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가 시민들의 복장을 터뜨리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의 최후변론(2월 25일) 이후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 늦장을 부리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 탄핵 심판을 최우선으로 처리한다는 기존 방침을 엎으면서 검사·감사원장 탄핵 건을 우선 기각(3월 14일)시키더니, 점입가경으로 ‘내란 가담자’ 한덕수의 탄핵 건까지 기각(3월 24일)시켰다. 그 결과, 윤석열 탄핵 역시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이처럼 헌법재판소가 내란수괴의 탄핵이라는 정당한 요구에 머뭇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의적 지연과 의견 불일치의 콜라보
탄핵 인용 시 추후 제기될 시비를 막기 위해 신중한 법리 검토 중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핑계다. 비상계엄 시도는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었고,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관계만으로도 이미 탄핵 사유는 성립되었다. 평범한 시민들도 아는 명백한 사실을 일생 법을 끼고 산 엘리트들이 모를까? 재판관들의 탄핵 선고 지연은 (그들 각자의 개별 입장이 무엇인지를 떠나) 다분히 의도적일 가능성이 높다. 인용이든, 기각이든 판결에 대해 극렬한 불복 투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헌법재판소는 최대한 선고 시점을 지연함으로써 유예된 시간만큼 향후 불복 투쟁의 에너지가 약해지기를 기대한다. 만약 판결에 불복하는 투쟁이 거세진다면 헌법재판소의 권위는 바닥을 치고, 비난과 공격이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이재명의 선거법 위반 2심 판결 결과(3월 26일)에 따라 유죄 판결 시 그의 대선 출마 가능성이 불투명해질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헌법재판소가 최소한 그 시점 이후로 선고 일정을 ‘관리’하려고 했던 의도가 명백하다.
나아가, 실제로 재판관 사이에 의견 합치가 되지 않아 판결이 지연되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재판관 8명 중 단 3명만이라도 ‘이게 탄핵까지 할 일인지 확신이 없다’라고 버틴다면, 6명이 필요한 탄핵 인용 선고는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여의도에서 2백만 명이 모여 탄핵을 외치던 시점에는 가장 보수적인 재판관들도 탄핵 인용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이 관저에서 버티고 국민의 힘과 극우가 세력을 늘리면서, 재판관 일부는 그들에게 마음속으로 동조하거나 자기 본색을 드러낼 용기를 얻었을 수 있다.
헌재 선고에 대한 지나친 낙관
헌법재판소가 ‘당연히’ 탄핵을 인용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지나친 낙관이었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시민들과 함께 갈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헌법재판소의 판결 경향을 보면, 그들은 이라크 파병 합헌·국가보안법 합헌(8차례)·군형법 제92조의6 합헌·고용허가제 합헌 등 여러 의제에서 사회 진보로 가는 걸음을 막는 방파제로서 보수적 판단을 담당해 왔다. 설사 낙태죄 헌법불합치와 같은 선택을 하더라도, 오랫동안 이를 요구해 온 여성들의 투쟁보다는 백 발짝쯤 뒤처진 ‘유예’된 판결이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에 보조를 맞추기보다, 그 열망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져야만 마지못해 이를 제한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사회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해 온 것이다. 더구나 헌법재판소는 권력 기구가 재판관을 임명하고 있다(대통령 3명, 국회에서 여야가 선출한 3명, 대법원장 3명). 헌법재판소가 전통적인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민의와 동떨어져 직접 선출되지 않기 때문에 눈치를 덜 보면서 시민들의 정당한 요구까지 적절한 수위에서 관리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본질적 한계는 이번 탄핵 판결에 있어서 더더욱 두드러진다. 탄핵이 쉽게 인용되고 종이호랑이가 된 윤석열이 감옥에 간다면, 박근혜 탄핵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의힘은 최소한 몇 년간 정치적 파산에 이를 것이다. 제도 정치권에서는 자연스럽게 민주당이 견제받지 않고 독주하는 체제가 이어지고, 거리와 작업장에서는 탄핵을 끌어낸 시민과 노동자들이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텐데, 기득권자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헌법재판소가 이를 원할 리 없다. 그래서 이들은 내란세력을 처단(탄핵 및 처벌)하지 않거나, 처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더라도 이것이 시민들의 투쟁 성과로 규정되지 않도록 천천히, 낮은 수위에서 진행하고자 한다. 속 시원한 탄핵 인용으로 인해 시민들의 자신감이 올라갈 상황을 최대한 방지하고 싶은 것이다.
힘 있는 자의 편에 서서 상황을 관리하려는 것은 헌법재판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윤석열 탄핵 및 처벌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반복해서 목격한 것은 내란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국가 기구의 거대한 연합이다. 검찰은 주요한 내란 가담자들을 불구속하여 증거를 인멸하도록 도와주었으며, 일부 인물은 불기소 처분하였다. 법원은 대통령 경호처가 공수처의 관저 압수수색에 저항하도록 허용했고, 심지어 윤석열을 자유롭게 풀어줬다. 이에 호응하듯 검찰은 즉시항고를 포기했다. 경찰은 최근 인사개편에서 내란 가담자들을 대거 승진시키기까지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윤석열의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결의를 하고, 국민권익위원회는 계엄을 비판한 직원에 대해 중징계를 요구하고 나섰다. 국가 기구들은 시민들의 강력한 압박 없이는 시민들의 정당한 주장을 수용할 의사가 전혀 없다.
박근혜 탄핵 정국과의 차이점
그렇다면, 왜 박근혜 탄핵 때는 같은 헌법재판소인데 신속하게 인용한 것일까?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탄핵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기세는 더욱 강했고, 탄핵을 반대하는 극우세력이 좀처럼 힘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근혜를 날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광장을 지배하는 국면에서 만약 탄핵이 기각된다면 이에 거세게 저항할 대중운동이 들불처럼 퍼져나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이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여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지배자들의 선택은 바로 신속한 만장일치 인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떨까? 시민의 힘으로 계엄을 해제하고 수많은 사람이 국회 앞에 모여 탄핵안을 가결시켰지만, 올해 들어서는 헌법재판소가 당연히 상식적인 판단을 할 것이라는 ‘탄핵 낙관론’이 득세하기 시작했고, 집회 규모가 줄어들었다. 박근혜 탄핵 당시에는 탄핵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압도적이었고, 머뭇거리던 민주당이 그 힘에 떠밀려 탄핵안을 통과시켰으나, 이번에는 과거의 긍정 경험(상대의 궤멸과 우리의 독주)에 기반한 민주당이 앞장서서 탄핵을 주도했고, 사실상 대선이 시작된 듯한 낙관적인 분위기에 수렴하는 선에서 운동의 수위가 조절되었다.
심지어 이재명은 탄핵이 불확실한 마당에 이미 대통령이 된 것처럼 ‘우클릭’ 행보를 보이며 기득권에 러브콜을 보냈다. 민주당은 방심 속에서 초읽기에 들어간 집권을 준비하고자 힘 있는 자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로 했다. 탄핵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너무 과격해지지 않게 관리하려 한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 역시 새로운 사회로 향하는 대개혁을 주장하지만, 정작 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도록 운동의 방향을 조직하고 기획하는 데에는 힘을 쓰지 못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미 ‘떼놓은 당상’이라는 탄핵만을 요구하기 위한 집회는 활력을 잃고,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반대급부로 극우는 결집했고, 국민의힘과 손을 잡고 주류화되었으며, 기세등등해졌다. 그 결과로, 헌법재판소는 극우 세력의 압력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여전히 필요한 시민의 힘과 파업
내란세력의 처분을 국가 기구에 맡기고 기다리는 것은 자기의 목을 스스로 치라며 칼자루를 고스란히 넘겨주는 행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국가 기구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관리자로서 기능하지 않고,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헌법재판소가, 법원이, 검찰이, 경찰이 최소한의 양심과 선의를 우리와 공유하고 있다는 허울뿐인 환상을 전제로 우리의 행동을 자제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내란세력의 일소는 불가능할 것이다. 윤석열과 내란세력의 처벌은 국가 기구가 아닌 시민들의 힘으로만 관철할 수 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상식적이고 공정한 판결을 하리라는 순진한 믿음은 버리고 신속한 재판 진행과 선고를 하도록 더욱 강하게 압박하는 것, 이를 위해 더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올 수 있게 질적으로 다른 투쟁의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민주노총이 주도한 어제(3월 27일)의 총파업은 늦은 감이 있으나 분명 필요한 방향이었다. 이제 상대의 기세를 완전히 누르기 위해서는 하루 단발성 총파업이 아닌, 지속적인 압박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제라도, 탄핵 찬성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압력이 더욱더 커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헌법재판소는 그들의 선택으로 인해 국민의힘이 궤멸하거나, 시민들의 사기가 올라 급격한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상황만은 방어하고자 탄핵선고의 내용, 시점을 끊임없이 저울질할 것이다. 또한, 설사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극우세력을 압도하지 못하는 구도에서 이뤄진다면 헌법재판소는 얼마든지 윤석열과 국민의힘에게 살아날 구멍을 만들어주며 판결할 수 있다. 따라서 최후의 최후까지 우리가 광장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