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7일, 전현직 민주노총 활동가 네 명(석권호, 김영수, 양기창, 신동훈)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서 선고를 받았다. 신동훈 활동가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나머지 세 사람에게는 각기 징역 15년, 8년, 5년 형이 선고됐다. 특히 법원은 석권호 활동가를 간첩이라고 낙인찍었다. 법원은 위 활동가들이 “민주노총 내 비밀조직을 만들어 102회에 걸쳐 북한으로부터 지령문을 받아 활동하거나 활동보고문을 작성해 북한에 전달했다”며 “북한공작원과도 접선했다”고 했다. “북한의 위협이 현존하는 이상 반국가 활동을 규제해 국가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보장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 하 국정원과 경찰이 한 조사가 어디까지 진실인지부터 강한 의심이 들지만, 설령 법원이 인정한 혐의가 일부 사실이라고 해도 의문이 남는다. 이들이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아서 대체 정확히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인가? 민주노총 내 비밀조직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노동조합 차원에서 집회와 파업을 하자고 제안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러나 파업과 집회는 어차피 노동조합의 존재 목적이며, 그 “비밀 조직”이 그런 투쟁을 마음대로 일으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0만이 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그 안의 활동가들은 꼭두각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을 추종하는 비밀 조직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그 말들은 조합원들의 민주적 검증을 거쳐 다수에게 지지를 받아야만 비로소 힘이 생긴다.
“활동 보고문을 작성해 북한에 전달”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용산도 아니고, 여의도도 아닌 민주노총에서 정보를 수집해봐야 그것이 얼마나 고급 정보일까? 대체 어떤 정보이기에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까지 위협하며, 실제 누군가를 때리거나 살해한 것도 아닌데 징역 15년 형을 내릴 정도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 것일까?
역한 피로감이 몰려온다. 한국 정부가 탄생한 1948년 이래로 지금까지 75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빨갱이”, “간첩” 등의 용어가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탄압하고 대중 속에서 고립시키려는 철퇴로 사용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만 해도 “창원간첩단” 사건, “제주간첩단” 사건, 민주노총 압수수색, 전교조 강원지부 압수수색 등 벌써 몇 건의 국가보안법 수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가?
이 정부는 자신이 지지 받지 못하는 것이 모두 가짜뉴스 때문이고, “운동권” 때문이며, 그 뒤에는 심지어 북한 정권의 공작이 있다는 극우적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은 국가안보를 내세워 활동가들을 탄압하고, 그럼으로써 대중이 기성 운동 단체와 함께 행동에 나서는 상황을 예방하려 한다. 주적을 악마화하는 것이야말로 수세에 몰린 정치 상황을 타개하는 가장 쉬운 방법임을 저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보수언론도 간첩죄 유죄 판결이 나오자마자 민주노총이 내부에 간첩이 있다며 난리를 부리기 시작했다.
공안탄압 몰이는 언제나 진실이 아닌 지배세력의 필요에 의해 시작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도 부질 없는 진실게임에 매달리기보다 단호히 탄압 반대 캠페인에 함께 나서야 한다. 말로만 국가보안법 반대가 아니라, 실천에서 탄압 받는 사람들을 지켜야한다. 국가보안법은 그 자체로 사상과 표현, 정치활동의 자유를 검열하는 악법이며, 운동을 공격하고 분열시키는 도구로서 민주주의의 주적이다. 민주노총 활동가들은 즉각 석방되어야 마땅하고, 온갖 추문과 부패로 민주적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윤석열 정부야말로 하루 빨리 권좌에서 끌어내려져야 한다. [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