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이 글은 베리프론트 지난 1월 17일 진행된 이달의포럼 <2026년 한국 정치와 투쟁의 전망>에서 한 발제와 토론 내용을 축약하고 최근 상황을 반영해 작성한 것입니다.
2025년 6월 4일,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투표율 79.3%, 득표율 49.42%로 당선하고 나서 벌써 6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시 선거에서 유권자 중 약 50%의 지지로 당선한 이재명 대통령은, 그 직후 실시된 <리얼미터> 6월 3주차 여론조 사에서 59.3%의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여론조사 기관에서 최근 다시 진행한 2026년 2월 2주차 지지율은 56.5%였습니다. 3% 차이가 있지만, 임기 초부터 지금까지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재명과 민주당 정부에 대한 기대?
그런데 이런 지지율은 전임자의 탄핵과 대중 운동의 부상 등 비슷한 상황을 거쳐 당선한 문재인 정부의 경우와 비교됩니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직후인 2주차에 84%나 되는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이재명 정부의 임기 초 지지율은 윤석열 정부의 그것(취임 2주차 52.1%)과 오히려 비슷합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시절을 경험하며 누적된 민주당에 대한 상당수 대중의 실망과 냉소를 반영한 결과로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 이후 박근혜 퇴진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 변화에 대한 큰 기대를 안고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많은 개혁을 줬다 빼앗거나(예컨대, 주52시간제 도입), 보여주기식 말잔치에 그치게 하거나(최저임금 1만원 시대,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 또는 자회사 ‘중규직’으로 전환),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상황), 심지어 경제 양극화를 심화시키고(부동산 가격 폭등) 차별과 혐오에 동참했습니다(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세력과의 영합).
민주당이 보여준 자기모순과 성과 없음은 민주당 조직은 물론 민주당이 내세우는 가치(“사람이 먼저다”)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을 함께 강화했습니다. 비록 윤석열 정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실패했다고 해서, 대중의 이런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감정이 한순간에 사라질 리 없었습니다. 국민의힘에 대한 환멸감과 위기감이 민주당이 자신들의 강성 지지층을 과거보다 넓게 재편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한계는 분명 했습니다. 선거정치에서 보수나 중도로 분류되는 대중은 윤석열을 탄핵한 이후 집권할 세력이 민주당이 되리라는 점 때문에 거부감이나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진보’ 투표층 일부도 윤석열 정부가 저지른 잘못이 너무 심각하니 선거에서 민주당을 찍겠지만, 민주당을 통해 무언가가 크게 바뀌리라는 희망은 갖지 않는다는 유보적 입장에 섰습니다.
이런 복잡한 심사가 2025년 2월 윤석열 탄핵 투쟁이 지지부진하고 극우가 활개치면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반등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내란 시도 2주 후에 두 배까지 벌어졌던 정당 지지율(<한국갤럽> 조사, 2024년 12월 3주차, 민주당 48%, 국민의힘 24%)이, 불과 두 세 주 뒤에는 38~40% 사이에서 대등하게 엎치락 뒤치락 하는 상황으로 반전되었던 것입니다. (두 정당의 지지율 격차는 이재명 대통령 당선하고 난 뒤에야 20% 이상의 현격한 차이를 굳히게 됩니다.)
이재명 정부의 입지와 전략
이러한 조건은 민주당의 대통령 선거 전략에도 적극 반영되었습니다. 민주당은 내란을 시도한 윤석열을 끌어내리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었고, 대중운동을 주도하던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내부의 친민주당 그룹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민주당은 기존의 지지층을 비롯해, 윤석열 탄핵 운동에 참여하거나 내란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 다수는 어차피 자신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은 굳이 대선 기간 동안 내란을 청산하고 사회대개혁을 염원하는 진보 대중의 기대를 적극 대변하는 길을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 때 경험한 것처럼, 많은 약속은 진보 지지층의 많은 실망감으로 이어질 뿐이라고도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당의 선거 초점은 내란과 개혁이 아닌, ‘실용’과 ‘중도’의 메시지로 가득찼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기존 민주당과 그들이 과거에 말로라도 떠들었던 “진보”적 가치에 대해 불신하고 있던, 그래서 내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을 지지하기를 꺼림해하는 중도층과 보수층을 공략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이재명 캠프의 ‘15대 정책 과제’ 중 내란 청산과 사회대개혁의 가치에 부합하는 항목과 경제성장에 대한 내용이 거의 비등하게 다뤄진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민주당이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과정을 통해 민주당이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특정 성향의 유권자 집단이라기보다 기업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와 같은 다수 대중의 열광적 지지는 어차피 불가능한 상황이었던데다, 그런 아래로부터의 지지 열기는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커질 경우 순식간에 반(反) 정부 운동으로 급진화될 위험성도 있었습니다. 민주당에게 집권 후 중요한 것은 ‘국가적 혼란’을 끝내고 한국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었고, 이런 과제를 위해서는 대중의 지지보다 기업의 협조가 절실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경제 성장의 중심은 기업”, “국가도 기업가형으로 변해야 한다”며 기업 대표자들에게 발언했고,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 및 지원과 규제의 축소 등을 약속했습니다.

지난 8개월 동안 이재명 정부가 걸은 길
당선 이후, 지난 8개월 동안 이재명 정부는 실제로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을 위한 길을 충실히 걸어왔습니다. 한국 기업들의 가장 큰 불안이었던 미국 관세를 해결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왕관까지 선물하며 아첨했고, 차세대 ‘먹거리’인 AI 산업을 보조하기 위해 2025년 말 기준 10.1조 원의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서겠다며 부동산에 집중된 가계 자산을 자본시장으로 옮기려 하고, 주주 배당을 강화하는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상법 개정도 약속하는 등 주가 상승을 견인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사회대개혁이나 내란청산의 속도는 거의 체감되지 않거나 무척 더딥니다. 내란 관련자들의 재판은 너무 느리게 진행된 나머지, 이제 점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의 끈을 아예 내려놓고 있습니다. ‘친절한 귀연씨’로 대표되는 물렁한 재판부와 ‘침대 변론’ 내란 세력 변호인들의 쿵짝이 사람들을 분통 터뜨리게 하고, 김건희에 대한 무죄 판결, 윤석열의 체포방해죄 판결에서의 초범 감경 논란 등도 이어졌습니다. 민주당은 그 자체로 한계투성이인 내란재판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사법부와 보수세력의 반대 속에 결국 그마저 셀프 누더기로 만들었습니다. 코로나 시절 익숙했던 민생지원금을 찔끔 받은 것 외에, 대중에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사회개혁이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기후위기와 국민안전을 말하며 강조했던 (반쪽짜리) 탈원전 정책도, 얼마 전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폐기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재명 정부가 스스로 ‘위장 진보’로서의 색깔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전히 상징적 퍼포먼스, ‘예고편’ 무한 상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노동부 장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산업안전보건본부장 같은 노동 관련 정부의 주요 부서 책임자로 노동운동 출신이거나 그에 우호적인 인물들을 임명했습니다(김영훈, 박수근, 류현철 등). 정부는 노조법 2,3조 개정 ‘성과’를 홍보하며 비정규직의 권리를 챙기겠다고 말하고, 개인정보 유출 이후 ‘국민 밉상’이 된 쿠팡 사장을 청문회에서 쥐잡듯 잡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성평등가족부(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는 오랫동안 여성운동을 해 온 원민경 변호사를 임명했습니다. 노동운동, 사회운동, 시민운동의 활동가들, 선명한 진보 정치색깔을 가진 대중이 기대를 가질 만한 여지 역시 계속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은 민주당의 잡은 물고기?
문제는 이러한 이재명 정부의 행보에 대한 운동 진영의 반응입니다. 민주노총은 ‘2026년 사업계획’에서, 민주당이 노동계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행보를 보인다고 비판하면서도 “정권교체로 민주노총의 사업과 투쟁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었고 “민주노총이 제기한 사회개혁, 노동개혁 과제가 국정 과제로 공식화”되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방향은 큰 틀에서 맞지만 속도가 느리거나 내용이 불철저하므로 “대정부 압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미묘합니다. 민주당 정부가 원칙적으로 개혁을 위한 공조 내지 동맹의 대상인지, 개혁을 지연시키거나 본질적 변화를 방해하는 투쟁의 대상인지가 모호한 것입니다. 이런 민주노총의 애매한 입장은 실천의 영역에 가보면 사실상 후자에 가깝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사업계획에서 2026년 파업 일정을 6월 지방선거 이전이 아닌 7월로 잡은 것입니다. 지방선거 직전이 어떤 이슈든 여론화하고 정부로부터 확실한 양보를 받기 좋은 최적의 타이밍임에도, 이 시기 정부와 각을 세우는 상황은 피해가겠다는 것입니다.
또, 민주노총은 2018년 정부, 사용자와 함께하는 “사회적 대화”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음에도, 2025년 9월부터 민주당 주도의 국회와 사회적 대화를 재개했고 이번 달 11일에는 고용노동부와 정기적으로 만나는 운영협의체(노정협의체)를 발족시켰습니다. 해당 노정협의체에는 사용자가 들어오지는 않지만, 고용노동부가 별도로 사용자들과의 운영협의체를 운영하므로 사실상 한 다리 건너 ‘노사정 협의체’가 복원된 셈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결정은, 노동조합운동의 상층 지도자들 중심으로 민주당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널리 퍼져있음을 보여줍니다. 대중 집회와 파업 등을 조직하지 않는 일상적 상황에서도, 민주당 정부와 대화를 통해 보장받을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먹고 살기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기층의 평범한 노동자들, 특히 청년 세대 노동자들보다 노동조합운동을 오래 경험한 상층 지도자들이 민주당에 대해 더 큰 기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근혜 정부와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이들 정부가 주도해 온 노동조합 탄압과 적대 정책에 대한 반감이 이재명 정부 정도면 양반이라는 생각을 강화시키고 있는 듯합니다.

민주당의 본질
그러나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정부 15년의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김대중 정부는 IMF 극복을 명분으로 한국 사회에 신자유주의를 도입하고 노동법 개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역시 모든 사회개혁에 대한 기대를 배신하고,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하고 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쟁 질서를 안착시켰습니다. 이미 보았듯이, 진보 대중의 ‘북한 공산당급 지지’를 받은 문재인 정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 이후 신자유주의 사회 질서가 도전받기는커녕 질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자,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들만 대중 속에서 더 힘을 키웠습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그들 소속 정치인의 일부를 과거 민주화 운동 출신 인사나 현직 사회운동의 활동가, 운동을 지지하는 지식인에서 충원해왔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예컨대, 노무현, 문재인, 조국, 박원순, 박주민 등). 그래서 인적 구성으로만 보면, 민주당은 사회운동 일부에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다수의 민주당 정치인은 과거 군사 독재 정부와 싸우거나 경쟁한 경험이 있다 해도, 엄연히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직업 정치인’(부르주아 정치인)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기업과 지역 부자의 후원을 받아 정치 활동을 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페이백’합니다.
민주당의 이런 성격은 한국 역사 최초의 정권교체를 실제로 이뤄낸 후부터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민주당은 정치권력을 쥐고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의 기성권력 곳곳에 자기 사람을 심거나 ‘라인’을 만들었습니다(행정기관, 사법기관, 경찰과 군대, 공기업 등). 기업들 역시 더 이상 민주당을 ‘무책임하고 위험한 야당’이 아닌 수권 세력으로서 인정하면서 관계를 강화했습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 힘)은 불법정치자금으로 8백 23억원을, 노무현 캠프는 1백 13억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여전히 “정통보수”인 한나라당이 기업들의 제1순위 선호 정당이기는 해도, 민주당 역시 ‘배팅’할만한 위상으로 치고 올라 왔음을 보여줬습니다. 이런 민주당의 주류화는 오늘날 더욱 강화되었는데, 2024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한 (합법적) 국회의원 후원금은 국민의힘 국회의원들 약 37억 원, 민주당 국회의원들 약 31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기업과 권력자들의 촘촘한 관계망 속에 있으면서도, 사회운동과 진보적 유권자들을 지지 기반으로 삼는 민주당의 ‘두 길 보기’는 그들의 강령에도 언뜻 드러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강령은 자신들이 “민주주의 정신을 계승하고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한다며 국민의힘과 선을 긋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정책목표 중 첫째로 나열되어 있는 것은 ‘혁신 성장과 (민주적) 시장 경제’입니다. 공정한 사회, 안전한 사회, 보편복지, 노동존중, 성평등, 경제 민주화(이는 박근혜 정부의 슬로건이기도 했습니다) 등 온갖 진보적 단어들도 함께 나열되어 있지만, 이들의 가치와 시장 경제가 충돌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미스테리를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슬로건으로 간단히 해결하려 했습니다. 복지와 평등도 돈이 된다, 즉, 경제 양극화와 불평등이 약화되면 평범한 사람들의 구매력이 상승해 기업과 경제에도 득이 된다는 논리를 내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최종 목적이 경제 성장이고 평등은 그 수단에 불과하다면, 평등이 성장에 효과적 수단이 아님이 드러났을 때 민주당이 실천에서 무엇을 우선하게 될까요?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부의 역할
민주당이라는 집단의 본질뿐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와 정부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직시해야 합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현대 국가의 집행부는 부르주아지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일 뿐”이라고 분석한 것에 더해,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부’의 전능함은 민주공화국에서 더 확실해진다. … 민주공화국은 자본주의로서는 가능한 최선의 정치적 외피다. 그러므로 자본은 이 최선의 외피를 … 획득한 뒤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인물이나 제도나 정당이 아무리 교체되더라도 자본의 권력이 전혀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하고 튼튼하게 그 권력을 확립한다.

한국을 포함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상당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즉 보통선거권을 전제로 정부와 의회를 국민이 선출하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은 정당이, 그 뜻에 따라 민주적으로 사회를 운영하리라는 기대가 가능합니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들은 법으로 신분을 정하고, 가장 높은 신분의 왕이 마음대로 사회를 운영했는데 이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어느 놈을 뽑아도 그 놈이 그 놈이다’는 말이 흔히 나오는 이유는, 어떤 정당과 인물을 선출해도 선출 이후에는 실제로 거의 비슷비슷하게 국가를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기업, 부자, 권력자들은 항상 편하게 잘 살고 노동자와 서민들은 항상 살기가 어렵습니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국가가 하는 역할 때문입니다. 울산, 여수, 용인, 기흥 같이 거대 기업의 산업단지가 존재하는 도시를 가보면, 그 시의 모든 것이 사실상 그 기업으로부터 기원한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지방정부의 세금 수입, 그 지역 경제의 모든 소비와 일자리를 책임지는 것이 그 기업이고, 그 기업이 만일 그곳에서 빠져나간다면(실제로 그런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겠지만) 그 도시는 유령도시가 될 것입니다.
이는 국가의 단위에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 한국에서 2025년 수출을 책임진 1위 산업 분야는 반도체, 2위는 석유화학과 정유, 3위는 자동차, 4위는 조선, 5위는 철강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이런 대기업이 잘 되는 것이 결국 노동자의 일자리가 생기고 세금이 더 걷히는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매우 진보적인 세력이 정부나 의회를 운영할 수 있게 되어 대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사용하거나 기업의 의사를 거스른다면, 그 세력은 국가의 이익을 해친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입니다. 기업은 적극적으로 정부를 보이콧할 것이고, 선출과 무관한 권력자들, 곧 군대와 경찰, 공무원, 법원, 거대 언론, 심지어 해외 투자자와 그들을 대변하는 외국 정부 등은 선출된 정부를 끌어내리기 위해 모든 합법적, 불법적 수단을 사용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멀리는 1936년 스페인, 1971년 칠레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고, 가깝게는 2015년 그리스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유럽은행의 긴축 정책에 반대한다는 노선으로 당선한 급진좌파 시리자 정부가 결국 국민들을 배신했던 것입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상태와 민주당 정부의 과제
이런 점들을 보면, 시장 경제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겠다는 이념도 없고, 대기업 후원과 신임을 받기 위해 애쓰고 있는 민주당이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면서 대기업의 이익을 본격적으로 거스른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회대개혁”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소요하는 일입니다. 복지를 강화한다면, 그 비용을 어디에서 충당해야 할까요. 혐오를 약화시키기 위해, 혐오의 핵심 동력인 차별과 경쟁을 약화시킨다면 이를 위한 사회적 비용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요. 노동시간을 줄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려고 한다면,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게 될까요.
기존의 불평등과 차별의 체제에서 이득을 보던 기업과 부자들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불평등한 체제, 즉 노동자들을 더 오래, 더 값싸게, 더 힘들고 위험하게 일하게 하고, 노동자들끼리 작은 파이를 가지고 피터지게 경쟁을 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바로 지금까지 한국 자본주의의 비용을 경감시켜주는 경쟁력이었습니다. “사회대개혁”은 기업들의 의사와 이익에 반하고,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와 경쟁력을 책임지겠다는 민주당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구호입니다.
더구나 지금 한국 자본주의는 국제적인 장기 불황과 수많은 대외적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2026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입니다. 정부의 “의지”를 담아 꽤 높게 잡은 수치이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 3% 성장도 낮다고 우려하던 것에 비하면 낮은 목표입니다. 그러나 그나마도 달성가능성이 불분명합니다.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평균 3%)도 밝지 않고, 달러 환율은 고공행진하고 있으며, 미국의 변덕스러운 관세 협박에, 미중갈등에서 사이에 낀 처지까지 도처에 난제가 가득합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갈등이 대만에서의 군사적 갈등으로 비화되는 등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지정학적 경쟁, 충돌이 발생할 경우, 한국 자본가들은 위험천만한 도박에 휩쓸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모든 상황 속에서, 정부(이재명 정부든 다른 어느 정부든)가 갑자기 사회 체제를 대폭 진보적으로 개편하는 위험을 감수하려 할 리 만무합니다. 민주당 정부의 과제와 우선순위에 사회대개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료한 상황인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일부 ‘노동 개혁’을 위한 정책들이 계속 도마 위에 오른다고 해도, 이는 평범한 노동자들의 이익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디딤돌로서 ‘줬다 뺏기’나 조삼모사식 개혁에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주당 정부는 계속해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진영에 대화를 위한 러브콜을 보내겠지만, 이 역시 AI 도입 등 기업의 이익과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위한 정책을 투쟁에 부딪히지 않고 원만히 추진하기 위한 포석에 불과할 것입니다. 운동의 중요한 단체나 지도자들이 동의하면, 진보 대중이 불만이 있더라도 결국 정책에 따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개혁을 성취할 전략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진짜 개혁을 쟁취할 방법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대중 운동, 집회시위와 파업과 같은 직접 행동입니다. 강력한 운동이 정부와 기업을 모두 압박해, 그들이 특정한 양보를 하지 않으면 한국 자본주의가 오히려 유지되기 어렵겠다는 위기감을 갖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운동이 발전하려면, 대중의 분노에 자본주의 경제 질서를 주저없이 거스르려는 세력의 용기가 함께 더해져야 합니다. 국제 자본주의의 흐름 자체를 완전히 재편하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전 세계의 사회운동, 노동계급과 연대해 시장과 기업을 대신해 평등과 지속가능성의 가치로 생산과 분배를 책임지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것을 주장해야 합니다. 그런 주장이 대중 운동 내부 다수의 지지를 받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사회변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사회운동의 많은 활동가들이 이러한 급진적 비전을 상실했거나 동의를 보내지 않습니다. 예컨대, 진보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내란 세력 심판(국민의힘 후보 낙선)’을 위해 민주당과 선거 연대(후보 출마 나눠먹기)를 한다는 데에 활동의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한계와 부족함을 비판하며 선을 긋는 행위는, 지금의 정세에서 도리어 국민의힘을 되살려주는 어리석은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이 경향의 활동가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 같은 문제보다는, 민주당 정부가 미국에게 굴종하지 않고 적대적이지 않은 대북 정책을 펴게 강제하는 것이 사회진보를 위해 더 중요한 과제라고 믿기도 합니다.
한편, 당적을 불문하고 많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이재명 정부와 사용자에 맞선 파업 투쟁을 조직하는 일보다, 이재명 정부를 통한 ‘노정교섭’과 산별노조 안착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윤석열 정부 하에서 있었던 노동조합 탄압 정책을 모두 없애버리고, 정부의 협조를 통해 기업들의 노조 적대적 태도를 누른 뒤 안정적 교섭 체계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략은 오늘날 노동조합 운동의 상층이 과거의 전투적 전통으로부터 멀어져 점점 더 합법주의적인 경향으로 기울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
그러나 사회운동의 활동가나 상층 지도자들의 입장과 달리, 기층 노동자들은 이재명 정부에 대해 기대를 갖고 있든 그렇지 않든 자신들의 불만을 가지고 조금씩 싸워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있었던 가장 고무적인 사례는, 소위 ‘우파 노조’로 알려져있는 한국노총이 통제하는 서울 시내버스 사업장들에서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여 이틀 만에 완승한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95% 가까이 파업에 동참해 이틀 동안 서울시의 버스를 모두 세워버렸고, 임금인상 요구를 쟁취했습니다. 한국노총 소속 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 열기는, 2023년 삼성전자와 2024년 SK하이닉스의 청년 세대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거나 그 직전까지 갔던 것에서도 확인됩니다. 기존의 투쟁 경험이 없었던 이들도, 소위 ‘대기업 귀족 노동자’들도 불만과 요구가 있으면 얼마든지 투쟁을 벌일 수 있는 것입니다.
금속노조에 소속된 한국GM 세종물류센터 하청업체 노동자들도 얼마 전 고무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자, 원청 사용자인 한국GM은 20년 일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계약 연장을 거부했습니다. 부당해고를 당한 것과 다름 없는 100명의 노동자들은 불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업장의 물류 이동을 단호하게 가로막아 기업의 정상 운영을 어렵게 했습니다. 지역의 여러 노동조합과 노동자들도 굳건히 연대했고, 결국 해고는 철회되었습니다. 세종호텔 노동자들도, 고공농성을 마무리한 뒤 로비 점거에 돌입했습니다. 비록 며칠 뒤 경찰의 연행으로 농성은 강제 해제 되었지만,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저항은 ‘친노동’ 이재명 정부와 경찰이 결국 누구 편에 서는지 현실에서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고 믿는 급진좌파는, 바로 이런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 가능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운동의 지도자들이 민주당에 기대를 갖고 비판과 투쟁을 자제할 때조차, 대중은 투쟁에 나설 수 있습니다. 과제는 바로 이런 투쟁들을 서로 연결하고, 확대하고, 연대를 만들고, 더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과정에서 이재명 정부가 내세웠던 여러 말들이 현실에서 진정성을 갖는지가 폭로될 수 있습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어느 간담회 자리에서 노동자들을 향해 “단체행동을 하시라, 그래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셔야 한다, 정부는 탄압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재명 정부에 어떤 환상을 갖지 않으면서도 이 말을 앞세워 투쟁을 건설하고 확대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대중의 실천에서 이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가 드러나게 이재명 정부를 시험대에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한 폭로만이, 더 많은 노동자들이 직접 더 다양한 요구를 위해 투쟁에 나서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급진좌파의 과제
이렇게 대중 운동을 통해 이재명 정부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과 이재명 정부가 스스로 개혁을 배신해 대중의 환멸감이 커지는 것은 서로 완전히 다른 효과를 낳을 것입니다. 후자의 상황에서 가장 큰 반사이익을 보는 것은 국민의힘과 극우 세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재명 정부와 다른 왼쪽의 유력한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투쟁이 부상하고, 그 투쟁을 대변하는 정치 세력이 함께 주목 받는다면, 이재명 정부에 대한 실망과 반감은 좌파적 대안으로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좌파적 대중운동의 발전을 딛고 성장한 것이 미국 뉴욕 시장 선거에서 당선한 조란 맘다니와 그의 조직 ‘DSA(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이었고 영국의 제레미 코빈과 그의 조직 ‘당신의 당(Your Party)’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반대 시위, 긴축 반대 운동, 반트럼프 시위 등에 힘입어 등장했고, 그 운동의 구호를 대변하며 주목 받았습니다. 한국의 급진좌파들도 이런 경로를 밟아 성장할 객관적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치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벌어진 운동에 연대하고 참여하는 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민주당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민주당의 무능과 무용성을 대중에게 증명한다는 목표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말로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사회적 경험과 투쟁을 통해 민주당을 입증시킨다는 전략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방향으로 운동이 나아가도록 그 투쟁의 진로에 영향력을 미치려면, 그런 목표와 전략을 가진 활동가 집단, 급진좌파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조직의 기초를 다지는 과정은 당장은 지루하고 덜 ‘실천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들을 조직으로 묶어내는 일은, 개인으로서 내가 어느 집회에 참석하거나 연대를 표명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고 중요한 일입니다.
외부의 시선에서, 미국의 조란 맘다니의 당선을 보는 일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기억 같은 일로 비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과정 없는 결과란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활동가들도 모두 오랜 준비기간, 만만치 않은 어려움들을 지나와야 했습니다. 우리도 그 과정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노동계급 대중의 운동이 떠오르고 이재명 정부가 한계를 드러낼 때, 어느 정도 준비된 조직이 있다면 우리는 2000년대 초 민주노동당의 경험, 또는 그 이상의 성과를 재현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렇게 새로 생길 좌파적 대중 정당은 “민주당 2중대”를 자처했다가 민주당에 대한 환멸을 함께 뒤집어썼던 민주노동당의 실패의 경험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 새로운 선명한 급진적 색깔의 제3당이 생기기를 원한다면, 적절한 때를 기다리며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준비의 주체는 위의 제3당보다 작은 규모의, 그러나 더 선명한 급진 정치를 가진 활동가들의 조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활동가들의 네트워크입니다. 반등의 시작점이 정확히 언제일지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반등의 가능성 자체를 내다보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기회를 움켜쥘 수 없습니다. 함께 바람의 방향을 바뀔 때를 준비해 나갑시다.[VF]

“이재명 정부 2년차 : 한국 정치와 투쟁의 전망”에 대한 답변
[…] 어떤 외부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그 스스로의 이해관계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사회 운동 (출신) 일부에 대해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고 입으로는 …이므로, 말로 하는 설득이나 선거에서의 양보 등 정치 책략 쯤으로 바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