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같은 ‘기후위기 부정론자’가 여전히 있지만, 이제 대다수 사람들은 기후위기를 실감하고 인정하고 있다. 2024년 지구 평균 온도는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한국은 한 해 열흘 중 사흘 가까이가 ‘이상고온’이었다. 이상기후는 지구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피해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이제는 분명한 해답이 필요하다. 이 글은 조너선 닐의 책 <기후위기와 자본주의: 체제를 바꿔야 기후변화를 멈춘다>의 내용을 중심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펴본다.
과학기술은 이미 충분하다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 필요한 과학기술은 이미 충분히 개발돼 있다. 풍력발전, 태양광발전, 태양열집중발전, 파력발전과 조력발전 등 청정에너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생산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청정에너지만으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석유와 석탄 회사들, 그리고 이에 의존하고 있는 회사들이 그저 기존에 보장되던 이윤을 잃고 싶지 않을 뿐이다. 동시에 청정에너지로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에 뛰어들고 싶지 않아 할 뿐이다.
건물을 지을 때 난방이 많이 필요하지 않도록 완전히 단열 처리를 하거나, 모든 건물을 패시브하우스(최소한의 냉난방 에너지로 실내 온도와 습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 친환경 주택)로 짓는 것도 방법이다. 운송에 있어서도 승용차에서 버스로 전환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70퍼센트가량 줄어들고, 기차의 경우는 80퍼센트나 줄어든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다
해결을 가로막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다. 전세계적인 청정에너지 도입, 건물과 운송 규제 등은 대규모 공공사업과 정부 규제가 필요한데, 이는 전 세계 정부와 기업이 지난 30년간 펼쳐 온 신자유주의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1960년 말부터 선진국 전역에서 산업 이윤율이 절반으로 떨어지자, 정부와 기업들은 공공서비스를 팔아넘기는 ‘민영화’, 정부 지출 삭감, 저임금 정책, 정부 규제 폐지를 추진해왔다.
또, 기후변화에 실질적으로 대처하려면 석유·석탄·가스·자동차 기업의 이해관계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다. 이런 기업들은 정부, 은행, 정치인, 납품업체, 판매업체, 언론, 그리고 다른 대기업들과 연관을 맺으며 오랜 기간 지배력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국제 경쟁’과 ‘끊임없는 성장’이라는 자본주의의 특징 때문에도 기후변화 저지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세계시장에서 모든 기업은 경쟁자보다 더 많은 이윤을 남겨서 더 많이 투자하고, 그 결과 더 많은 시장을 차지하고, 그로부터 다시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분투한다. 정부는 다른 나라 기업들에 맞서 자국 기업의 이익을 지키고 보호한다. 트럼프가 자국의 무역을 보호하겠다며 여러 나라에 ‘관세 폭탄’을 던진 것이 단적인 예다. 서로 다른 국가들은 협력보다는 대립하게 된다.
개인적 실천으로는 안 될까
따라서 기업과 정치인들은 ‘진짜 해결책’ 대신 주로 두 가지 해결책을 지지한다. 개인적으로 ‘친환경적’ 실천을 하거나 시장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다.
미국의 포장재 산업의 사례는 기업들이 ‘개인적 실천 해법’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잘 보여준다. 1950년대 들어 미국에서는 일회용 병, 캔 제조업과 비닐 포장재 제조업이 발달했는데, 이에 몇몇 주에서는 포장재와 일회용 병 판매를 금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포장재와 음료수 회사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을 아름답게(KAB, Keep America Beautiful)’이라는 캠페인 단체를 출범시켰다. KAB는 작은 괴물이 끊임없이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장면이 나오는 광고를 만들었고, 쓰레기 투척 처벌 법을 지지했으며, 문제는 포장재가 아니라 포장재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개인들이라고 설득했다. 사회적 문제는 개인들의 잘못인 것처럼 왜곡됐다.
1970~80년대에 환경운동이 다시 몇몇 지역에서 포장재를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하기 시작하자, 기업들은 이번에는 재활용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재활용은 애초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이었지만, 이제는 플라스틱공업협회와 미국플라스틱위원회, KAB가 앞장서서 재활용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은 쓰레기를 계속 만들어 내면서도 책임을 자신들이 아니라 쓰레기를 분류하는 사람들에게 떠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활용은 미국의 쓰레기 실태를 은폐하는 구실을 했다. 가정·학교·공공건물·식당·호텔에서 배출되는 쓰레기가 재활용 대상인데, 이는 미국 전체 쓰레기의 2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98퍼센트 이상은 광업, 농업, 제조업, 석유 생산과정에서 생기는 산업 쓰레기다. 개인들이 재활용을 잘 한다고 해도 미국의 쓰레기 문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통계상 유럽연합보다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높지만(2021년 기준 한국 56.7%, 유럽연합 40.6%), 이는 환경부가 유럽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소각을 통한 에너지 회수’까지 재활용으로 보기 때문에 벌어진 착시다. 2023년 충남대 연구팀이 유럽 기준을 적용해 다시 계산한 결과 한국의 재활용률은 16.4%에 불과했다. 물론 한국에서 아무리 재활용이 잘 된다 하더라도, 환경 문제는 한 국가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의미가 없다.
개인적으로 소비 패턴을 바꾸자는 주장은, 평균 소득수준의 사람들을 대부분 배제한다. 또,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 지은 패시브하우스를 구입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 또한 개인이 소비패턴을 바꾼다고 해서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 필요한 중요한 변화들을 이룰 수도 없다. 개인이 노력한다고 화물을 트럭 대신 기차로 운반하게 할 수 없고, 산업을 통제할 수도 없다.
시장 원리 해결책의 허점들
시장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해결책으로는 먼저 환경세가 있다. 그러나 환경세는 항상 불공평하다. 부자들은 난방에 세금이 부과된다면 그저 투덜댈 뿐이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에 부과되는 난방세는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 것이다. 환경세를 걷기 위해 정부가 반환경적 행위를 어느 정도 용인하게 된다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정부는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담배에 세금을 부과하지만, 사람들이 담배를 너무 안 피워서 세금 수입이 없어질 정도로 높게 책정하지는 않는다.
배출권 거래제는 정부가 기업에 일정량의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하고, 할당량보다 더 많이 배출한 기업은 다른 기업으로부터 추가로 배출권을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배출권 거래제는 항상 사전에 정한 총 감축량을 넘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만약 매년 5퍼센트씩 배출량을 줄이기로 했다면, 전체 감축량은 결코 5퍼센트를 넘지 못하게 된다. 운영상의 문제도 있다. 한국에는 2015년에 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됐는데, 정부의 배출허용총량(30억 4800만톤) 자체가 너무 느슨하다보니 기업들이 별다른 감축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배출권이 남아도는 상황이다. 자연히 배출권 가격은 낮아져 온실가스 감축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무얼 해야 할까
선거를 통해 ‘친환경적인’ 정치인을 뽑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브라질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임 대통령을 제치고 2022년 당선된 룰라 대통령은 ‘집권 기간 산림 벌채 제로’ 등 환경 보호 공약을 내세우며 높은 지지를 얻었지만, 2023년 취임 이후 세계 10대 석유회사로 꼽히는 브라질 국영 기업 페트로브라스의 석유 탐사는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석유 탐사는 해양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하는데도 말이다. 최근에는 페트로브라스의 석유 시추 사업 허가를 내주지 않은 이바마(브라질의 환경 정책을 관리·감독하는 정부 기관)에 대해서도 대대적으로 비판했다. 이처럼 룰라 대통령이 ‘변절’한 이유는 2024년 8월 기준 국영기업들의 총 적자가 20년 만 최고치에 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압력에서 한 명 한 명의 정치인은 결코 자유롭지 않다.
결국 ‘진짜 해결책’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부자들과 정치인 등 권력자들 전반이 행동에 나서게 만들거나 이들을 아예 대신해버릴 만한 강력하고 전세계적인 대중운동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뭉쳐서 행동한다면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대중운동이 일어난다면,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체제도 가능할 것이다. 무분별하게 이윤만을 위해 생산하는 자본주의, 기업가들에게만 이득인 자본주의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다함께 결정하고 필요를 위해 생산하는 민주적인 계획 경제만이 궁극적으로 지구와 사람들을 살릴 것이다.[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