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말] 지난 1월 15일, 류호정 의원이 “드디어” 정의당 탈당을 선언했다. 이미 그는 작년 말부터 “세번째 권력”의 주요 멤버로서 정의당을 공개비판해 왔다. 그리고 그 비판은 페미니스트였던 그의 전향 선언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류호정이 지난 4년 동안 받은 공격의 대부분은 부당했다. 그러나 이제 그가 뱉은 새롭지만 낡은 말들은 결코 정당하지도 타당하지도 않아 보인다. ① 그는 왜 이렇게 변했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려는 걸까? 그리고 그의 ② ‘모든 남성은 가해자’라는 말에 대한 비판, ③ ‘남혐’에 대한 우려, ④ 여성 징병제 찬성까지, 이런 주장들은 왜 문제적인 것일까?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2020년 7월, 국회의원 배지를 막 단 류호정 의원(이하 류호정)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위와 같이 발언했다. 일터와 일상에서 ‘너 혹시 페미?’냐는 사상검증에 시달려 본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이 말에 든든한 위로를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소비자의 남초 쏠림 현상이 강한 게임업계의 경우, 업계 노동자 10명 중 8명이 “사이버 불링·사상검증, 직장 내 성차별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2023년 국정감사, 청년유니온 조사). 페미 사상검증 시비에 따른 사이버불링이 발생했을 경우, 게임 회사는 대부분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하거나(41%) 방치(50%)했다. 2016년 넥슨이 ‘메갈리아’ 티셔츠를 구입했다는 것을 문제 삼아 ‘클로저스’라는 게임의 여성 성우를 교체한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여전한 ‘넥슨 사태’, 변화한 류호정
안타깝게도 2023년 11월에도 이런 경향은 바뀌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넥슨에서 만든 게임에서 ‘집게손가락’ 논란이 불거졌다. 페미니스트 여성이 남성에 대한 성적 조롱의 의미를 담은 그림을 애니메이션에 몰래 끼워넣었다는 음모론은, 고작 2시간 만에 “공식 서사”로 승인됐다. 넥슨은 바로 백기를 들고 사과한 뒤, 직접 작업을 한 하청회사에도 사과와 근로자 불이익 조치를 관철했다. 해당 그림 원본 콘티가 40대 남성의 작업물이고, 그 콘티를 수차례 감독하여 승인하고 세부 작업 방향을 지시한 것 역시 유명 남성 감독이라는 점이 뒤늦게 드러났지만 넥슨이 사과하거나 입장을 철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터넷 괴롭힘의 표적이 된 ‘페미 여성’ 애니메이터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공개적으로 유포된 자신의 얼굴과 카카오톡 아이디 때문에 여전히 불안감에 떨고 있다고 한다.
2016년과 2023년의 넥슨 사태 사이에 무언가 변한 것이 있다면, 엉뚱하게도 그것은 류호정의 입장이었다. 명백히 반복되는 게임업계 내 ‘묻지마’식 괴롭힘 앞에서 그는 갑작스레 ‘남성혐오’를 탓하기 시작했다. 류호정은 ‘집게손가락’은 “남성에 대한 성희롱적 의미가 있다”며 “그런 손 모양을 넣었으면 명백한 조롱”이고, “남성 소비자가 많은 서비스에 그런 표현을 하면 당연히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페미니스트라고 집게 손에 다 열광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까지 덧붙이기도 했다.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 사건에서 피해를 입은 여성 노동자(들)의 처지는 어떤 것인지와 같은 문제들보다, 류호정에게는 남성들의 ‘킹리적 갓심’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의 이런 입장 변화는 며칠 후 이어진 금태섭 새로운정당 창당준비위원 대표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더 명료한 언어로 정리되었다. “젠더갈등은 지난 몇 년 간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그 양태가 진영화된 양당정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류호정은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고 ‘굳이’ 선언하고, 병역 성평등에 대한 지지 의사도 피력했다.
페미니스트로서 걸은 길
이런 ‘변신’은 말 그대로 드라마틱하다. 류호정은 2020년부터 지금까지, 장혜영 의원과 함께 미디어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면서 정의당의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안과 딥페이크금지법안 등 발의에 적극 참여했고,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는 일에 공개적으로 나섰으며,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필요로 하는 기자회견에서도 많은 발언을 도맡았다. 2020년 7월 박원순 시장이 성폭력 사건으로 논란이 되던 중 자살하자,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조문은 갈 수 없다고 용기 있게 공개 발언 했다.
이런 행보는 정의당 밖은 물론이고 내부에서조차 부당한 적대적 시선들에 노출되기도 했다. 정의당의 주요 당직자나 오랜 당원들 중 노동조합운동-지역운동에 기반을 둔 활동가들 일부와 특히 386세대 출신의 친노 세력은 류호정의 박원순 관련 발언에 진심으로 반발했다. 한 번 ‘미운털’이 박히자, 류호정이 국회에 원피스를 입고 등원하거나 타투법안 발의 기자회견 때 등이 훤히 파인 드레스를 입은 것까지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쓸데없이 튀는 짓’으로 치부됐다. 심지어 일부 당원들은 정의당의 노동중심성이 약화되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이유가 여성 쟁점으로 정의당이 ‘과잉대표’ 되도록 활발히 활동하는 류호정(과 장혜영) 탓이라고 책망했다. 이러한 논란들은 옛 세대 진보 활동가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이견이나, 류호정이라는 ‘젊은 여성’에 대해 얕잡아보는 시선과 도무지 무관치 않아 보였다.
정치인으로서 걷고자 하는 길?
그러나 최근 넥슨 사태에서 류호정이 보여준 입장은, 자신에게 가해지던 부당한 비판들이 전제하던 관점의 연장선 그 자체였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 여기에서 발생한 여성들의 반발을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면적 ‘갈등’으로 대체하고, 여성 운동 안에서가 아닌 여성 운동을 적대하는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페미니즘을 거론하는 태도는 그동안 류호정을 논란 속에서 방어해 오던 사람들을 기함하게 만들었다. 그가 “나도 페미니스트지만”이라는 말을 자기주장에 덧붙인 것은, 성소수자와 난민 등에 대한 일부 여성들의 차별과 편견에 반대하기 위해서도, 여성 운동 내의 특정한 논점에 대한 자기 입장을 밝히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철 지난 ‘메갈리아’ 초기 손가락 제스추어를 소환하면서 여성들이 ‘남성에 대한 성희롱과 혐오’를 멈춰야 한다는 훈수를 두기 위해 자신의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방패 삼았을 뿐이다. 기존의 동료들과 지지자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더 많은 득표와 후원금을 위해 새로운 동맹(심지어 이준석?)과 청중(20대 남성)을 찾아 끊임없이 온건화하는 제도정치의 규칙을, 류호정은 자신의 페미니즘에도 거리낌 없이 적용한 것이다.
사실 그의 이런 태도는 얼마간 준비되어 온 것이기도 했다. 2023년 4월 그가 참여한 정치유니온 ‘세번째 권력’은 정의당의 해체와 제3지대(기존 정당 지지로 표현되지 않는 중도층)를 포괄하는 새로운 당을 주창했다. 그들은 민주당(“민주화 세대”)과 국민의힘(“산업화 세대”)으로 양분된 정치를 지양하고, 검찰개혁에 함몰되지 않으며, 시장과 사회의 가운데, 자유와 국가의 가운데에 위치한 새로운 스펙트럼의 정치로 기후위기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효능감 있는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각기 공고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극한 대립을 하고 있으니, 그 사이에서 대안부재감을 느끼는 사람들로 지지 기반을 바꾸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 금태섭-양향자 등 사회운동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과 함께 이러한 작업을 하겠다는 입장으로까지 나아갔다.
문제는 대안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제3지대론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양대 정당 구도를 넘어서서 새로운 제3의 청중을 공략하겠다는 아이디어는 멀리는 정주영, 김종필부터 가깝게는 안철수까지 하던 이야기다. 진정한 문제는 어느 세력이 제3지대는 물론 기존의 양당 정치 지지자들까지도 뒤흔들 만한 리더십과 대안을 제시하느냐에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2004년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킨 ‘운동권 정당’ 민주노동당의 사례나 미국의 버니 샌더스 열풍에서처럼, 당파성을 가진 선명한 대안으로도 대중의 지지를 결집시킬 수 있다. (집권 이후 그들이 보인 정치적 한계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필요하지만) 2010년대에 그리스의 시리자나 스페인의 포데모스 등도 대중의 사회에 대한 거대한 불만을 대변하는 것을 통해 집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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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좌파 주장에 대한 대중 다수의 지지가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객관적 정치 상황이나 주관적 역량에 따라 부침이 있을 수 있고, 쉽지 않은 시기를 오래 경유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우여곡절이 있든 끝내 우리의 대안이 올바르다는 것을 대중에게 입증 받는 과정이 바로 정치의 본령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게다가 개별 선거에서의 조바심을 벗어놓고 보면 우리의 정치가 유의미한 소수에게 지지 받을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 일관된 좌파 정치 세력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투쟁 당사자들도 항상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류호정의 변신은 류호정이 과연 어떤 새로운 대안과 방법으로 대중의 삶을 개선하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려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피지배자들, 피억압자들이 단결해 싸워 강자들을 힘으로 강제해야만 불평등-차별-혐오를 끝낼 수 있다는 것이 좌파 정치의 오랜 관점이었다. 류호정의 중도층을 향한 구애는 자신도 한 때 지지했던 이런 관점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류호정이 금태섭 등과 함께 제도 정치 한 귀퉁이에 어찌저찌 자리를 얻는다해도, 그 다음에 어떻게 ‘존재감 있는’ 제3의 정치세력이 되겠다는 것인가?
돌아보면, 존재감 있는 제3세력을 형성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지난 몇 년간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한 것은 정의당도 마찬가지였다. 정의당은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 시위와 노동운동의 부상 속에서, 그 운동의 왼쪽 목소리를 대변하며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200만 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이 본격화하고 실망감이 퍼져나갈 때, 정의당은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분명한 독립적 대안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정의당은 선거구제 개혁 등 주요 선거를 앞두고는 당장의 성적표를 위해 민주당과의 공조 가능성을 탐색했고, 이를 위해 민주당과 ‘딜’에 나섰다. 2019년 9월 조국 사태 때는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었고, 2022년 ‘검수완박’ 국면에서도 검찰청법 개정에 찬성했다.1 2022년 7월 세워진 비대위도 이런 쟁점들에서 민주당과의 독립성이 부족했다는 점을 사후적으로 인정했다. 심지어 국회 밖에서도 정의당 내 주류는 민주당 지지 세력과의 관계를 고려해 박원순 자살 사건 등에서도 당 내의 여성주의적 목소리를 억누르려 했다. 따지고 보면, 류호정의 이번 ‘급발진’은 이러한 정의당의 전략 부재와 혼란에 대한 그 나름의 답변이었던 셈이다.
진보-좌파적 원칙을 견지하는 투쟁 속의 진보정당
그런데 정치적 독립성은 단지 민주당이 제시하는 의제의 반대편에 서는 것만으로 성취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의제를 정의당이 민주당보다 먼저 국회 내에서 발의하는 것으로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당장 정의당은 2020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2022년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 과정에서 초기부터 역할을 했지만, 이때조차도 민주당으로부터 충분히 독립적이지 못했다. 민주당에 의해 개혁입법이 아무리 누더기가 되어도 그들과의 공조를 유지해 일단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에 전념한 것이다. 정의당(과 사회운동 세력의 다수)이 ‘어떤 법이든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는 소박한 생각을, 우리 정치의 독립적 가치를 대중에게 입증하는 것보다 우선시한 결과였다. 심지어 노조법 2, 3조 개정 시도에서도 확인된 것처럼, 그들은 윤석열 정권 하에서는 어떤 입법도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통과된 누더기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계급 대중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나 부실했고, 같은 이유에서 그 개혁 성과를 체감한 노동계급이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실감하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정의당’의 독립성, ‘브랜드’의 고유 가치를 포기해 얻은 게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설령 법안이 당장 좌절되는 한이 있더라도, 민주당의 개혁 훼손에 대해 정의당이나 사회운동이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 독립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국회 안팎에서 거대 양당 모두를 상대로 투쟁했다면 어땠을까? 민주당의 가짜 진보성을 폭로하고 개혁 의제가 좌절되는 책임이 민주당에도 존재함을 알리려 했다면, 민주당이 제시하는 안보다 급진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면서 더 원칙적인 모습을 끝까지 지키려 했다면,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차이가 비로소 더 많은 대중에게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진정한 의미의 실질적 개혁을 성취할 수 있는 토대가 놓였을 것이다. 민주당의 실패를 ‘진보좌파 모두의 실패’라는 프레임으로 뒤집어쓰지 않으려면(우리는 민주당이 ‘진보’조차 아니라는 점을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진보정당은 어쭙잖은 여의도 문법을 구사하는 세력이 아니라 사회운동의 충실한 대변자로 남을 필요가 있었다.
사실 6석의 소수정당인 정의당이 의회에서의 법안 통과보다, 개혁을 요구하는 아래로부터의 노동운동-사회운동을 기층에서 확대하는 데 기여하는 일에 집중했다면 더욱 ‘갓성비’의 기여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국회에서의 법안 통과는 민주당의 도움이 없으면 아예 불가능한 반면, 투쟁에 결합하고 연대하는 일은 정의당 국회의원들만으로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코로나 시기 여러 작은 사업장들의 투쟁이나 2022년 대우조선 비정규직 파업, 화물연대 파업 등에서도 정의당 국회의원들은 의회 밖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해낼 가능성이 있었다. ‘원외정당’ 진보당이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정의당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등 세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바로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적극 결합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 동안 정의당이 걸어온 길은 큰 틀에서 이런 방향은 아니었다. 정의당은 창당 시점부터, 민주노동당 활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통해 ‘운동’과 ‘의회’ 중 후자에 더 무게를 두기로 결정했다. 특히 조직화된 노동조합운동으로부터 얼마간 거리를 두고, (투쟁이 아닌) ‘정책’을 통해 (노동계급이 아닌) ‘국민’적 지지를 받기 위해 애써왔다. 이런 관점에서는 노동조합이나 지역 조직과 연관된 당의 기층 활동가들의 활동이나 그들이 설정하는 당의 방향보다, 국회의원 개인들의 의회 내 활동이 당에서 더 큰 중요성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라면, 운동의 오랜 전통을 어기고 노동운동을 상시 공격하는 보수언론에 ‘코로나 시기에 웬 대중 집회냐’며 민주노총 위원장을 ‘저격’하는 칼럼을 기고하는 류호정을 당이 적절히 통제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류호정의 최근 행보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에 존재한다. 정의당의 지난 노선에 대한 성찰 없이 단지 류호정 개인만을 비판하는 것으로는, 이후에도 제2, 제3의 류호정이 나타날 가능성을 차단하기 어렵다.
전망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평가다. 정의당이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2%의 지지로 주저앉고 이후 연달아 6월 지방선거에 참패했을 때, 그리고 최근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1% 미만의 득표로 고전할 때, 정의당 안에서는 ‘위기’의 해법에 대한 다양한 입장이 논쟁을 벌여왔다. 결국 류호정의 변화도 이러한 정의당의 위기에 대한 자신의 평가와 해법에 따른 것일 터이다. 그는 정의당이 민주당과 독립적이어야 하지만, 지금보다 오른쪽으로 나아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새로운 행선지에 맞추어 그의 페미니즘의 내용도 ‘조정’했다. 그는 앞으로 진보정당 지지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게 정의당이 걸어온 의회 중심 활동에서도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류호정을 비판하는 정의당 내부의 목소리는 크지만, 류호정의 길이 아닌 다른 대안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월 28일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 4당이 총선 공동 대응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아직 연대연합의 구체적 방식과 내용은 합의 되지 않았다. 만약 민주당이 끝내 권역별 병립형으로 선거구제 개악을 밀어붙인다면(해당 제도에서는 현재 정의당으로 3석의 국회의원 확보도 쉽지 않다)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선거가 임박하면 할수록 민주당과의 연합 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떠오를 것이다. 그럴 때 진보정당은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해야하는가?
용혜인의 기본소득당은 1월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윤석열 심판’을 위해 비례연합정당 논의가 빠르게 마무리돼야 한다며 “이번 주 안에 민주당을 포함한 책임 있는 정치 세력들의 응답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진보당 윤희숙 대표 역시 ‘윤석열 심판’을 위해 ‘최대진보연합’이 필요하다고 천명했는데, 이미 보수 언론에서는 그 연합의 한 방식으로 민주당이 내부적으로 정의당과 진보당의 당선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무공천하는 방향이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의당은 녹색당과의 연합으로 일단은 ‘진보대연합’에서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최종적인 형식과 절차가 어떠하든, 진보정당들이 선거라는 큰 무대에서 민주당을 전면 비판하는 목소리 내기를 또 포기한다면 그들의 독립성은 또다시 대중 인식 속에서 크게 훼손될 것이다. 단기적 의석 수 후퇴를 감수하더라도, 단순한 ‘심판’이 아니라 무엇으로 윤석열 정부를 심판할지에 대해 말해야 “진짜 진보”라는 브랜드를 지킬 수 있다.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다시 거대하게 분출하는 기회가 올 때까지 진보정당이 자신의 가치 지향을 분명히 할 수 없다면, 어쩌면 진보정당도 그들이 비판하는 류호정과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VF]
[주]
1. 정의당 지도부는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있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검찰 개혁 등 정치구조 개편이 사실 양대 정당의 권력 싸움에서나 핵심적으로 중요하지(친 국민의힘 성향이 강한 검찰이 부패 관련 수사를 하는 것은 민주당에게 불리하다) 평범한 대중의 삶을 개선하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진실 말이다. 평범한 노동자나 서민들 입장에서, 자신들이 어떤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 검찰에게 수사를 받는지 경찰에게 수사를 받는지, 검찰과 공수처 중 누가 자기 사건을 담당하는지가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검찰의 권한과 경찰의 권한 중 무엇이 더 큰지의 문제가 한국 사회의 진보에서 그렇게까지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인권의 문제에서 보더라도, 국가기구와 노동자 대중의 관계에서 후자의 힘이 사회적으로 강화되는 것이 중요하지 국가기구 내 조직 편제나 권한 조정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