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은 뒤로 물러났어도, 국힘은 건재하다. 이철규, 나경원, 권성동 등 내란동조세력이 지난 해 11월 발의한 “반도체법”을 이번 달 내에는 반드시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 법안은 윤석열의 주69시간 운운하는 초장시간 노동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해서, ‘한국을 먹여살리는’ 반도체 산업의 연구개발직 노동자부터 먼저 근로기준법을 초월해 일 시킬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다.
기승전 노동자 쥐어짜기
법안의 논리는 단순하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실적 위기를 해결하려면 기술혁신이 필요한데, 연구개발 노동자들이 장시간 연구하도록 해야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스스로를 ‘주 52시간 근로제’의 대변자를 자처해 온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 또한 “여야가 반도체특별법의 내용에 대체적으로 합의”했다며 국힘을 거들었다. 노동시간 연장 문제도 “연구개발 분야, 그중에서도 고소득의 전문가”에 대해서라면 예외를 허용해달라는 기업 요구에 대해 특별히 반대 “할 말이 없”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반도체 실적 위기가 연구개발직 노동자들이 일을 덜 한 탓이던가? 지난 해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앞지른 비결이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이 초장기 근로를 했기 때문인가? 삼성전자의 위기는 경영 실패가 원인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2019년 HBM 시장이 커질 것이라 판단하지 않고 삼성전자 경영진은 개발 조직을 축소했다. 조직 문화가 경직되어 리스크가 큰 기술개발 속도가 늦어진다는 평도 많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이런 모든 문제를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SK하이닉스가 ‘초대박’ 실적을 낸 후에도 영업이익의 10%도 노동자들에게 나누지 않아 논란이 생긴 최근 상황 역시 시사적이다. 좋은 시절 성과를 근로자와 나누는 것에는 인색하고, 어려운 시절 고통은 가장 먼저 근로자에게 떠넘기는 것이 ‘노사 운명공동체’라는 기업의 실상인 것이다.
초장시간 근로, “예외”에서 보편으로
한 편,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논의가 국회에서 힘을 받자, 이 업계 저 업계 사용자들이 이 때다 하고 나서고 있다. 여당은 조선업계 역시 첨단 선박기술 연구·개발 인력에 대해 ‘주 52시간 근무 적용 예외’를 요청해왔다고 밝혔고,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 역시 AI 경쟁력 운운하며 “주 52시간제 예외를 소프트웨어 산업 전 분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도체특별법만 보더라도, 시작이 연구개발직일 뿐 “반도체 업계의 경쟁력”을 위한다는 명분이 향후 생산직으로 확대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국가경쟁력’ 논리로 보자면, 자동차와 철강 업계도 예외가 적용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 ’국가경쟁력’ 논리가 가능하다면, 나중에는 ‘고객의 불편’, ‘시민의 불편’이라는 명분도 얼마든지 근로시간 제한 예외의 명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반도체특별법은 ‘국익’ 호들갑을 장착해 한국 사회를 초장시간 노동 문화로 계속 몰아가려는 세력의 디딤돌인 셈이다.
반도체 산업의 진정한 문제
그러나 기업에게 세금 특혜를 주고 각종 규제를 완화하며 이윤 증대라는 주문만 되뇌이기 전에, 정치인들과 사장들은 반도체 산업 내에 산적한 진짜 문제들부터 직면해야 한다. 반도체 노동자들은 신기술이라는 미명 하에 안전성도 충분히 검증이 안 된 화학약품을 접촉하며 일하고 있고(2017년 삼성전자 기흥-화성 사업장에서 사용한 화학제품 907개 중 “영업비밀”로 성분조차 모두 파악할 수 없는 화학제품이 407개에 이른다), 청년 여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암과 백혈병, 희귀질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반도체 사망 노동자 70%가 질병 재해). 반도체 제조 과정에 사용되는 다량의 화학물질과 물이 환경 오염을 낳고 막대한 에너지 사용이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지고 있는데도, 업계의 ‘관행’은 신제품 반도체를 팔기 위해 제품 수명을 일부러 짧게 설계하는 것이다(“계획적 구식화”).
따라서, 윤석열 처벌과 더 나은 한국 사회를 바라는 광장의 목소리는 반도체 특별법 폐기에 대한 요구로도 연결될 필요가 있다. 여야 정치인 가릴 것 없이 기업만 바라보는 ‘이윤 감수성’에 제동을 걸지 못한다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바뀌지 못할 것이다. 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치인들에게 법안 로비나 일삼는 기업인들이 아니라, 거리에서 당당히 스스로의 권리를 요구하는 평범한 우리들이다.[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