정부의 수반으로 추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기성체제의 일원이었던 카르키를 향한 적잖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정치 전반이 불신의 대상이 된 사회에서 벌어진 시위에서는 흔히 해당 시위가 ‘정치와는 관계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합니다. 정치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거나 분노가 치밀어오르는데, 시위 참석자들이 ‘이 시위는 정치적’이라고 주장할 리 없을 것입니다. 시위에 직접 개입할 수 없는 제3자들이라면 시위의 표면만 보고 이 시위가 “비정치적”이라고 단정하기보다, 이 정도로 기성정치가 불신받는다는 사실을 포착하고 그들의 정서에 공감해야 합니다.
어차피 모든 시위는 정치적 효력을 갖는다는 객관적 진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네팔의 시위는 네팔의 정치적 지형을 변화시키고, 네팔인들의 정치 의식을 바꾸고, 결국 사회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성 정치에 대한 반대에 강조를 두고 있는 지금의 시위가 결국 새로운 사회적 대안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점입니다. 그런 논의와 행동의 자리에 진정한 “좌파”, 대중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시위대와 함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 속에서 올바르고 타당한 주장을 편다면, “반정치” 시위는 그 어떤 시위보다 급진적인 정치적 시위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4. “좌파”란 무엇이고, 어떤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어야 할까요?
한편 이번 시위를 통해 곱씹어 볼만한 또다른 중요한 논점도 있습니다. 바로 “좌파”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지금 네팔의 좌파정권은 좌파정권이어서 몰락한 것이 아니라 좌파답지 않아서 몰락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킬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권위주의적 통치에 의존하다가 몰락을 자초하였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좌파”란 그 어떤 사회 세력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해야 하고, 실제로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대중과 함께 해야 합니다. 따라서 네팔에 있는 좌파들이라면 기성 좌파의 몰락을 환영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 네팔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시킬 조치들을 임시정부에 요구해야 합니다. 한국에 있는 좌파들도 그렇게 행동하는 네팔의 진정한 좌파들을 응원하고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젊은 시위대가 반정치를 주창하는 이면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킬 진정한 정치를 향한 희망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기성 정치가 실패한 모든 것의 잿더미 위에서 네팔의 좌파들은 다시 새로운 세대와 함께 좌파적 전통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출발은 네팔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전 정권의 몰락 이후 새로 들어선 임시정부에 부패 사건 등에서 정의의 회복, 봉건적 지주제 개혁, 국가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을 요구하면서 임시정부와는 언제든 싸울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시위로 새롭게 형성된 투사들을 결집시킬 새로운 네팔 좌파 세력이 탄생하기를 바랍니다. 결국은 이 싸움에서 승리해야 옛 좌파와 실천적으로 결별하는 새로운 좌파들이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