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프랑스에서 1백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고?
9월 18일, 프랑스 전역에서 정부의 재정 긴축에 반대하는 시위와 파업이 벌어졌습니다. 전국적으로 집회에 참석한 인원이 정부 통계상으로 50만 명, 노조 추산으로 100만 명에 이릅니다. 집회 중 경찰에 체포된 사람만 3백 명 이상이었다고 해요.
제조업은 물론, 공무원(행정직의 12%), 교사(초등학교 교사의 ⅓, 중고등학교 교사의 거의 절반), 예술가, 보건의료, 정보통신(IT) 등 수많은 산업 분야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호소에 응해 하루 파업을 벌이고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지하철이 멈춰 섰고,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도 문을 닫았습니다.
사실 9월 18일 파업은 9월 10일 투쟁의 연장선에 있었습니다. 9월 10일도 하루 동안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전국적인 시위를 벌였어요. 도로와 항만, 학교를 봉쇄한 뒤 수천 명이 행진했고, 일부 노동자들은 파업에 나섰습니다(700여 건). 경찰은 학교를 봉쇄하던 고등학생들에게 최루탄 공격을 감행했고, 437명이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프랑스 정부는 8만 명의 경찰을 투입했지만, 이날의 시위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2. 갑자기 이게 무슨 일?
투쟁의 불씨는 여름부터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7월 중순, 프랑수아 바이루 전 총리는 적자를 줄이겠다면서 정부 예산을 438억 유로(약 72조 원)나 긴축하는 안을 냈어요. 물가는 가파르게 올라가는데 국민연금을 동결하고, 건강보험 본인 부담금을 늘리고, 진료비 보조 요건을 까다롭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대신 국방 예산은 올리고, 공휴일 이틀을 폐지해 기업이 돈을 더 벌게 함으로써 세금 수입을 늘리겠다고 했지요.
프랑스 전체가 들썩였고, 여론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이루 총리는 결국 의회(하원)의 야당들, 즉 좌파 세력(대표적인 곳이 장 멜랑숑이 이끄는 “불복하는 프랑스”, La France Insounise, LFI)과 극우파(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 Rassemblement National, RN)에 의해 불신임당해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9월 9일,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새로운 총리로 지명한 것은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국방부 장관이었어요.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졌다는 핑계로 국방 예산을 2030년까지 대폭 증액하자고 한 보수주의자였고, 그가 총리가 된다는 것은 전임 바이루가 자행했던 긴축 예산 통과 시도가 반복되리라는 의미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봉쇄하라”(Bloquons tout)는 구호가 호응을 얻기 시작했어요. 같은 이름의 텔레그램 채널이 열렸고, 정부에 맞서 싸우고 싶어 하는 청년들, 시민들,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에서의 논의는 곧 직접 함께 모여 행동 계획을 논의할 수 있는 오프라인 집회로 전환되었지요. 여러 지역에서 몇십 개의 집회가 열렸고, 곧 수백 명이 모이는 규모로 커졌습니다.

▲ 재정 긴축 반대 시민들이 18일 파리 바스티유 광장에 모인 모습
3. 좌파 활동가들이 이 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온라인에서부터 시작된 대중적 시위는 주로 대중(시민)의 자발성, 열정과 창의성으로 주목받곤 합니다. 그런데 그런 투쟁 안에서도, 잘 보이지 않지만 좌파 활동가들이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들이 있어요. 이번에도 소수의 활동가들은 초기부터 “모든 것을 봉쇄하라”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프랑스의 주요 노동조합은 바이루 전 총리의 예산안에 반대하는 파업을 9월 18일로 계획해 둔 상태였지만, 사태 전개와 대중 정서에 비추어 너무 늦은 일정이었습니다. 노동조합 지도부는 9월 10일로 예정된 “모든 것을 봉쇄하라” 투쟁과 파업의 날짜를 맞출 수도 있었지만, 자칫 그런 결정이 투쟁을 지나치게 격렬하게 만들까 우려하는 듯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봉쇄하라” 운동과 노동조합 조직 사이에 일정 정도의 거리를 두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좌파 활동가들은 노동조합이 계획한 9월 18일보다 더 먼저 싸우고 싶어 하는 시민과 노동자들을 행동 속에서 서로 연결하고자 했습니다. 조합원들 수백 명을 조직하여 “모든 것을 봉쇄하라” 운동을 지지한다는 노동자들의 연서명을 발표했고, 여러 사업장의 투쟁 현장(아마존 노동자들의 피켓팅, 병원 파업, 소각장 노동자 피켓팅 등)에 “모든 것을 봉쇄하라” 집회 참여자들이 합류하는 계획도 세웠어요. 실제로 파리에서는 시위대가 보건,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 중인 병원과 기차역을 집회 행렬이 방문하여 행진했습니다. 역 내부에서 노동자들과 시위대가 집회를 열려 하자, 경찰이 후추 스프레이와 물리력을 동원해 이들을 건물 바깥으로 모두 내쫓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굴하지 않고 대규모 야외 집회를 한 뒤, 대로와 광장으로 행진해 또 다른 시위대와 합류했습니다.
집회 과정에서는 팔레스타인 대량 학살에 일조하는 정부에 대한 규탄, 인종 차별과 성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 정부의 트랜스젠더포비아 공모 행위에 대한 비판 발언이 계속 등장했습니다. 파업 중인 철도 노동자들이 팔레스타인 지지 활동가들과 한 데 어울려 행진했고, 병원 노동자들은 최루탄을 맞은 고등학생들 곁을 지켰습니다. 다양한 연령, 성별, 인종, 국적의 노동자 시민들이 모여 봉쇄 집회는 밤까지 계속되었어요. 9월 10일의 투쟁 소식은 텔레그램 등 온라인을 통해 더 멀리 퍼져나갔고, 이는 9월 18일 파업에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게 고무했습니다.

4. 몇 년 전 노란조끼 운동은 흐지부지된 것 같은데, 이번에는…?
이번 투쟁은 2018년에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대중 시위인 “노란조끼 운동”을 연상시킨다는 반응도 많아요. 당시에도 마크롱 정부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경제 위기의 대가를 서민들에게 떠넘기는 정책을 시행하려 했다가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정부는 유류세를 23%(경유), 15%(휘발유)로 올리겠다고 하면서도, 고소득층에게 걷는 부유세와 자본소득세는 대폭 감세해 줬습니다. 마크롱 정부의 친기업 정책과 불평등에 누적되어 있던 불만은, ‘노란조끼’를 입은 운수 노동자들의 거리 시위와 파업으로 폭발했죠. 시위는 온라인 SNS에서 촉발되었고, 노동조합의 조직적 합류까지 끌어내며 장기간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마크롱이 2022년 재선에 성공하면서, 노란조끼 운동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 아니냐는 물음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마크롱은 2018년 12월 노란조끼 운동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며 최저임금 인상, 유류세 인상 계획 백지화 등을 발표해 놓고도, 바로 다음 해 약속을 뒤집어버렸어요. 이런 자가 여전히 대통령 자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 시위 참가자들과 노동자들 사이에 허탈감이 충분히 존재할 만한 상황인 것입니다.
하지만, 2022년 대선 직후 치러진 총선과 2024년 조기 총선에서 마크롱이 모두 패배했다는 점도 감안해서 평가해야 합니다. 특히, 202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극우파(국민연합)가 선전하자, 마크롱은 프랑스 국민이 자기 당이 아닌 극우파를 선호하는 한 정상적 정치는 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을 이용해 프랑스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는 ‘도박’을 감행했어요. 프랑스 의회 내에서 자기 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달라,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힘을 실어달라고 한 거죠.
그러나 마크롱은 이 조기 총선에서도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마크롱은 유럽연합의 기준에 맞춰 긴축정책, 복지삭감, 증세 등은 불가피하다고 고집하면서도, ‘그래도 극우만은 안 된다’는 논리로 정치적 생명을 이어 나가려 했기 때문에 인기가 없었던거에요. 프랑스 대중이 제1당으로 새로 선택한 것은 “불복하는 프랑스” 등 좌파연합(신인민전선)이었습니다. 극우파(국민연합)도 제3당 자리를 굳히면서 마크롱보다 더 오른쪽에서 마크롱의 중도파 정당(‘르네상스)을 계속 압박했습니다.
마크롱은 이 과정에서 자신이 임명한 총리가 3명이나 줄줄이 낙마하는 쓴맛을 보아야 했습니다. 특히, 프랑수와 바이루와 미셸 바르니에, 두 명의 총리는 모두 긴축 재정을 무리하게 통과시키려다가 의회에서 불신임당했습니다. 노란조끼 운동이라는 거대한 대중 투쟁의 여파가 이후 선거 결과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 마크롱의 정치적 위기 또한 쭉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5. 앞으로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을 봉쇄하라” 운동의 과제는?
현재 르코르뉘 총리는 바이루가 내세웠던 계획 중 공휴일 폐지는 일단 백지화하겠다고 물러선 상태예요. 그러나 긴축 예산안 자체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프랑스의 경제 위기, 재정 위기는 정부와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긴축을 확신 있게 고집하도록 만들고 있죠. 그러니 더욱 강력한 투쟁, 특히 프랑스 정부가 긴축하기 전에 나라가 결딴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낄 정도의 파업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정부의 기조 자체가 바뀌든, 마크롱이 자리에서 내려오든 분명한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투쟁의 확대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점이 운동 참여자들 사이에서 분명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정부와 자본이 말하는 ‘위기’가 거짓이라는 점이에요. 그들의 ‘재정 건전성’ 계산법에는 천문학적인 국방비도 부자들에게 깎아주는 세금도 언제나 빠져있습니다. 핵심은 자원을 배분하는 우선순위의 문제이지, 자원 그 자체가 부족한 게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어느 나라에서든, 평범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사회적 부가 이미 충분하다는 진실을 잊지 말아야 더 자신감 있게 싸울 수 있겠죠.
둘째, 노동자 파업의 중요성을 이해하면서도, 노동조합의 공식 지침에만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파업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멈출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노동자들의 무기이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조합은 이런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고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어요. 노동조합의 대표자나 관료들이 파업에 대한 법적 제약과 보복, 파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그로 인해 악화할 여론 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현장의 노동자들이 아래로부터 파업을 원하고, 직접 실행하고, 확대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문제들을 운동 속에서 참여자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투쟁 계획에 하나둘 녹여나가는 일이야말로 좌파 활동가들이 해내야 할 몫일 것입니다. 프랑스 노동계급과 활동가들이, 무늬만 ‘중도’인 우파와 노골적 ‘극우’ 모두를 물리치고 자신들의 요구를 쟁취할 수 있게 되기를 응원합니다.[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