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다이트 운동을 비웃는 사람들에게

[편집자] 이 글은 “베프레터”(2월 첫번째 목요일 발행호)에 실렸던 <위클리 코멘트>를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발행 시점에 맞춰 “베프레터”의 <위클리 코멘트>를 읽고 싶다면, 베프레터를 이곳에서 구독해주세요.

“러다이트 운동”은 흔히 ‘기계 파괴 운동’이라고만 알려져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실업과 저임금으로 내모는 원흉으로 기계를 지목해 파괴했지만, 결국 산업혁명과 기술발전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다는 후일담도 흔히 따라 붙습나다.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별도 신문을 내는 <조선일보>는 아예 “당장은 기계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없애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더 편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라고 해설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며칠 전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러다이트 운동을 언급하며 “이건 절대 안 돼, 있을 수 없어, 말도 하지 마 … 이렇게 하면 적응이 안 된다”며 AI 시대의 빠른 적응을 거부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차티스트 운동으로 이어진 러다이트

이렇게 러다이트 운동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사람들에 비해, 그 운동의 앞과 뒤를 전하는 사람들은 훨씬 적습니다. 러다이트 운동은 실업과 임금 삭감에 항의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이었고, 많은 비합법 노동조합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신기술 앞에서 삶이 한순간 나락으로 향하는 경험을 한 노동자들은, 기계 파괴 운동을 맨체스터의 대중 시위로 이어갔고(젠트리 민병대의 공격을 받은 1819년 ‘피털루’ 시위), 이후 대규모 파업, 1830~1832년 투쟁, 1834년 이후의 구빈원(빈민을 강제 수용하는 시설) 공격, 노동자 거주지를 통제하는 경찰 부대에 맞선 투쟁들로 전진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이 하나로 만난 것이 차티스트 운동이었습니다. 노동자들도 선거에 한 표를 행사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겠다고 한 그 운동, 훗날 자유민주주의의 기초 원칙을 영국에서 세우게 한 그 투쟁말입니다.

결국, “가만히 있으라”

사실 노동자들은 국가와 시대를 불문하고 요즘 러다이트 운동에 가해지는 훈계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수없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시대의 흐름은 어쩔 수 없다, 대안 없는 반대보다 적응이 중요하다, 사회 전체를 생각해라 … 이 말들이 의미하는 바는 언제나 하나였습니다. 반항하지 말고, 삶이 피폐해지고 위기로 내몰리는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들에게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복종하고, 나라와 회사가 어려울 때 해고를 수용하고, 임금 정체와 삭감, 비정규직 양산, 물가인상과 복지후퇴, 장시간 노동을 현실로 감내하라고 할 때마다 이런 말들을 해왔습니다. 이제 주제가 AI와 로봇이 일자리를 뺏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모든 노동자들이 이런 말을 믿고 순순히 ‘적응’에 주력했다면, 아마 모든 노동자들의 정치경제적 상황은 더 빠르게 더 심하게 악화했을 것입니다. 

19세기 러다이트 운동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 현대차 노동자들도 그렇지만, 사실 노동자들은 신기술을 거부하는 것 그 자체가 관심사가 아닙니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누려오던 삶의 기반을 지키기를 원했을 뿐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AI 기술 그 자체에 극렬한 반감이 있거나, 사회 전체가 그 기술을 거부해야 한다고 믿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될까요. 오히려 제미나이와 챗지피티, 핸드폰과 가전에 탑재되는 AI 기능을 신기해하고, 심지어 (가치판단을 떠나) AI 관련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숱합니다. 문제는 AI가 사람 노동의 고됨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할 기회를 빼앗아 삶을 고되게 만들 때 발생합니다. AI가 문제가 아니라 AI의 사회적인 쓰임 방식이 쟁점인 것입니다.

미국 기업 “아마존”은 지난해 10월 “AI라는 혁신적 기술이 기업들의 혁신을 돕고 있다”며 이미 1만 4천 명을 해고했고, 앞으로 3만 명 인원 감축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MIT 연구에 따르면, 현재 수준의 AI가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직무 분야는 기술직, 화이트칼라를 중심으로 약 15%에 이릅니다. 당장 한 번에 특정 분야의 일자리가 대거 사라지지는 않아도, 저숙련 청년 노동자들이 받는 영향은 확실히 큽니다.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은 신입 대졸자 채용을 25%가량 줄였고, 한국에서도 회계법인들이 신규 회계사들을 고용하는 대신 AI를 보조 업무 담당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블루칼라 노동자들 역시 이번 현대차 로봇 도입 논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AI가 일자리에 미칠 영향을 점점 더 크게 체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중국 샤오미 일부 공장에서는 사람 없이 로봇만으로 운영되는 ‘다크 팩토리’에서 초당 한 대의 스마트폰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불안감은 실질적이고, 앞으로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대화를 지배하는 건 힘이다

물론, AI와 로봇이 인간 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하는 것이 1~2년 사이 가능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당장 현대차의 경우만 해도, 순수한 기술적인 역량과 도입 계획 등에서 아직 불투명한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로봇이 단순한 부품 정리 업무 정도가 아니라 조립 업무 등에 투입되려면 AI가 중숙련 이상 노동자의 숙련노동을 데이터화해 학습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려 할 것이고, ‘AI강국’을 꿈꾸는 정부도 이를 뒷받침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향후 입을 피해를 최소화할 사회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사용자와 함께 ‘대화’에 나서라는 주문도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대화는 힘의 규칙에 의해 지배됩니다. 노동자들이 얼마나 절실하게 AI에 대한 위협감을 느끼는지, 지금 AI로 인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얼마나 해소하고 싶어하는지, AI로 인한 해고와 임금 삭감에 얼마나 단호하게 맞서 싸울 의지가 있는지 보여주지 않는 한, “시대의 흐름”을 앞세운 정부와 기업 앞에서 노동자들은 끌려다니게 될 것입니다. 자영업자 10명 중 7명이 월 100만 원 미만을 버는 시대, 자영업자의 절반이 3년도 못 버티는 시대에, 과연 노동자들이 AI 일자리 위협의 대안으로 “창업”을 말하는 정부와 일자리와 근로조건을 지키기 위한 어떤 합리적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지금 노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성명이 보여준 것과 같은 단호함입니다. 어떤 사업장에서든 AI로 인해 삶을 위협받는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고, 다른 노동자들이 그에 연대하며 함께 싸운다면, AI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의 지형 자체가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평범한 사람의 삶을 위해 AI를 활용할 방법이 무엇인지 이야기해야 합니다. 무분별한 AI 개발과 투자가 낳고 있는 환경 파괴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21세기 러다이트 운동은 정당할 뿐 아니라 반드시 필요합니다.[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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