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대 대통령 선거는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정확히 6개월이 지난 6월 3일에 치러졌다.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은 1,728만 표를 얻어 49.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김문수는 1,439만 표(득표율 41.1%), 이준석은 291만 표(득표율 8.3%)를 얻었는데, 이 둘을 합치면 이재명이 얻은 표보다 약간 많다. 권영국 후보가 얻은 0.98%의 표까지 합친다면 여전히 내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근소하게 더 다수이긴 하지만, “이재명이 압승했다”는 일각의 평가는 이런 사회개혁 반대 세력의 선전을 가리는 효과를 낸다. 이재명 당선이라는 결과 너머로 이 선거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극우들도 적극 투표한 대선
이번 대선 투표율은 79.4%였다. 80.7%를 기록한 1997년의 15대 대선 이후 최고 투표율이었다. 이는 내란과 탄핵을 둘러싼 찬반이 그만큼 첨예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무현의 배신으로 인한 환멸이 자리를 잡고 있을 때 치러진 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민주당 지지자들의 대거 이탈하여 투표율이 63%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 편의 지지자들이 총 결집한 선거였다고 결론을 지어도 무리가 없다.
내란의 무대가 되었던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이재명이 897만 표(50.3%), 김문수가 702만 표(39.3%)를 얻었다. 이재명은 수도권에서 김문수와 결정적으로 표차를 벌린 것이 승리의 요인이었다(김문수와의 289만 표차 중 197만 표차가 수도권에서 발생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이재명은 수도권에서 828만 표를 얻었고 윤석열은 810만 표를 얻었는데, 이재명이 70만 표 가량 늘어나는 동안 국민의힘 후보인 김문수는 100만 표 이상을 덜 받게 된 것이다.

개혁 공약 없다시피한 1번, 극우 본색 드러낸 2번 4번
선거운동 과정에서 이재명은 진보당과 기본소득당 등을 모두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한 것을 바탕으로, 중도보수로의 ‘외연확장’을 통하여 득표율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것은 빈말이 아니어서 이명박 정권의 초대 법제처장 이석연이나 보수 진영의 ‘책사’로 불리는 윤여준을 선대위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사회 개혁과 관련된 예민한 논쟁점을 피해가며 다 잡은 대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굳히기 전략으로 선거운동 내내 임했다.
반면 김문수와 이준석은 출마를 기회로 내란을 옹호하고 차별을 선동하는 등 극우적인 본성을 숨기지 않았다. 김문수는 노동운동 전력으로 추억팔이를 끼워넣었지만 윤석열의 공개행보를 전혀 비판하지 않았고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해서도 선관위의 관리책임이 크다고 밝혔다. 이준석은 김문수처럼 윤석열의 쿠테타를 옹호하지는 않았지만, 그 점만 빼면 신자유주의적 사회 정책을 옹호하고 차별과 혐오를 거리낌 없이 선동하는 등 정치적 차이가 없었다. 그는 혐중선동을 위하여 이재명을 향해 친중이라고 몰아세우는 것도 모자라 TV토론에서 성폭력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파문이 커지자 사과같지도 않은 사과를 자신의 당원들에게 했지만, 그 요점은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런 자들이 받은 표가 이재명이 받은 표와 거의 차이나지 않는다는 점은 이재명 정권 출범 이후에도 정치적 양극화가 잠재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징후다. 이재명과 김문수의 양자 대결만을 놓고 본다면 이재명의 압승이 단면적으로 보이겠지만, 시야를 확장해본다면 내란과 탄핵으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음에도 극우가 주도하는 우파 세력이 쇠락하지 않았다는 점을 엄중하게 인식해야 한다.
극우의 성장 토대 : 이재명 정부가 기업에게 개혁 비용을 치르게 할까?
민주당과 이재명은 분명히 사회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것이다. 멀리는 김대중과 노무현이 그랬고 가까이는 문재인도 그랬다. 더욱이 문재인 때와는 또 다르게 지금은 세계 자본주의가 전쟁과 갈등으로 얼룩져 있고 그 직접적 여파로 미중간의 대립이 어느 때보다심각해지고 있는 시기이다. 국무총리로 지명된 김민석은 출근길 인터뷰에서 지금을 “제2의 IMF”라고 일컬었고, 이재명은 대통령이 된 후 비상경제대책회의부터 소집하고 나섰다. 경제 위기가 심각할수록 사회개혁의 필수적 질문인 ‘누가 개혁에 필요한 돈을 낼 것인가?’의 문제에서 정부는 자본의 요구에 타협해 노동계급의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자본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지금, 과연 포괄임금제를 전면 폐지해 기업들이 거액의 야근수당을 새로 지출하게 만들 수 있는가? 주 4일제로 하루치 임금을 공짜로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내놓게 할 수 있는가? 결국 이재명 정부 하에서도 개혁 자체가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도리어 이재명 정부는 ‘고통분담’을 말하며 노동계급에게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형성된 정치적 환멸감이 향할 수 있는 곳이 극우 내지 혐오 세력이라는 점이다. 내란과 탄핵을 겪고서도 이재명에게 투표한 사람만큼 김문수와 이준석에게 투표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국민의힘은 이재명의 실패를 자신들이 회생할 기회로 보고 거리동원에 힘을 보탤 것이다. 의회에서도 소수인 국민의힘 입장에서 이제 ‘장외 전술’을 꽉 쥐고 있는 전광훈 같은 극우 개신교 혐오세력들은 꼭 필요한 조력자들이 됐다. 이런 자들의 ‘비합리성’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은 본질에서 국힘과 똑같은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혐오 세력으로 기울 것이다.
가뜩이나 현재 한국은 자영업자의 폐업률이 늘고 있고, 괜찮은 일자리는 날로 감소하면서 삶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이럴 때 이주자나 소수자를 향한 차별적 언사로 ‘원래 우리가 누려야 할 것’을 다시 누리자는 선동을 하는 자들은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성장해왔다. 당장 트럼프만 하더라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를 슬로건으로 당선되었고, 이민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이런 흐름이 바로 이재명 정권 하에서 발전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지정학적 불안정성, 심화하는 경제 위기
이재명 정권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미국과의 통상 문제(관세)를 원만하게 해결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한편, 적자로 돌아선 대중무역과 한중관계 관리도 해내야 한다. 동시에 북한과 러시아가 보다 밀착한 가운데 한반도의 평화도 관리해야 하는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국제적인 이슈들은 불행하게도 한국의 지도자가 혼자 운전대에 앉아 조정할 수 없다. 통상문제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으며 중국과의 관계도 기본적으로 미중갈등이라는 대전제 하에서 운신의 폭을 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미국, 중국과의 관계는 한국의 경제적 상황, 곧 사회적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국내 정치의 구도를 좌우할 것이다.
북한의 행보 또한 문제다. 북한은 남한과 대화하겠다는 별다른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이전에 남한에서 구했던 지원과 투자보다 훨씬 더 많이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예컨대, 비록 진수식에서 좌초되기는 했지만 북한에서 만든 신형 구축함의 사례는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적 협력과 지원이 상당한 수준일 것임을 암시한다. 신의주 수해복구 사업은 건설에 필요한 물자를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해 수급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아마도 이재명은 남북한의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여 진보진영 내부의 진보당 계열을 포섭해 개혁 배신과 우경화에 대한 반발을 사전에 관리하려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일단 숨길을 튼 북한이 이재명 정부에게 호락호락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테고, 이재명도 결국 남북관계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진보당 계열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와 지방 선거 등 향후 그들 나름의 연립정부 전략을 가지고 민주당에 협조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실제로 이재명이 이들 일부라도 내각에 들이거나 진지한 정치적 동맹을 맺을 이해관계는 크지 않은 반면, 이재명이 진보진영의 일부인 이들을 일정기간이라도 포섭해 두는 것은 실제로 계급투쟁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재명과 민주당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수호에 이해관계를 같이 하므로 언젠가 노동계급을 공격할텐데, 이 때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단속하는 데에 이재명에게 단속된 우리 운동 내부자들이 앞장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개혁을 쟁취하기
극우의 부상과 이재명의 예정된 공격을 모두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른 세력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것을 쟁취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그래도 민주당은 다르겠지’ 하고 개혁을 기다리거나, ‘민주당이 그렇게까지 할까’ 하고 민주당에 대한 비판과 투쟁을 자제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이재명과 극우 모두의 속성인 친자본의 본질을 들춰낼 잠재력이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진다면, 투쟁이 더 크고 강하게 벌어지도록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노동계급을 향한 공격은 본질적으로는 고용과 임금을 둘러싼 투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재명은 반도체특별법이 한창 논란이던 때에 한국경제를 위해 기업감세와 노동유연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고용과 임금을 위협하는 공격이 다방면에서 벌어질 것이고, 이 때 노동자들이 이에 맞서 성공적으로 투쟁하지 못한다면, 노동자 투쟁과 진보정치가 이재명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원자화된 개인들은 앞으로 더욱 극우적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재명의 당선은 그 자체로 김문수나 이준석의 당선보다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재명의 과제가 첩첩산중이듯, 노동운동-사회운동 진영에도 쉽지 않은 길이 앞에 놓여있다. 이재명과 민주당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단결하여 투쟁하는 것만이 극우의 성장도 막고 이재명의 속임수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