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이 글은 4월 첫째주 월요일 베프레터에 실렸습니다.
개헌안에도 언급된 “지역균형”
최근 제기된 헌법 개정안에 국가의 의무로서 “지역경제 육성”, “지역 간 격차 해소”, 전국의 “균형 있는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국민이 거주 지역과 관계없이 균등한 삶의 질과 기회를 향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서울지역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환영할만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지방에서도 광역시가 아닌 곳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전국의 기초자치단체 중 농어촌 58곳에는 아예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한 명도 없습니다. 농어촌 마을 2,224개에는 아예 도보 15분 내 위치에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수단이 없다고 합니다.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 50만 명은, 이주의 가장 큰 이유가 일자리였다고 밝혔습니다.
지방선거
지방선거는 바로 이런 지역 거주민들의 누적된 생활상의 불만을 이슈화하는 자리가 되곤 합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는 선거보다 유독 지방선거에서 인물이 더 강하게 부각되는 이유입니다. 정당도 중요하지만, 실제 지역 민원을 듣고 해결할 ‘지역 일꾼’을 선출해야 한다는 정서가 강한 것입니다. 정치인들도 이 점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김부겸 후보는 여당 출신인 자신을 지역 주민들이 “써먹”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약속한 지방 행정통합 예산(4년 동안 5조원씩 지원)을 받아오고, 신공항과 기업은행 등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겠다는 것입니다. 지방선거 투표일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각 지역에서는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개발 청사진을 제시하며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1991년 지방자치제도와 지방선거가 재시작된 지 30년이 훨씬 넘어선 지금까지도 여전히 “지역 간 격차”는 줄어들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중앙정부 역시 2004년부터 국가균형발전 계획을 세우고, 행정수도를 세종으로 이전하고, 심지어 2021년에는 연간 1조원대 예산을 투입한다는 계획까지 발표했지만 흐름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2010년대 중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지방소멸”이라는 단어는 이제 모든 사람들이 알 정도로 보편화되었습니다. 계속 늘어난 수도권(서울, 경기도, 인천) 인구는 이제 전국민의 절반을 차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구조적 압력 : 발전의 지리적 불균등성
원인을 명확히 파악하지 않으면, 해법도 제대로 도출될 수 없습니다. 왜 한국 사회는 이토록 지역과 서울 사이의 격차가 심한 것일까요? 이 질문에는 한 가지 수정되어야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뿐 아니라, 세계의 여러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들도 심각한 지역 간 발전의 격차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가장 처음 제도권 정치에서 사용된 나라는 일본이었습니다. 영국 역시 심각한 수도권과 지방 격차 해소를 위해 2019년 “Levelling Up”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프랑스는 국가가 ‘파리와 (나머지) 사막’으로 이뤄져 있다는 말이 쓰일 정도로 역사적으로 수도권 집중현상이 심각했고, 독일 또한 구서독 지역의 인구 감소와 산업구조 쇠퇴 등 지역 불균형 발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인 데이비드 하비도 지적했듯이, 자본주의에서는 지리적으로 불균등한 발전이 예외가 아니라 보편 현상입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지역의 발전이 기업의 투자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지역에 큰 기업이 있어야 일자리가 생기고, 그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야 그 지역의 수요층(소비자)이 형성되며, 그래야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기업과 시설들이 들어찰 수 있습니다. 공공시설 역시, 그 지역 기업이 내는 세금, 그 지역의 인구가 내는 세금에 의해 지어지고 운영되기 마련입니다. 공공시설이 이용자 부족으로 적자 운영을 하는 경우, 그 손해를 메워주는 것은 국가 재정인데 그 재정도 결국은 세금에서 나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틀 안에서만 생각하면, 기업 없이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문제는, 기업은 자신들의 이윤만을 위해 투자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 심각한 격차가 있다는 사실은 기업에게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합니다. 정반대로, 많은 기업은 이미 집중적으로 발전된 산업화된 도시나 지역에 투자해 기업을 세우려 합니다. 예컨대, 제조업체는 자신들의 물건을 구매해 줄 만한 수많은 관련 업체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싶어합니다. 동종 업체들끼리 모여있으면 인력을 구하기도 쉬워지고, 업계 정보도 빠르게 유통됩니다. 무엇보다 이미 형성된 기업 도시는 주변에 공항이나 항만, 도로, 기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산이 아닌 집중이 이윤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정부의 최선, 기업에 매달리기
이런 조건 속에서, 결국 정부의 지역 균형개발 정책의 핵심은 기업, 특히 대기업들에게 낙후 지역에 과감히 투자해달라고 설득하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투자 리스크와 손실 위험을 정부가 책임지고 보전해주겠다는 보장이 없다면, 이런 설득은 성공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부의 온갖 규제 완화 카드가 필연적으로 동원되게 됩니다. 지난 2월 지자체 통합 추진 논의가 정부에서 시작되었을 때, 통합된 지자체의 혜택으로 최저임금법 무력화, 근로기준법 근로시간 규제 예외 지정, 파견법 미적용, 환경 규제 면제 등이 거론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미 지난 2월 ,이재명 정부는 전북 새만금 지역에 AI 데이터 센터 설립 등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현대차 그룹에 “기업의 과감한 결단에 정부는 더 과감한 지원으로 화답할 것 … 규제와 행정지원의 문턱을 파격적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지역 살리기’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삶과 권리는 기업의 이윤을 위해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국가, 회사, 지역 사회)가 어려우니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때까지 노동자들은 일단 참고 희생해야 한다는 등의 익숙한 이야기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2021년부터 광주시가 지방 발전과 노사상생을 내세워 야심차게 추진한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컨대, 광주광역시가 21%나 되는 주주 지분을 가지고 현대차와 함께 시작한 광주글로벌모터스는 무노조를 원칙으로 설립됐습니다. 노동자들이 저임금 강요 등 반(反)노동자적 운영에 맞서 노조를 설립하자, 민주당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유감스럽다”는 망언까지 남겼습니다.

지역 공공 서비스를 강화하기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를 거스르는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모든 국민이 거주 지역과 관계없이 균등한 삶의 질과 기회를 향유”하게 만들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아무리 정부가 기업들에게 달콤한 제안을 한다고 하더라도, “불균등성” 자체가 사라질 정도의 대규모 낙후 지역 투자가 기업으로부터 이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부 지역에서 특정 시기에 자본 유치가 이루어지더라도, 그 지역 안에서는 이제 계급에 따라 삶의 질과 기회가 또다시 판이하게 달라질 것입니다.
자본주의적 방식의 개발을 뛰어넘으려면, 역시나 대중투쟁이 필요합니다. 2013년, 홍준표 경남지사가 진주의 공공의료원을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폐쇄하려 한 것에 맞서 꽤 큰 규모의 투쟁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비록 폐원 자체는 막아내지 못했지만, 지역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확인하고 장기적으로 재개원을 이끌어 냈습니다. 이렇게 지역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조직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실제 지역민의 필요와 우선순위에 따른 개발이 이루어지게 하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부자와 기업들에게 대규모 증세를 통해 지방 발전을 위한 재원을 대거 확충하고, 그 돈으로 수익성 없는 ‘밑빠진 독’에다가도 물을 과감히 붓도록 강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부에게만 믿고 맡겼을 때
정부나 지배계급, 시장주의자들은 기업이 지역개발의 핵심 출발점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좌파적 관점은 달라야 합니다. 기업이 아니라, 촘촘한 대중교통과 필수 의료시설, 문화시설, 생활 보조와 지원 제도 등 공공 서비스 확충을 지역 발전의 출발로서 요구해야 합니다. 사실, 이런 지역 공공서비스조차 정부에 그저 맡겨두고 시장 논리를 앞세우게 허용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따라오곤 했습니다. 경기도 거주 노동계급의 출퇴근 편의를 위해 기획된 GTX 사업은, 수익성 문제로 인한 끊임없는 사업 지연과 노선 왜곡, 비싼 가격, 인근 지역 부동산 투기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가덕도 공항 사업에서도 당시 오거돈 부산시장 일가의 투기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윤석열은 대선에서 지역별 의료기관 확충을 공약해놓고서도, 수익성을 이유로 결국 울산의료원 설립을 무산시켰습니다. 지금도 울산 의료원 건립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데, 이재명 정부가 지방정부 재정으로 지으라고 선을 긋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투쟁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핵심 수단이라는 관점을 갖는 것은, 오는 지방선거에 대응하는 데에도 시사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선심성 지역 개발 공약이 중심이 되는 선거에서, 좌파들은 불가피하게 발언력을 잃기 쉽습니다. 더 그럴듯한 개발을 약속하는 후보, 그런 개발을 실현화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후보로 여론의 중심축이 이동할 때, 좌파들조차 지역 개발 프레임 속에서 다른 후보들과 경쟁한다면 완전히 길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이미 본 것처럼, 정치인들의 그런 약속은 선거를 지나면 어차피 잘 지켜지기도 어렵습니다. 기업의 도장 없이는 안 되는 일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자들에게 선거는, 주류적 사회질서에 맞서 대중의 행동이 벌어질 수 있는 쟁점을 우리의 청중이 될 수 있는 대중들에게 알리고 지지를 결집하는 무대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지역개발”이 아닌 “지역 주민의 삶과 권리”가 사고의 중심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