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의 여성주의가 곧 ‘랟펨’인가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일련의 여성운동을 거치며 페미니즘은 ‘20대 여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2010년대 여러 사회적 사건들을 경험한 20대 여성 당사자로서, 이 글에서 나는 시사주간지 <시사IN>이 20대 여성을 페미니즘이라는 렌즈를 통해 분석한 책 “20대 여자”를 주로 참고하여 오늘날 새로운 페미니스트 세대의 정서와 문제의식, 정치적 성향 등을 정리해보려 한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여성운동

페미니즘이 활동가들 사이의 언어를 넘어서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중반부터였다. 2015년 초 김모씨가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테러조직 IS에 합류한 사건이 화제가 됐다. 그런데 한 남성 칼럼니스트가 패션지에 이에 동조하며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는 칼럼을 게재했다. 여성들은 분노했고, SNS상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이 현상을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명명했다 .

이후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집회, 2018년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일명 ‘혜화역 시위’), 낙태죄 폐지 집회, 미투 운동, 2019년 버닝썬 사건으로부터 촉발된 혜화역 남성 약물 카르텔 규탄 시위, 2020년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2024년 딥페이크 성착취 엄벌 촉구 시위까지 큼직한 운동들이 벌어졌다.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과 발맞추며 또는 오프라인을 선도하며 여러 중요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청원과 해시태그 운동이 대표적이다. 2015년 여성에 대한 범죄를 낭만화한 맥심 코리아 판매 중단 청원과 소라넷 폐지 청원운동, 2017년 낙태죄 폐지 청원 등이 있었다. 또, 해시태그 운동으로는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등장한  ‘#살아남았다’, 미투 운동에 앞서 벌어진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 정부의 가임기 여성지도를 비판하며 등장한 ‘#나는_가임여성이다’, 온라인상에서의 성폭력 폭로를 이끈 ‘#MeToo’ ‘#WithYou’ 등이 줄을 이었다.

20대 여성 페미니스트

이와 같은 사건들을 거치며 20대 여성 41.7%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게 됐다. 전체 집단(20~60대 남녀) 평균인 20.8%의 두 배 가량이다. 30대 여자가 19.4%, 40대 여자가 27.7%라고 응답한 것과 비교하면 여성들 중에서도 특히 높다. 20대 여성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감정온도1도 가장 높은 집단이며, 페미니스트를 자신의 이웃, 직장 동료, 절친한 친구,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냐는 질문에도 가장 우호적으로 답한 집단이다.

20대 여성의 60%는 여러 사건 중에서도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처벌과 미투 운동으로 인해  ‘페미니즘과 성평등 의식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답했는데, 두 이슈 모두 여성의 안전과 관련된 이슈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들은 지난 몇 년 간 여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사회 집단보다 열의 있게 광장으로 뛰어나왔고, 그 경험 속에서 자신의 정치의식을 발전시켰다.

차별에 가장 분명하게 반대하는 집단

이렇게 페미니즘으로 급진화한 20대 여성들은 사회문화적 이슈에 대해 다른 어느 집단보다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다. 성장보다 복지가, 경제성장보다 환경보호가 우선이라 답했고, 차별금지법과 동성혼 법제화에 찬성했다. 대다수가 가난의 책임이 개인보다 사회구조에 있다고 봤고(20대 여성 90.6%, 20대 남성 62.4%), 비정규직 차별은 비정규직의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사회와 기업이 비정규직을 차별하기 때문이라고 봤다(20대 여성 91%, 20대 남성 66%). 다만 대북 정책이나 시장 규제에 대한 입장은 그렇지 않았는데, 대북 제재와 지원을 비슷하게 지지하고,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 강화보다는 완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즉, 20대 여성들이 특히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면은 사회적 소수자나 다양성, 차별(또는 평등)과 관련된 부분이다.

지지하는 정치세력과 관련된 질문에 대한 답변도 이를 반영한다. ‘법과 사회질서 확립 우선’, ‘정부 개입 최소화 우선’, ‘경제적 재분배 우선’, ‘차별 금지와 다양성 우선’ 등 가치를 각기 지향하는 정치세력 중 선호 1순위를 골라달라는 질문에, 20대 여성은 차별을 금지하고 다양성을 우선시하는 정치세력을 골랐다. 다른 모든 집단이 법과 사회질서 확립을 우선시하는 정치세력을 고른 것과 확연히 차이가 있다.

개인적인 차원의 정치 참여에 있어서도 독보적이다. “최근 1년간 온라인 및 SNS에서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한 연대 활동(청원 등)을 3번 이상 했다”는 20대 여성은 14.5%로, 전체 평균인 6.3%의 두 배 이상이었다. 최근 1년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3번 이상 지불한 경우도 17.3%로, 전체 평균 10.4%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다.

20대 여성 다수는 ‘랟펨’이다?

그러나 앞서 대북정책이나 시장 규제에 대한 입장에서 얼핏 드러났듯이, 이들의 정치적 성향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대 등 주류 사회 질서 전반에 대한 강한 급진성을 보여준다고까지 하기는 어렵다. 여성운동 외에 지난 몇 년 동안 다른 강력한 대중적 사회운동이나 급진화 물결이 발생하지 않은 탓에, 이러한 문제의식까지 적극적으로 공유될 계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20대 여성 일부가 차별과 소수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전통적 페미니즘과 결을 달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듯하다.

실제로 2018년 예멘 난민 입국 반대, 2020년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성 입학 반대 등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기존 여성운동 활동가 일부는 새로운 세대의 페미니스트들 가운데 ‘생물학적 여성’이 아닌 사회적 소수자는 배제하는 ‘랟펨(래디컬 페미니스트)’가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과연 20대 여성들 중에는 ‘랟펨’이 얼마나 많을까.

우선 20대 여성의 50.8%는 “페미니즘이 다양한 소수자와 더 폭넓게 연대해야 한다”고 봤다. 30대 여자는 53.3%, 40대 여자는 55.6%가 이에 동의했다. 20대 여성이 다른 세대 여성들에 비해 다소 낮기는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와 관련해 20대 여성들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사회적 소수자로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문제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구의역 김 군 사망 사건,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설리·구하라 자살 사건, 변희수 하사 자살 사건 중 어느 것이 자신의 일처럼 느껴지냐는 질문에, 20대 여성들은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과 설리·구하라 자살 사건이 가장 자신의 일처럼 느껴진다고 응답했다. ‘생물학적 여성’들의 사건에 가장 감정이입한 것이다.2 

그러나 20대 여성들 다수의 ‘소수자’ 개념이 ‘생물학적 여성’에만 한정된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논란이 됐던 난민과 관련한 20대 여성들의 입장도 평면적이지 않다. 난민에 대해서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가 49%로 전체 집단의 응답 평균인 43.1%보다 조금 더 높았지만, 관계 수용도에 대한 질문에서는 전체 평균보다 높은 수준에서 난민(30.9%),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53.7%)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도 난민 12.3%,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는 27.3%로 전체 평균보다 높았다.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 남성 난민이나 외국인의 존재가 여성들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차별적 공포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입장이 압도 다수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더 중요하게 볼 것은 “페미니즘은 MTF 트랜스젠더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진술에 대한 반응이다. MTF 트랜스젠더를 배제해도 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29.2%로, 전체 집단 중 두 번째로 높다(다른 세대 여성들은 물론이고, 20~50대 남성들보다도 높다). 그럼에도  20대 여성 중 MTF 트랜스젠더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응답한 비율(37.7%)이 배제해도 된다는 응답보다 여전히 높았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또한 전체 집단 중 가장 낮은 답변 비율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20대 여성 내부에서 ‘랟펨’이 대다수는 아니라는 중요한 증거다. 또, 20대 여성의 트랜스젠더에 대한 감정온도는 33.3도로 호의적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전체 응답자 평균의 온도인 26.3도나 20대 남성의 27.9도보다는 더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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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은 MTF 트랜스젠더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에 대한 반응


▲ 주요 사회집단에 대한 감정온도 조사 결과

즉, 20대 여성 가운데 ‘랟펨’의 존재와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지만, 그 둘을 동일시하는 것은 섣불러 보인다. 사실 이러한 거친 요약은 온라인에서 ‘진정한 페미니즘’과 아닌 것으로 여성들을 갈라치기 하려는 혐오세력들로부터 종종 제기되는 프레임이기도 하다. ‘20대 여성 페미니스트는 곧 랟펨’이라는 편견을 노동운동-사회운동 활동가들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페미니즘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진보적 의식을 갖기 시작한 20대 여성들 중 상당수(MTF 배제에 동의하지 않는 37,7%, 아직 입장을 못 정하겠다고 한 33.2%)와 연대하고 토론해 나갈 기회를 잃게 될 위험성이 있다.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하기

나아가 20대 여성들 사이에서 ‘랟펨’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면, 그 이유와 맥락 또한 구체적으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페미니즘 세대는 미투 운동, 디지털 성폭력 등 남성에 의한 성폭력 사건들을 주로 경험해오며 여성의 안전 이슈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고, 페미니즘 리부트에 대한 백래시로 남성 연대자들의 존재를 거의 경험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 해왔다. 이들 가운데 ‘생물학적 여성’이 아닌 사람들을 배제하는 흐름이 있는 것은 여성의 안전이 위협 받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20대 여성의 감정온도 조사 결과를 보면, 게이(38.0)와 트랜스젠더(33.3), 남성(38.7)에 대한 감정온도가 비슷한 수준으로 낮다(레즈비언에 대한 감정온도는 50.5다). 이들을 하나의 ‘생물학적 남성’으로 분류해 자신들의 안전에 대한 잠재적 위협 집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의 소수자 배제 주장에 동의를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정서의 바탕을 이해하고, 여성들의 안전 문제 관련 요구와 운동에 적극 지지를 표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또, 여성이 안전할 권리와 ‘생물학적 여성’이 아닌 소수자의 권리가 대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성들의 공포심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식으로 주장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활동가들은 여성과 다양한 소수자들 및 기존 운동 사이의 연대를 여성 안전을 위한 투쟁을 비롯한 여러 운동 안에서 구현하려 애써야 한다. 운동 참여자들이 이러한 연대가 필요하고 의미 있다는 것을 투쟁 속에서 경험하고 같이 고민할 수 있는 무대를 쌓아 나가는 것이다.

또한 앞서 MTF 트랜스젠더에 대한 입장에서 볼 수 있듯이, 20대 여성의 페미니즘 안에도 여러 흐름이 있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위협감 속에서, 신자유주의 경쟁 질서 안에서 ‘생물학적 여성’들로서 똘똘 뭉쳐보자는 움직임과, 여성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해 사회를 더 급진적으로 바꿔보자는 경향이 동시에 있다. 이런 경향은 한 사람 안에서도 모순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

한편 20대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정치적 대안을 추구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 예컨대 딥페이크 시위에서 이들은 정치인, 사법부, 수사기관, 언론, 행정부 등을 모두 규탄했지만, 혜화역 시위나 선거에서는 민주당에 기대를 갖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한 모습을 이 운동의 한계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책의 조사에 따르면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경우 오히려 일종의 차악론으로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발견됐지만, 그보다 정체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경우에는 오히려 민주당과도 거리를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즉, 민주당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본 이들도 상당수라는 것인데, 이런 20대 페미니스트들의 정치적 대안은 여러 투쟁과 실천을 거치며 계속 급진화될 수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더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바라는 우리는, 가능한 많은 새로운 페미니스트들과 여성 운동의 동지로서 함께 싸우면서 그 안에서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나마 나은 것으로 보이는’ 정치인(민주당)에 대한 의존성이나 ‘생물학적 여성’의 단결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더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신자유주의 경쟁의 장에서 낙오한 남성들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지금의 페미니즘 운동을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 여성과 모든 사람들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 운동과 결합시키려 해야 한다. 최근 20대 여성들이 ‘남태령 대첩’에서 더 다양한 운동과 함께 만났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활동은 외부의 비판자로서가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에 함께하는 내부자로서 운동을 더 급진적으로 힘 있게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VF]


(주)
1.  다양한 사회집단이나 개인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측정, 0은 ‘매우 부정적’, 100은 ‘매우 긍정적’.
2. 다만 20대 남성들도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과 구의역 김 군 사망 사건에 가장 감정이입했다는 점에서, 그저 각각 자신의 지정성별과 동일한 이의 경험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했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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