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한 걸음 전진? 노조법 2·3조 개정, 좌파적 관점으로 다시보기

[편집자 주] 이 글은 2025. 8. 12. 진행한 <이달의 포럼> “노조법 2·3조 개정, 좌파적 관점으로 다시보기“에서 발제 및 토론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 노란봉투법, 무슨 내용이야?

쉽게 말하면 ① ‘진짜 사장’에 교섭의무 부과, ② 파업 참여자를 향한 사용자의 무리한 손해배상청구 방지를 위해 기존 노조법을 수정하자는 내용입니다.

2022년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의 하청노조인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파업투쟁에서 노란봉투법 논의가 본격화됐어요. 이는 하청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인 원청 사용자에게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시작된 투쟁이었습니다. 이제 법이 통과됐으니, 목표로 했던 ‘원하청 직접 교섭’과 ‘손해배상 위협없는 파업’이 진짜로 가능해진 걸까요?

2. 뭐가 문제야?

원안에 비해 핵심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조항들이 대폭 후퇴했어요. 예컨대, 원래 우리의 개정 요구안에는 ‘사내’ 하청업체에 대해서는 원청 사용자가 교섭에 반드시 응해야만 하고, 조합원 개인에게는 아예 손해배상 청구를 못 하게 하는 등의 선명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통과된 노조법은 위와 같은 조항들이 대부분 빠진 반면, 핵심이었던 원청 사용자성에 대해서는 기존에 대법원에서 제시한 까다로운 판단기준을 그대로 복붙해 법조문에 넣은 수준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파업 노동자들의 오랜 염원을 담은 개정 운동이었지만, 법 개정 자체를 위한 조합원 대중의 강한 집회시위와 파업 등은 아쉽게도 조직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민주당 국회의원들과의 협상하는 과정에서 자본에게 불리할 것이 명백한 내용들이 삭제되는 후퇴와 타협이 계속 이루어졌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도 변화가 생기는 거 아냐?

일단 이 법 자체로 획기적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법 조항에 (판례로만 존재했던) ‘사용자 범위 확대’ 개념을 담았다는 점에서 투쟁하려는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에 직교섭을 더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고, 논쟁과 요구의 영역이 확대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 법을 근거 삼아 원청이 진짜 사장이라는 것을 법원과 노동위원회에서 ‘입증’해야 하는 건 여전히 노동자라는 것입니다. 노란봉투법이 생기기 전에도 원청의 사용자성을 겨우 겨우, 어렵게 인정받았던 극소수 사례들이 존재하기는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개정안에는 그 인정 사례들의 판단 문구가 그대로 들어간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법이 통과됐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동일한 기준으로 법적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즉, 노란봉투법의 제정만으로 판사들이 갑자기 관대하게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해 줄 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법원은 노조가 요구한 의제별로 나눠서 원청의 교섭의무를 판단해 왔습니다. 그런데 가장 핵심적인 노동조건, ‘임금’에 대해서는 노란봉투법으로도 여전히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받기 난망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이 사실상 원청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모두가 상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더라도, 법원의 엄격한 잣대로 들여다보면 이러한 원청의 지배를 객관적으로 입증한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률이라는 것은 ‘해석’을 수반하며, 그 해석을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법적 판단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법이 엄밀하고 과학적인 결과를 보장한다는 상식과 달리 실제 법의 적용은 고정되지 않고, 노동운동과 자본 사이 힘의 세력관계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힘이 강하지 않다면, 아무리 급진적인 법이 제정되더라도 그 해석은 얼마든지 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뒤틀릴 수 있어요.

그래서 이 법을 활용해 진지한 투쟁 건설을 하기보다는, 소송을 통한 법적 판단만 기다린다면 매우 긴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결과 또한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진짜 싸워야 할 현장의 조합원들은 법적 절차를 대리해주는 상층 간부나 법률가들에게만 의존하게 될 위험도 큽니다. 이렇게 법과 제도에 의존하는 흐름이 강해진다면 정작 투쟁을 이어갈 당사자들의 에너지는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그 사이 자본은 노동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자원과 시간을 가지고 어떻게든 법의 구멍을 찾아내 또 다른 착취 방법을 고안해 낼 것도 우리는 압니다.

그래서 하청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쟁취하려면 법 제정에 그치지 않고 이를 활용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조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4. 그럼, 입법과 제도보다 투쟁만 중요하다는 거야? 

입법과 투쟁은 서로 대립하거나, 명확히 분리되지는 않습니다. 부당한 노동환경에 분노해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다보면, 그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입법적 요구가 자연스레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또, 사람들의 정서와 필요를 잘 대변하는 입법안이 있다면, 이는 투쟁의 요구안으로서 우리를 행동에 나서게 하는 좋은 촉진제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쟁점은 현 체제에서 사람들이 열망하는 입법을 쟁취하고자 할 때, 어떤 방법으로 입법을 관철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두 가지 길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법안을 통과시킬 입법자들과의 원만한 관계 형성을 통해 대화에 몰두하는 제도적 방식, 반대로 입법자들을 강하게 압박하는 제도 밖 투쟁 방식. 각각의 길에서는 무슨 그림이 펼쳐질까요?

제도적 방식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일단 정치인들과 우호적 대화를 이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본의 입맛을 대변하므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대폭 수용할 이해관계가 전혀 없지요. 우리의 요구는 입법 과정에서 자본가의 이익을 너무 위협하지 않도록 ‘어쩔 수 없이’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절충, 후퇴하기 쉽습니다. 이렇게 타협을 거치며 당초 우리가 원했던 핵심 요구사항은 온데간데없고, 자본이 허락한 내용만 남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는 진정한 개혁을 원했던 사람들은 실망해 운동에서 이탈하고 사기는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겠지요.

또, 운동이 입법을 위해 제도적 대화와 협상에만 익숙해지면 투쟁의 근육은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법을 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거나 개악하려 할 때와 같이 진짜 맞서 싸워야 할 때조차 제대로 싸우기 어려워집니다.

노동자의 요구를 온전히 실현하고, 운동의 규모와 사기를 보존하며, 법의 왜곡된 해석과 개악을 막아내려면 강력한 투쟁이 있어야만 합니다. 제도권 정치와의 타협을 통해 운동의 요구를 방어적으로 ‘정리’하지 않고, 정치인들이 노동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도록 강하게 체제의 일상을 뒤흔드는 투쟁을 전개해 ‘승리’의 그림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 금속노조 한화오션 조선하청지회 김형수 지회장은 고공농성 해제하는 순간에도 노조법 개정을 주장했다.

5.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노란봉투법을 노동운동의 진정한 성과로 만들려면 제도적 절차 완비나 법의 해석을 기다리기만 하지 않고, 먼저 행동에 돌입할 필요가 있어요. 일단 많은 하청 노동조합이 진짜 사장에게 직접 교섭을 당당히 요구해야 합니다. 원청 사용자가 교섭을 거부한다면 법원이나 노동위원회에 찾아가기보다,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투쟁, 특히 파업에 돌입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원청을 교섭 자리에 앉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건을 쟁취하는 것이므로 결국 강하게 투쟁해야만 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더 넓고 든든한 단결과 연대일 것입니다. 권력자들은 노동자들이 열망하는 사회를 원하지 않는 만큼 치밀하고 비정합니다. 그러니, 입법과 제도라는 환상에 빠져 노동자들이 진짜 무기를 잃는다면 언제든 뒤로, 뒤로 밀려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VF]

VERY FRONT 베리프론트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