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이 글은 “베프레터”(3월 첫번째 목요일 발행호)에 실렸던 <궁금해요, 맑스쌤>를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발행 시점에 맞춰 “베프레터”의 <궁금해요, 맑스쌤>를 읽고 싶다면, 베프레터를 이곳에서 구독해주세요.
Q. 사회주의라는 시스템은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거나 너무 믿는 거 아닌가요? 다들 이기적인데, 모두 같이 생산하고 분배하고 이런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지 모르겠어요. 결국 누군가들은 그 상황에서 자기 이익을 챙기려고 할텐데요.
A. 인간에게는 이기적인 면도, 이타적인 면도 모두 존재합니다. 어떤 환경에 놓이는지에 따라 발현되는 측면이 다를 뿐입니다. 실제로 인류학적 증거들은 인간 사회의 모습이 장소와 시대에 따라 매우 다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떤 사회는 평등과 공유를 지향했고, 어떤 사회는 계급으로 나뉘어 경쟁을 지향했으며, 또 어떤 사회는 호전적이었지만 다른 사회는 평화로웠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유전적으로 정해진,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가 이 사회에서 목격하는 이기심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이윤 추구를 위해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기적으로 이윤을 쥐어짜지 않는 자본가는 도태되고, 노동자들 역시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동료보다 우위를 점해야만 먹고살 수 있도록 내몰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 체제가 강요하는 경쟁 구조에 항상 순응하지만은 않습니다. 노동자들은 서로 경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뭉쳐 투쟁하기도 합니다.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권리와 이익을 공격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삶을 위해 투쟁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런 자신을 위한 투쟁이 타인과의 연대와 교류를 강화합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비인도적 구금과 무차별 총격에 반대하며 벌인 시위와 파업, 국가 폭력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거세게 일어났던 이란의 반정부 시위 등 수많은 사례도 인간이 목숨의 위협까지 무릅쓰며 다른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투쟁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고, 더 나은 인간성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투쟁 속에서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싸운 사람들이 마음먹는다면, 그들은 인간성의 이타적 측면을 고무하는 새로운 사회의 기초를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의 제도와 작동 방식은 더 많은 사람들의 이타성을 바꿔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필요에 따라 부를 분배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남들을 짓밟고 경쟁에서 이겨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새로운 사회적 조건 위에서 인간은 경쟁 대신 협력을, 이기심 대신 연대를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