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이 가능했던 이유와 운동의 과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했다. 트럼프는 예측불허의 극우 정치인이다. 그는 이주민을 배척하고, 여성과 소수자를 혐오하고, 특히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부정하며, 기후위기의 존재 자체를 외면한다.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미국이 관여하는 중동과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빨리 끝내 버리겠다고 하면서도, 세계 패권의 경쟁자인 중국과는 긴장감을 높여 가는 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트럼프 정권 하에서 문자 그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거나 삶의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트럼프의 기행에 맞서는 대중운동을 미국과 세계에서 건설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극우의 권좌 회복, 대체 왜? 

그러나 트럼프에 맞선 대중투쟁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도, 트럼프가 왜 당선되었는지 냉정하게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단지 미국의 대중이 우경화했기 때문에 트럼프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라면, 이후 트럼프에 맞선 운동을 건설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각 주 선거구에서 1표라도 더 많이 얻은 후보가 표를 싹쓸이 하는 미국 선거제도를 감안하더라도, 이번 선거에서 경쟁자인 민주당 해리스가 얻은 성적표는 매우 초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사실 예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심판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통령들이 언제나 그랬듯이, 바이든은 불평등과 서민 경제, 주택과 의료 문제의 개선 등을 약속하고 집권했다. 그러나 ‘바이드노믹스’의 성과는 초라했다. 바이든은 국가권력을 기업에게 보조금을 뿌리고 세금을 감면해주는 조치를 취하는데 활용했을 뿐이고, 복지는 오히려 줄여버렸다. 그 덕에 미국 노숙인 인구 숫자가 신기록을 썼고, 기초 생활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미국인이 집권 4년 동안 7%(39%)나 증가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바이든과 부통령 해리스는 막대한 국방비를 우크라이나와 특히 팔레스타인의 학살 전쟁에 쏟아부었다. 이렇게 ‘트럼프가 싫다’는 이유 외에는 다른 어떤 지지할 이유도 없는 대통령이, 심지어 노환까지 의심 받는 상황에서 대선 후보 자리에 앉아있었다. 선거를 4개월 앞두고 젊은 유색인종 여성 부통령으로 후보가 교체 되었다고 해서, 민주당 행정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크게 달라질 이유가 없었다. 

트럼프가 싫으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게 당연하다? 


일부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은 미국 대중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에는 여러 버전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 혐오’ 때문에 해리스가 패배했다는 입장이다. 흑인 남성이 같은 유색 인종임에도 여성이라서 해리스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나, 백인 중산층 여성 상당수가 ‘약한 자매’여서 해리스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주장 등이 그 예다. 

그러나 미국 대선과 같은 시기 실시된 임신중지권 관련 각 주의 주민투표 결과는 이런 생각이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예컨대, 미주리주에서는 전체 유권자의 58.5%(1,739,476표)가 트럼프를 지지하고 해리스 지지자는 40.1%(1,191,139표)였다. 그러나 임신중지권 금지 법안 폐지를 지지한 사람은 무려 52%였고, 그 덕에 금지법안은 미주리 주에서 폐기됐다. 해리스는 선거 후반부 들어 갑자기 자신의 여성 정체성과 임신중지권 문제를 강조하면서(트럼프의 여성혐오 발언이 이어지자 이를 선거 전략상 강조하기로 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지만, 임신중지권 지지자들의 상당 수는 이러한 프레임을 거부했다. 해리스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일지는 몰라도, 여성 인권에 대한 일관된 지지자나 노동계급의 삶 전반을 개선할 후보로는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민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반이민자 정책의 선봉이라고 해서, 바이든 행정부가 일관되게 이민자들을 환영한 것도 전혀 아니었다. 2021년 남부 국경을 통한 ‘불법’ 이민자가 급증하고 이에 대해 트럼프의 “미국의 치안과 일자리를 보호할 능력이 없다”는 비난이 커지자, 바이든 정부는 합법적 서류 없이 남부 국경을 넘어온 이민자들을 신속히 추방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 초강경 조치로 몇 달 사이 남부 국경을 통과하는 이민자 수는 몇 년 사이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민자들을 환대하고자 하는 유권자나, 이민자 가정의 시민들은 민주당 출신 부통령 후보를 선뜻 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선거의 관점이 아닌 운동의 관점에서 보아야

민주당은 대선 기간 내내 바이든 행정부의 초라한 개혁성을 감추기 위해 계속해서 트럼프의 극우성을 비판하는 데 주력했다. 그것이 자신들의 ‘진보성’을 드러낼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권 기간 동안 자신들이 대중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애매한 단어들로 얼버무렸다. 그러나 미국의 노동계급은 경험으로 두 거대 정당이 별 차이가 없다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일부 노동계급은 ‘알고도 속는’ 심정으로 민주당에 다시 기대를 거는 선택을 했지만, 일부 노동계급은 차라리 모순투성이 기성 체제를 화끈하게 바꾸겠다는 트럼프의 성향에 지지를 보내기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지지 전당 대회에 참여한 사람들 중, 다른 방향에서 기성 체제를 엎어버리겠다고 약속했던 민주당 버니 샌더스의 옛 지지자들 일부가 발견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사실 선거 성적표는 사회의 진정한 계급 간 세력관계, 노동계급 내의 정치 의식 지형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민주당은 (1) 노동계급의 사회경제적 처지 악화 문제와 팔레스타인 학살 전쟁 문제를 (2) 여성-소수자-이민자 혐오 반대, 기후위기 반대와 사실상 대립시켰다. (1)은 자신들도 ‘공범’인 쟁점이지만, (2)라도 원한다면 트럼프 말고 자기들을 지지하라는 최후통첩이었다. 그러나 이런 양자택일은 자본주의 사회의 허울 뿐인 선거가 만들어 낸 가공의 구도일 뿐이다. 문제투성이 보수양당 후보 중 누구도 (1)과 (2)를 해결해주지 않을 것임을 이해하고, 오직 대중 투쟁만이 사회 진보를 위한 유의미한 수단임을 이해한다면, (1)과 (2)는 하나의 문제로 투쟁 속에서 결합될 수 있다. 진보적 노동계급과 시민들은 (1)과 (2) 모두를 위해 싸우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거를 뛰어넘어, 선거 이후의 운동을 바라보아야 한다. 선거는 계급을 분열시키지만, 투쟁은 계급을 단결시킨다. 우리는 샌더스를 포함한 미국 일부 좌파들이 한 것과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이들은 지난 몇 달 간 바이든과 해리스를 빨간 칠해주는 지지 캠페인에 참여함으로써, 대중의 정치적 상상력을 제한하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 발전할만한 행동력을 훼손시켰다. 우리는 민주당 너머의 선명하게 진보적이고 독립적인 대안이 필요하고, 그러한 대안은 대중 투쟁 속에서만 싹틀 수 있다는 진실에 대해 말해야 한다. 미국 노동계급의 투쟁이 투표장을 벗어나 거리와 작업장에서 떨쳐 일어날 때, 그 운동이 민주당을 넘어서도록 일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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