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내란죄 유죄 선고, 진짜 내란청산으로 나아가려면

2026년 2월 19일, 드디어 윤석열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왔습니다. 2024년 12월 3일 내란 시도로부터 444일, 내란죄 재판이 시작된지 312일 만입니다. 그러나 지귀연 재판부의 윤석열 무기징역 선고는 사법부의 판결을 통한 내란청산이 제대로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통령이 계엄할 수도 있지”?


창조적 날짜 계산 방법으로 구속된 윤석열을 풀어줬던 인물답게, 지귀연 판사는 또다시 윤석열의 죄과를 과감히 재해석하는 판결문을 썼습니다. 헌재의 파면 결정과 한덕수의 유죄 선고 내용과 비교하여 윤석열이 저지른 죄, 내란의 범위를 극도로 수축시킨 것입니다. 지귀연 재판부는 계엄 선포 자체를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또, 선관위에 병력을 보낸 것, 사전에 여러 차례 쿠데타가 모의된 것 등은 모두 양형 요소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내란의 모의가 구체적으로 적시되었던 노상원 수첩도 진실 인정에서 배제했습니다. 

그 결과, 윤석열이 한 문제적 행위는 계엄령 이후 성급하게 국회로 병력을 보낸 것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국회의 계엄 해제를 막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자택에 구금하는 방식으로 쿠데타를 벌인다면, 무죄를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 지귀연 재판부는 어떻게든 윤석열을 사형으로부터 구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윤석열의 생명 그 자체를 지키려했다기보다(지귀연 재판부도 한국이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이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는 사실상의 사형제 폐지 국가라는 점을 알고 있을테니까요), 사형 선고가 내란죄에 대한 법정 최고형으로서 내란세력과 극우에 대한 가장 강력한 문책이 됨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지귀연 재판부를 포함해 조희대 대법원장과 다수의 판사들 자신이 보수강경 우파인 상황에서, 중이 제 머리를 스스로 깎을 리 없습니다. 

봐주기 판결에도 무기징역이 나온 이유


그러나 이렇게 판결문 내용도 재판부 자신도 엉망임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는 윤석열에게 그나마 무기징역이 나왔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윤석열은 죄를 피하기 위해 온갖 궁색한 말들을 둘러댔으나 유죄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극우적인 재판부라 할지라도 극우의 구심 역할을 하고 있는 윤석열까지 무죄를 줄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즉, 윤석열을 무기징역으로라도 만든 것은 “법률적으로” 국회에 병력을 보낸 죄가 무기징역만큼의 가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로지 윤석열의 폭주를 멈추기 위해 추위도 불사하고 겨울에 거리를 지켰던 시민들의 힘이 여전히 이 사회에 남아있기 때문에, 법원도 그 눈치를 본 것입니다. 지귀연 재판부는 윤석열의 죄과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애썼음에도, 구체적 죄의 내용은 축소하되 형은 무겁게 내리도록 타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중의 내란청산 의지가 바로 이 엉망진창 판결에서 죄의 내용과 형벌의 불비례성을 형성한 근본 원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무기징역 판결은 결코 진정한 의미의 내란청산이 될 수 없습니다. 거리에서 우리가 열망했던 것은 내란에 동조한 세력 자체를 이 사회에서 몰아내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시도조차 될 수 없게 본을 보이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필요한 구체적 조치는 어떤 수준의 것들이어야 할까요?

진정한 내란청산을 위한 조치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던 날 육군본부에서는 버스로 장성들을 실어날랐습니다. 계엄사령부를 꾸리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 버스에 탔던 자들이 모조리 국가 기구에서 제거되어야 합니다. 명령에 의해 움직였든 어쨌든 계엄에 가담했기 때문입니다. 내란의 밤, 경찰은 국회 출입을 막았습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지휘계통에 있던 자들은 모조리 제거되어야 합니다. 또, 윤석열은 계엄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김용현을 통해 북한에 무인기 보내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지휘계통을 식별하여 관련자들을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군대의 정보사령부와 방첩사령부는 계엄 후 계엄법을 통해 구금할 명단을 만들었고 실제 이 임무를 위해 일부 인원을 차출했습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자들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제거해야 합니다. 검찰과 경찰은 소극적인 초동수사로 윤석열이 계엄 관련 자료를 파기하는 데에 사실상 협조했습니다. 당시 검찰총장 심우정은 심지어 윤석열이 지귀연에 의해 중간에 괴상한 이유로 풀려났는데도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의사 결정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내란 직후 사법부는 법관회의를 열어 계엄에 협조할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적어도 여기에 참석한 자들은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내란에 협조한 국민의힘은 내란정당에 준하여 해체되어야 하며 통합진보당의 전례에 따라 국회의원직도 모두 박탈해야 합니다. 이러고도 부족함은 있겠지만 이것이 최소한의 진짜 “내란청산”입니다. 

윤석열 파면 이후 집권한 민주당이 이를 행하지 않을 것은 자명했습니다. 이런 수준의 전면적 조치를 하려면, 기존의 국가기구를 전면적으로 해체하고 재편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사회안정을 지향하는 ‘집권 세력’입니다. 그들은 섣불리 기존 국가 기구의 주요 세력들과 대립하다가 고립되고 권력을 잃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기업들도 대외적 불안정성의 시대에 새 정권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일에 집중하기를 원하지, 과거에 발목잡혀 ‘소모적 권력 싸움’으로 사회 불안정성이 커지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민주당이 특검에 목을 매는 것입니다. 특검은 기성 검찰을 배제한다는 점에서는 단호한 조치처럼 보이지만(그러나 파견인력의 대부분은 여전히 검찰이지요), 안정적이고 일상적인 기성 사회 질서 테두리 안에서 결국 기소와 사법부 재판으로 결론이 나는 방식입니다. 조희대 대법원이 대선 기간 동안 이재명 선거법 위반 무죄 사건을 유례없는 속도로 파기해버리는 일까지 당하고서도, 민주당은 사법부를 통한 내란청산이라는 자기들 나름의 로드맵을 설계한 것입니다. 

사법부를 통해 가능한가 

지금까지 민주당은 이것이 최선의 방식이라고 사람들을 향해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해왔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보완책이라고는 기껏해야 ‘내란전담재판부법’ 이었는데, 그조차도 또다시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관련자들의 재판 기간 내내 민주당의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법부에 재판을 맡긴 결과, 김건희는 권력의 배후자에서 일개 ‘부패한  영부인’이 되어 20개월만 감옥에 있으면 이후 부귀영화를 다시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구제할 방안을 찾지 못한 윤석열과 김용현 정도를 제외하고, 나머지 내란범들은 대체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고 있습니다. 사법부는 내란청산이라는 대중적 요구에 전면적인 반발과 태업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법부의 일인자 조희대는 말할 것도 없고, 사법부 독립을 신성시해 자신들의 특권을 누리고자 하는 일선 판사들까지 포함된 전형적인 카르텔의 움직임입니다. 법원이 얼마나 부패하고 우익적인 사상으로 가득찬 기관인지는 박근혜 정부 시기 “사법농단” 사건만 떠올려도 분명해집니다. 법원은 그 자체로 강력한 기득권을 가진 권력 집단이고,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사회 엘리트들이 운영합니다. 이런 토양에서는 (극)우파적 엘리트주의가 자라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중 ‘양심적’인 몇몇 판사를 발굴하여 민주당이 공천을 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역사적 사례들을 보아도, 내란에 준하는 과거사를 청산하는 데에 있어서 평상시 사법 질서로 성공에 이른 경우는 없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직후 프랑스의 경우, 나치 부역 세력 약 4만 명을 가두고 1천 500명을 처형하는 등 단호하게 결과를 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관련 법률 절차가 제도적으로 도입되기 이전부터, 이미 각 지역의 레지스탕스 활동가들과 대중이 직접 나치 부역자들을 찾아내 초법적으로 조사하고 처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44년 통과된 법률은 나치 협력자들을 재판하는 법원 내에 특별 재판부로 ‘시민재판소’를 설치해 시민들이 직접 판결을 내릴 수 있게 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와 비교되는 한국의 역사적 경험이 바로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이후 일본 부역세력을 청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입니다. 이 기구는 통상의 사법부와 다른 별도 기구였고, 인적으로도 독립 운동과 연관된 국회의원들이 포함되었으며, 자체적인 수사-기소-재판 기구를 두는 등 당시 법원보다 폭넓은 권한을 보장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구 역시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에 맞물려 운영되기보다 통상적인 법 절차의 틀에서 운영되다 보니, 결국 이승만 정부의 노골적인 방해와 저항으로 별 성과 없이 해산당해야 했습니다.

내란청산을 위한 전략 : 아래로부터의 운동


우리 역시 진지한 의미에서 내란청산을 하고자 했다면, 민주당 정부와 사법부에 모든 것을 그냥 맡겨두어서는 안되었습니다. 특히 내란 이전에도 법원이 이미 여러 사회 영역에서 보수적 본색을 드러냈던 만큼, 더더욱 통상의 사법절차를 신뢰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대신, 지난해 윤석열 탄핵을 요구하는 대중운동이 강력할 때, 우리는 내란청산을 위한 특별 절차의 도입을 요구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싸웠어야 했습니다. 예컨대, 윤석열이 제거 대상으로 지목했던 ‘잠재적 피해자’들과 일반 시민들이 직접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뽑아 아래로부터 자체적인 조사위원회를 꾸렸어야 합니다. 세월호 사건 때, 정부의 공식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 종료된 이후에도 국민들의 자체적인 조사위원회가 발족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위원회가 더 큰 공식적인 힘을 갖도록 특별법을 도입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위원회가 강제수사의 권리를 갖게 보장하거나, 수사를 국가기구에 강제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재판 역시, 단순한 법원 재판이 아니라 평범한 국민들이 대거 참여해 진행하도록 요구했어야 했습니다(배심원제의 확대 강화 등).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신속하게 진행하고, 대중이 이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절차의 바깥에서 운동과 여론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극우를 청산할 에너지를 유지했어야 했습니다. 

아마 이런 길을 실제로 가고자 했다면, 우리는 거친 처항을 마주했을 것입니다. 내란 공범 내지 그들과 연결된 기성 국가 기구의 책임자들과 그 일당이 살아남기 위해 내란청산을 무력화하려는 백래시를 계속해서 일으켰을테니까요. 그러면 극우들은 이들에 호응해 행동에 나섰을 것입니다. 윤석열의 내란행위를 일부 비난하는 데 동참했던 보수언론들도, 진지한 내란청산 시도에 대해서는 트집을 잡고 비난에 열을 올렸을 것입니다. 기업들도 경제에 해가 된다며 민주당에게 운동을 진정시키라고 요구했을 것입니다. 기업과 기성 국가기구와 연결된 민주당 정치인들 상당수도 자연스레 이런 운동에 반대하거나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기는 대중 운동과 기성 권력자들 사이 일련의 충돌 과정에서 우리가 승리했다면 국가 기구 상당 수를 재편하고 한국 사회 체제를 뒤흔드는 결과로 나아가게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란청산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대중의 염원은 실제로는 한국 사회를 매우 크게 변화시키는 문제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내란청산과 사회대개혁은 사실 서로 뗄래야 뗄 수 없었던 요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내고 감당할 수 있을 만한 힘, 내란에 항의하는 거리의 운동은 잦아든 상태입니다. 내란을 좌절시킨 것과 내란을 청산하는 것 사이의 간극, 즉 각각에 요구되는 힘의 수준이 다르고 후자가 훨씬 더 큰 힘을 요구한다는 사실이 지금 대중이 사법부를 향해 가진 불만의 본질일 것입니다. 대중은 내란을 좌절시킬 힘은 있었지만, 내란을 청산시킬 정도의 힘을 결집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민주당에 의존할 것이냐,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일 것이냐

그러나 이는 결코 미리 결정되어 있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지난 겨울 ‘남태령 전투’로 상징되는 장면은, 윤석열 내란에 맞선 대중 운동이 갈 수 있었던 다른 경로를 암시했습니다. 즉, 당시의 윤석열 탄핵 운동은, 대선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는 많은 요구를 가지고 투쟁을 지속하고 강화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당 운동을 이끌었던 사회운동 단체들의 연대체인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다수는 내란을 좌절시키면 내란청산은 새로운 정부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믿고 민주당 정권을 만들어주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들의 선택은 매우 아이러니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윤석열은 계엄을 통해 민주당과 노동운동 등 좌파들을 일거에 소탕하려 계획했습니다. 윤석열이 반대파를 일컬을 때 사용하던 소위 반국가세력이라는 명명이 이를 보여줍니다. 윤석열의 입장에서 반국가세력으로 명명된 이들의 상당수가 위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소속이었습니다. 국가권력을 수권하는 것 자체가 최대 목표인 민주당을 제외한 나머지 “반국가세력”들은, 누구보다 윤석열 일당을 완전히 청산시키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대중의 힘을 결집시켜 쐐기를 박으려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은 지난 해 윤석열 탄핵 운동 당시부터 지금까지 민주당과 법원이 그래도 알아서 잘 하겠지 같은 느슨한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이재명 정부 집권 전후로 민주노총 현 집행부(양경수 지도부)은 국회, 사실상 민주당을 매개로 ‘사회적 대화’ 복원을 시작했고 지금은 정부와의 대화 체계 마련에 힘쓰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민주당은 내란청산의 의지와 능력이 모두 없는 집단입니다. 사회대개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민주노총 집행부가 이렇게 민주당을 매개로 사회적 대화 복원에 나서는 행위는, 민주당의 한계를 드러내기는커녕 민주당이 대중을 속이는 일에 일조하는 것입니다. 민주당이 그래도 국민의힘과는 무언가 질적으로 다르다는 메시지를 대중에게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내란에 대한 표면적 입장 등에서) 같지는 않지만, 민주당이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와 기성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수행하는 기능에 민주노총이 협조할수록 우리 사회는 내란청산-사회대개혁과 그만큼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내란을 좌절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서도, 정작 윤석열 파면 이후 이재명 정권이 들어서자 스스로 해산했습니다. 내란청산을 위해 대중을 지속적으로 결집시키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물론 윤석열 파면 이후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이 얼마간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이 끝이 아니라 내란청산의 시작이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 했고, 관련된 캠페인 계획을 계속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형체도 불분명한 사회대개혁을 민주당 정권에서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이 단체의 공동의장이었던 박석운 씨는 국무총리실 산하 사회대개혁위원장 자리에 앉았습니다. 

전망과 과제

객관적으로 말해, 진정한 내란청산은 지금과 같은 방법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상황이  유지된다면 아마도 내란청산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며 대중의 공분을 샀던 인물 몇 명만을 단죄하는 정도에 그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내란을 계획한 자들은 끊임없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차기 정권에서의 사면을 노릴 것입니다. 

국가기관은 형식상 선출된 권력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통제하게 되어 있습니다(대통령의 임명권 등).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 양상으로 상황이 흘러갑니다. 이재명이 국방부장관을 임명할 수는 있지만, 내란에 가담한 군인들을 모조리 직무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 해군참모총장과 육군 지상작전사령관을 직무 배제한 것만 가지고도 안보 공백이니 하는 말이 군 안팎에서 나오는 상황입니다. 이들이 계엄 때 상황실을 구성하려 했다면 중대한 가담행위가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군대를 ‘통솔’해야 하는 이재명 정부는, 군 수뇌부와 중간 간부 상당수가 내란 공범들을 향해 팔이 안으로 굽는 행위에 단호히 도전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자신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 선출 권력과 임명 권력 일부를 좌초시키거나 그들의 행동 범위를 상당 부분 제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재명이 얼마나 단호한 인물이냐 하는 것과는 무관한 문제입니다. 이재명 역시 한국의 국가 체계 안에서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그 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없는 객관적 처지에 있습니다. 우리는 내란청산을 요구하면서도, 민주당 정부가 그들의 말과 달리 ‘내란청산’을 실제 실행할 리도 없고 실행할 수도 없는 처지에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번 내란죄에 대한 항소심 재판을 포함해, 윤석열에게는 아직 7개의 재판이 더 남아있습니다. 다른 내란 관련자들의 재판도 수두룩하게 남아있습니다. 그 재판들에서 (제한적이나마) 무거운 처벌이 내려진다면 그 자체로 환영할 일이지만, 그런 결론이 나온 이유는 민주당과 사법부 덕분이 아니라 지금까지 대중이 보여줬던 압력 때문일 것입니다. 마치 이번 지귀연 재판부의 모순적 판결이 대중의 눈치를 봐야 하는 법원의 옹색한 처지를 보여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내란청산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그런 재판 결과들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사법부와 민주당의 미진한 내란청산을 비판하면서, 1995년 전두환-노태우 구속 투쟁*과 같은  대중 투쟁이 떠오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러한 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내란청산과 사회대개혁이 같은 길에 존재하는 과제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내란청산을 요구하는 운동뿐 아니라, 사회를 진보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모든 운동이 결과적으로 내란 세력을 약화하고 내란청산을 실질화할 바탕이 될 것입니다. 당장 차별과 혐오에 맞선 투쟁,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기업의 노동자 착취에 맞선 대중 운동은, 결국 사회대개혁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극우, 경찰, 법원, 기업, 보수언론 등)과의 대결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대중운동을 건설한다는 관점은, 민주당을 믿어보고 지켜보겠다는 태도와는 궁극적으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민주당의 미진한 사회개혁과 내란청산이 대중의 불만이 되려 할 때, 노동운동-사회운동은 ‘그래도 민주당이 그나마 낫다’는 말 대신 우리 스스로 행동으로 요구를 쟁취하자고 제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주당과 기성 국가 권력 기구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하고 아래로부터의 투쟁 건설에 집중하는 것만이, 이후 내란청산을 현실화할 가장 효과적인  전략일 것입니다.[VF]

1995년 전두환-노태우 구속 투쟁*
1994년 10월, 검찰은 12·12 쿠테타에 대해 공소권이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에 1995년 5월부터 대학생들이 5.18. 학살자 처벌을 요구하며 대중시위와 동맹 휴업 등 투쟁을 시작했고, 이후 시민사회운동 전체가 가세하며 결국 특별법 제정을 이끌어 냈습니다. 대중의 압력 속에서 수사와 1심 재판은 10개월 이내에 마무리 되었고,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징역 22년 선고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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