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 수가 없다” – 정말 어쩔 수가 없었을까
  •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고는 살인이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77일 동안 공장을 점거하며 외쳤던 구호가, 2025년 대중적 상업영화로 재현됐다. 박찬욱 감독은 반쯤은 다큐멘터리처럼, 반 쯤은 블랙코미디 색깔이 강한 드라마로 해고가 왜 정말로 살인에 다름 없는지 보여준다.

“어쩔 수가 없”으니까요

종이를 만드는 생산직 노동자 만수(이병헌 분)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진 전문가이자 ‘덕후’다. 그는 식물을 키우는 취미를 가졌으면서도 나무를 베는 제지 산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모순된 존재, 이 체제의 노동계급 그 자체다. 그는 종잇밥으로 2층짜리 개인 주택에서 아내, 아들, 딸, 개 두 마리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가지만, 난데없이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회사 소유자가 외국 자본으로 바뀌었을 뿐, 본인이 잘못한 것도 없고 세상이 뭔가 극적으로 변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장은 “어쩔 수가 없다”고 만수를 뒤로 하고 자리를 떠버린다. “노조를 만들지 않는 대신, 회사가 직원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는 항변은 끝맺음도 다하지 못한다.

사장의 “어쩔 수가 없다”는 소리는 곧 실업자 만수에게 전염된다. 만수는 재취업 시장에서 자신보다 유력한 경쟁자들을 물리쳐야 한다. 어떻게? 그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경쟁자들을 죽이기로 한다. 자신의 가정과 꿈을 지키려면, 이것도 다 “어쩔 수가 없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살인을 위한 여정은, “어쩔 수가 없”다는 말에 희생당한 동지들을 만나는 과정이다. 만수는 계속해서 다른 해고자들과 자신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들도 일자리를 잃은 뒤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었다. 종이를 만드는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도,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위마저도 갈수록 흐릿해지고 있었다. 

심지어 만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업계의 잘 나가는 기술자 선출(박희순 분)을 죽이던 날 밤에도, 선출이 사용자들의 무책임함에 고통받고 극심한 과로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잘 나가는 유튜버이기도 한 그의 삶도, 결국은 아내에게 버림 받고 섬에서 혼자 궁상을 낭만으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했다. 만수는 “사장에게 잘 말해서 한 명 더 고용하자고 해봐”라고 권하지만, 선출은 그게 되겠냐고 심드렁한 태도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방법이 있지만, 기업은 그렇게까지 할 의사가 없다. 이 모든 난장같은 관계에서 뒤로 쑥 빠져버린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인간이 아니라 이윤에 대한 숫자놀음이다.

영화가 내내 보여주는 것처럼, 해고를 피하려는 몸부림과 격렬한 취업 경쟁의 비인간적 본질은 정확히 같다. 자본주의 생존 경쟁이, 음악이 끝나기 전 사람보다 적은 수의 의자에 먼저 재빨리 앉아야 살아남는 “의자놀이”라면, 이 게임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 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매 순간 남을 짓밟아야 한다. (비슷한 게임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재현되고, 그 드라마의 주인공 이정재가 “드래곤모터스 해고자” 출신이라는 설정도 우연은 아니다). 그것이 이 사회의 “어쩔 수 없”는 규칙인 것이다

▲ 오징어게임 시즌2의 “짝짓기게임”은, 동요가 끝나자마자 불리는 수대로 짝을 지은 뒤 제한된 숫자의 안전한 방에 먼저 들어가 문을 걸어잠가야 살아남는 게임이다.

“어쩔 수가 없”지 않을텐데요

그러나 영화를 본 어떤 이들은 아무리 만수가 위기에 몰렸어도 살인이라는 선택까지 하는 것은 서사의 설득력이 부족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불평등한 세계에서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한 노동자들, 우리들이 살인적 생존경쟁에 당연한 듯 몰두하는 것은 과연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사회에 극심하게 편중된 자산과 부를 고르게 나누고, 어차피 과로로 점철된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는 없을까? 규칙을 누군가가 정해두었다면, 그 규칙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만수의 아내 미리(손예진 분)는 모든 “면접”이 끝나고 돌아온 ‘가장’ 만수를 안아주면서, “그렇게 열심히 살지 말지”라고 슬픈 목소리로 말한다. 미리 역시 자신과 자기 가족의 생존을 위해 만수의 범죄에 침묵으로 동조하는 길을 선택했지만, 사실 그의 이 대사는 영화 내내 강조된 “어쩔 수 없”다는 체념도 그 체념에 근거한 살인도 모두 만수의 선택이었음을 얼핏 드러낸다. 

만수의 선택의 결과는, 결국 생존이라는 해피엔딩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는 자동화된 AI 기계로 가득한 공장에 남겨진 유일한 노동자로서 혼자 환호할 수 있었을 뿐이다. 첨단 장비 덕에 더 이상 필요하지도 않은 원단 두드리기 작업을 반복하는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을씨년스럽다. 살인(적 경쟁)의 결말은 기계 숲 속 고독함일 뿐, 존엄과 행복은 여전히 간 곳 없어보인다.

사실 평범한 시기, 많은 노동자들의 선택과 결말도 만수와 비슷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뻔하지 않은 선택을 해온 이들 덕에, 이 사회의 규칙에 균열이 생겨왔음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싸우지 않았더라면, “어쩔 수 없”음을 거부해 온 수많은 이들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 영화는 그 존재 자체로 “어쩔 수 있음”을 웅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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