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탈락과 대한축구협회, 한국 사회 분노 버튼의 종합선물세트
대한축구협회의 정몽규 회장(현재 사퇴), 현대 자본의 힘을 등에 업고 협회를 13년간 운영해왔습니다.

대한축구협회의 정몽규 회장(현재 사퇴), 현대 자본의 힘을 등에 업고 협회를 13년간 운영해 왔습니다.

“홍명보는 출입금지”

축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모두가 욕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며칠 전 국가대표팀 수장 자리에서 사임한 홍명보 감독입니다. 왜 이렇게들 화가 났을까요? 한국을 대표하는 팀이 반드시 월드컵 본선에 나가기를 바라는 애국심 또는 “국뽕” 때문에?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황금세대로 불릴 수 있는 선수진에 대한 팬심 때문에? 

지금 사람들의 분노는, 한국 축구가 월드컵 무대에서 몰락하기까지 지난 몇 년의 누적된 과정들을 향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몰락의 근원이 한국 축구계가 부패와 무능력으로 뒤덮인 카르텔에 의해 장악당했다는 점에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 축구계가 현대가(家) 자본-고려대 학벌 라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현대가 자본은 K리그 프로축구팀 3개를 운영할 정도로 축구계에 막대한 자본력을 투입해 카르텔의 물질적 토대를 쌓았고, 끈끈한 고려대 인맥은 그 카르텔에 복무하는 인력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한축구협회 회장인 정몽규가 있었습니다. 그는 현대-고려대 출신으로 2013년부터 현재까지 13년 동안 축구협회 회장 자리를 지키며 ‘라인’들을 요직에 기용해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세력을 철저하게 배제하며 무능력하더라도 자기 사람들이 권력을 누리도록 했습니다. 

불공정 낙하산 인사

이러한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이번 국가대표팀에 홍명보 감독이 선임된 과정이었습니다. 태업으로 2023년 아시안컵 대회에서 초라한 성적을 거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후임을 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축구협회는 프레젠테이션까지 직접 준비해오면서까지 한국 감독 자리에 지원한 외국의 유수한 감독들을 제치고 면접조차 치르지 않은 고려대 출신 홍명보 감독을 낙점했습니다. 선임 직전까지도 홍명보 감독이 선임될 것이라고 예상하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홍명보 감독을 선임한 책임자인 (역시나) 고려대 출신 축구협회 이임생 기술위원장은 그 이유를 온갖 미사어구로 포장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처절한 실패를 겪은 홍명보 감독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잠재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신은 모두 정당하고 정확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홍명보 감독은 트렌드에 뒤처진 낡은 전술을 유연성도 없이 반복 사용했고, 그 과정에서 유능한 선수들을 전혀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매 경기 선수 기용도 납득할 수 없는 기준으로 실행했습니다. 그 결과는 첫 경기 빼고 모두 졸전으로 패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이가 많아 마지막 월드컵이 될 가능성이 높은 손흥민을 포함해, 뛰어난 선수들은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얻지 못했습니다.

즉, 무능하고 부패한 상사(정몽규)가 마찬가지로 무능한, 심지어 한 번 실패까지 했던 관리자(홍명보)를 ‘라인’에 따라 불공정 인사로 낙하산 임명했고, 모두의 예측대로 그 결과는 재앙이었으며, 피해는 잘못한 그들이 아니라 직접 경기를 뛴 선수들과 응원한 국민들이 뒤집어 써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정몽규 회장과 홍명보 감독은 진심 어린 사과조차 하지 않으며, 형식적으로 자리에서 사퇴했을 뿐 이미 챙긴 고액 연봉과 개인의 자산으로 앞으로도 (축구계 안팎에서) 떵떵거리고 살 것입니다. 정말이지 모든 사람들이 이입할 만한, 부패-불공정-부정의의 ‘끝판왕’ 서사인 것입니다.

유능한 외국인 감독 몰아내기 대작전

지금의 월드컵 몰락 스토리와 연결된, 유사하면서 대조적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홍명보 감독 선임 이전 국가대표팀 감독 최종 후보에 올랐던 한 외국인 감독이 한국 K리그 프로팀 감독이 되어, 2025년 시즌 22경기 연속 무패를 달성하는 등 말 그대로 리그를 ‘쓸어버리기’ 시작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쯤 되자 축구협회의 입장이 난감해졌습니다. 이 외국인 감독은 해외 리그에서는 한물 간 감독이라는 평을 들었으나, 한국에서는 이전 시즌 강등 위기에 있었던 K리그 팀을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압도적인 성적을 내는 팀으로 만든 것입니다. 한 시즌에만 우승컵 2개를 팀에 안겨준 외국인 감독의 활약이 부각될수록 홍명보 감독을 국가대표팀 리더로 선임한 결정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자 축구협회는 그 외국인 감독을 집중적으로 견제해 리그에서 쫒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의 오른팔인 수석 코치가 ‘인종차별 행위’를 했다고 몰아붙여 결국 사임하게 했고, 이후 핵심 스태프를 잃은 감독도 물러나게 만든 것입니다. 축구협회의 다음 계획은, 어떻게든 이번 월드컵에서 결과를 만들어 홍명보 감독 선임에 대한 여론을 반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목격한 바와 같이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결국 이번 월드컵 참사는 자본과 인맥이 결탁한 권력이 스포츠계를 틀어 쥐며 생긴 예견된 미래였습니다. 오늘날 스포츠계는 공정한 경쟁과 보상이라는 자본주의 세계의 이상향을 가장 분명하게 표방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가 그런 것처럼 스포츠계도 이런 원칙이 전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현대가라는 재벌의 자본력과 고려대라는 학벌 라인이 결합해 형성된 축구협회의 주류 세력은, 한국 자본주의 전체를 관통하는 권력 집중의 문제를 떠올리게 합니다. 자본주의는 공정한 경쟁과 능력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거대 자본을 쥔 극소수의 기득권이 권력을 독점하며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에 최적화된 시스템입니다. 자본주의 안에서 능력 있는 인재를 철저히 배제하고 무능한 자들을 우대하는 것은, 그 자본주의가 ‘비정상’이어서가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이미 돈과 힘을 가진 사람이 유능해지기도 쉬운 구조이고, 돈과 힘이 있으면 유능하지 않더라도 그 자원들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더 많은 부를 누릴 수 있습니다.

노력과 능력 너머에 있는 질서에 맞서기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본주의에 진정한 공정성이나 모두를 위한 시스템의 발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현실에 없는 환상을 보여주는 스포츠 경기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려 하는 것입니다.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노오력’한 언더독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기적도 벌어지고, 평범한 사람들을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능력을 가진 엘리트 선수들이 속시원한 승리를 보여주며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이번 월드컵에서는 축구라는 스포츠로 감동과 위로를 받고자 했던 한국 대중의 열망과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겠다는 선수들의 열정은 모두 축구협회의 무능 앞에서 허망하게 사그라들었습니다. “모두의 것”이 되어야 했던 축구가 “그들만의 것”이 되어 버리며 철저하게 몰락한 것입니다. 

축구팬들의 소망처럼, 한국 축구가 재건될 수 있을까요? 기업 후원과 돈을 대거 끌어와야 하는 축구협회가 현대 재벌의 손아귀에서 얼마나 많이, 빠르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월드컵 성적이 드러낸 한국 축구의 문제는, 사실 자본주의 사회 내 권력 독점의 폐해를 비슷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축구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권력 구도를 깨고 자본의 논리(‘돈 못 벌어오는 놈은 조용히 해!’)에서 어느 정도라도 벗어나 지금보다 나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정몽규, 홍명보의 자리를 다른 자본과 인맥들이 대체할 뿐일 것입니다. 한국대표팀에 유능한 감독을 선임하는 것이 앞으로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지금 축구협회의 질서를 인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쇄신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일을 누가,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요? 한국 자본주의를 바꿔내는 문제가 그렇듯이, 그 핵심 질서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결국 답해야 할 것입니다.[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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