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이 글은 “베프레터”(2월 두번째 목요일 발행호)에 실렸던 <위클리 코멘트>를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발행 시점에 맞춰 “베프레터”의 <위클리 코멘트>를 읽고 싶다면, 베프레터를 이곳에서 구독해주세요.
지난 한 달 동안 벌어진 일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계급 투쟁”을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임금 등 경제적 이슈를 둘러싼 산업현장에서의 싸움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레닌이 이야기한 것처럼, 노동계급이 훨씬 더 일반화되고 정치적인 의제를 가지고 파업으로 싸우는 것이야말로 계급투쟁의 으뜸가는 형태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자본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정치적 지배계급, 특히 트럼프를 정면으로 겨냥한 노동자들의 행동이 점점 더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최근 투쟁의 시작은 트럼프의 친위대와도 같은 이민세관단속국(ICE, United State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이 1월 7일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한 여성을 총으로 쏴 사망하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고한 시민의 죽음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섰지만, 불과 보름여만인 1월 24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ICE에 의해 30대 남성 시민이 또다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ICE 요원은 남성에게 5초가량 동안 10발의 총격을 가했습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정당방위를 주장했습니다. 법무부는 여성을 사망케 한 ICE 요원을 기소조차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미네소타주, 특히 미니애폴리스의 시민과 노동자들은 전국적 분노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미니애폴리스는 6년 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벌어져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시작점이 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흑인들뿐 아니라 훨씬 더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투쟁에 함께 나섰고, 조직된 노동조합들도 합류했습니다. 그 결과 1월 23일, “총파업 도심 행진”이 조직되었습니다.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수천 명의 노동자들과 100여명의 성직자들이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공항으로 모였습니다. 체포 위험이 가장 큰 도로변 아스팔트에 무릎을 꿇은 성직자들은 찬송가 “우리는 물러서지 않습니다”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찬송가에 이어 “항공사들은 ICE와의 수송 계약을 중단하라!”, “이민자 추방 소송을 멈춰라!”는 구호가 이어졌습니다. 구호는 성직자들이 모두 연행될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그들의 연행 소식은 오후 집회 참여를 망설이던 사람들까지 거리로 나서게 했습니다. 오후 2시 10만 명이 모여 시내에서 “파업, 파업, 파업”을 외치며 행진했습니다. 미네소타의 여러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에게 출근하지 말고 투쟁에 참여할 것을 권고했고, 실제 많은 조합원들과 비조합원들이 개인 휴가까지 내가며 거리로 나섰습니다. 예컨대, 어느 노동자는 자신이 속한 통신, 위성 TV, 가정 보안 및 비디오 게임 업계 노동조합의 조합원 80%가 1월 23일에 결근했다고 회고했습니다. 700곳이 넘는 상점과 사업체도 연대의 의미로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특히 트럼프가 주된 혐오의 표적으로 삼은 소말리아 이민자 공동체에 대한 연대 메시지를 휴점 표지판을 내건 상점들도 많았습니다. 영업을 하는 상점들도 무료로 투쟁 참가자들에게 물품과 따뜻한 음료를 제공했습니다.
미니애폴리스의 투쟁에 연대하는 행동이 같은 날 미국 전역 250개 도시에서 벌어졌습니다. 특히 애틀란타에서는 한 고등학교의 학생 600명이 동시에 수업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왔고, 뉴욕에서는 뉴욕대 학생들이 연대 행진에 동참했습니다. 학생과 청소년의 참여는 1월 23일 시위 이후에도 계속 확대되었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 플로리다, 애틀랜틱, 네바다, 애리조나,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등에서 학생 시위가 이어져 학교가 휴교했고, 특히 LA에서는 85곳의 학교에서 1만 2천 5백명이 수업을 거부하고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청소년들은 특히 ICE가 5세 어린이를 겁박해 아버지를 체포하는 데 이용한 사건에 분노했습니다.
진정한 “총파업”을 향하여
생계를 포기하고 ICE 단속을 피해 숨게 된 이민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계급의 자발적 연대도 더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ICE의 동태를 정찰하고, ICE에게 폭력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심리 치료를 제공하고, 식량과 생필품을 나누고 배달해주는 네트워크가 발전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도 출근을 포기한 이민자 조합원들을 위해 정주 조합원들이 나서서 식량을 전달하는 활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동적인 활동에 더해,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들만이 할 수 있는 더욱 결정적인 역할이 있습니다. 바로 조직적으로 파업을 벌이고 확대하는 것입니다. 한 노동조합 활동가가 언론에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에겐 더 많은 ‘총파업’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겐 군대가 없습니다. 법원도 우리 편이 아니고, 솔직히 말해서 민주당도 우리 편이 아니에요. 우리가 가진 것은 노동을 거부할 능력뿐입니다. 트럼프는 우리 얘긴 듣지 않지만, 기업 얘긴 듣습니다.” 파업으로 기업들이 못 견뎌 트럼프를 압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대다수 노동조합은 공식적으로 적극적인 파업 호소와 조직까지 나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예컨대, 많은 공공부문 노조들이 민주당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고, 지나치게 경제활동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자기 검열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노조 상층 관료들이 소통하고 의지하는 민주당 정치인들은 트럼프와 ICE에 진지하게 맞설 생각이 없습니다. 당장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위대를 연행하는 사람은 민주당 출신 미네소타주 주지사가 통제하는 미니애폴리스 경찰입니다. 그는 ICE를 퇴거시키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권한이 있지만 그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ICE와 함께 짝을 이루는 국경순찰대의 대장 그레고리 보비노와 단속 병력 일부를 쫓아낸 것은, 민주당 정치인이 아닌 시위대와 전국적 여론이었습니다.
리더십과 조직의 역할
미니애폴리스는 1934년 벌어진 ‘팀스터즈’ 파업으로도 유명한 도시입니다. 트럭 등 운송노동자와 하역 노동자들이 상층 노동조합 관료들의 소극적 태도를 꿇고 도시 전체를 마비시켜 승리했습니다. 노동자들은 대체 인력을 철저히 투입하지 못하게 버텼고, 경찰과 깡패들의 물리력 사용에도 단호하게 맞섰습니다.

2026년에도 이러한 역사를 재현하려면, 노동조합 안팎에서 급진적 활동가들이 투쟁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조직적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것입니다. 예컨대, 지금 조란 맘다니 등이 속한 미국의 민주사회주의자들(DSA,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의 활동가들은 미니애폴리스 1월 23일 투쟁에 큰 영향을 미친 서비스노조(SEIU, 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의 지부 활동에 관여하며 진정한 총파업을 건설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1월 23일 행동은 1934년 파업과 같이 생산의 마비를 가져오는 수준까지 벌어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용기와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제는 이 운동을 더 밀어붙여야 할 때입니다. 한 활동가는 이렇게 썼습니다.
“[1월 23일] 행동이 전국의 조합원들에게 단순히 투표를 넘어 정치적 파업과 대규모 행동에 대해 이야기할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효과를 거두려면 최소한 지금보다 다섯 배는 더 큰 규모가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지금의 투쟁을 현실로 만든 수천 명의 사람들이 노동조합 회의에 참석하여, 왜 이 행동이 중요하고 필요한지 더 많은 조합원들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또한,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데 참여했던 미조직 노동자들이 노동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조합원들이 행동에 나서서 … 노동조합 지도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때 비로소 효과를 발휘합니다.”
트럼프는 지금 여러 방면에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영국, 유럽의 지배 계급 남성들이 한 데 어울려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이용한 사건(“엡스타인 파일 사건”)도 트럼프를 더욱 곤경에 처하게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이 사건의 가해자인 엡스타인의 잘못을 알고서도 그와의 관계를 이어갔을 뿐 아니라, 자신의 힘을 이용해 그의 범죄를 가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의심도 받고 있습니다. 집권 세력의 위기가 심화되고, 그들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대중 사이에서 커질수록 이런 의혹은 더 강한 파괴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배계급이 서로 분열되면, 그들 사이에서 이러한 추문의 진실이 툭 튀어나오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점이 되면, 각각의 쟁점이 서로 결합되어 더 큰 운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결코 결정되어 있지 않지만, 투쟁이 더 커지고 강해질수록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만큼은 분명합니다.[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