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은 존재할까?

이재명 정부가 미국의 이란 전쟁에 단호하게 반대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미국과 갈등이 생기면, 결국 한국 경제에 타격이 오고 이는 단지 기업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평범한 사람에게도 타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사실이라면, 베네수엘라, 그린란드, 이란에 이어 앞으로 어디서 트럼프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우리는 ‘한국 경제’ 내지 ‘우리의 이익’을 위해 침묵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이 논리는 모든 나라의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트럼프가 어떤 황당한 일을 하더라도, 우리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연대해달라고 요청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들 자기 나라의 경제를 위해 미국의 횡포에 침묵하는 것이 불가피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이토록 불안정하고 비정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이익’은 맞는 걸까요?

한편, 미국과 갈등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한국 경제’에 속한 “모든 사람”이 동등한 수준에서 고통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당장 지금 이란 전쟁 이후 유가 상승의 결과만 봐도 그렇습니다.  지난 40일 동안 노동자들은 기름값 부담에 허리가 휘고 있지만,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같은 정유사들은 영업이익이 늘어나고 주가도 급등했습니다. 분기 이익이 조 단위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도, 정유사들은 일시적 이익일 뿐이고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인해 국제 시장에 비해 국내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등 앓는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손실 보전에 4조 2천억 원이나 쓰일 예정인데도 말입니다. 화물운송 노동자는 앉아서 월 200만원씩 손해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는 다음 분기 영업이익을 걱정한다는 사실 자체가 기업과 노동자가 사는 세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비슷한 예로, 2008년 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금융회사 리먼 브라더스는 경영위기를 이유로 1천 2백 명을 해고했지만 파산신청 직전까지 경영진 보수는 대폭 인상했습니다. 한국에서도 IMF 사태 이후, 부자들은 사라지거나 가난해지지 않았습니다. 대량 실업의 당사자는 노동자들이었고,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사회 양극화가 심화됐습니다. 경제 위기, 경영 위기 속에서도, 고통은 누군가에게만 찾아오거나 누군가에게 훨씬 더 크게 찾아옵니다. 

반대로, 기업이 잘되고 국가 경제가 잘 나간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자동으로 잘 살게 되는 것(소위 낙수효과)도 아닙니다. IMF 이후 임금인상률은 노동생산성이 늘어난 데 미치지 못했고, 2008년 이후에는 노동생산성이 늘어도 임금은 상승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1980년대 한국 경제는 매해 7~13%의 성장을 했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은 1987년 가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비로소 큰 폭으로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이 투쟁하지 않으면, 성장의 과실은 결코 자동으로 배분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위기 시기에도 노동자들이 싸우면 고통은 일방적으로 전가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근까지 프랑스 정부는 수차례 노동자들의 연금을 개악하려 시도했지만, 결국 지난해 ‘중단’을 선언해야 했습니다. 프랑스 대중은 “물가 인상에 연동한 연금 인상폭 유지”, “서민 고통 전가 반대”, “부족한 재원은 부자 증세로”를 외치며 수백만 명이 모여 2년 동안 투쟁을 계속했습니다.

투쟁이라는 변수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본주의의 규칙대로 모든 것이 돌아가도록 내버려둔다면 “국익”, “모두의 회사” 같은 말들이 사실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정부나 사용자가 조금이라도 노동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려면, 정부나 사용자의 돈이 매우 많아야 할 테니까요. 또, 한국 경제가 항상 잘 나간다면, 사용자가 가혹하게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려는 시도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자본주의 경제는 그렇게 항상 어느 나라가 쭉 잘 나가게 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사용자는 언제나 노동자에게 관대할 여유가 없습니다. 언제 경제가, 회사가, 국가가 어려워질지 모르는데 나눔은 항상 시기상조라는 것이지요. “국익”이라는 환상을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권리를 우리 투쟁의 중심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착취와 폭력,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우리 모두의 이익입니다. 우리의 이익 어디에도 이윤 논리가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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