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가 실업과 나쁜 일자리 낳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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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말] 서울시의 필리핀 가사 관리사 고용 시범 사업이 이주노동자 문제에서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건설업과 조선업, 중소 규모 제조업, 그리고 농업에까지 이미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일손을 빌리는 곳이 숱하지만, 정치인과 사용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안전에 항상 뒷전이다. 노동운동에서는 이를 올바르게 비판하면서도, 한 편으로 국내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근로조건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이주노동자 숫자를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진영이 필리핀 가사 관리사 고용 시범 사업을 폐지를 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이주노동자 증가에 대한 흔한 편견이 진실과 거리가 있음을 살펴본다.

얼마 전부터 필리핀 가사 관리사 고용 시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필리핀 여성 노동자 100명이 국내 가정에 출근하기 시작했는데, 벌써 1달도 안 되어 수당 미지급에 임금 체불 논란까지 터져나오고 있다. 서울시가 약속한 임금은 월 106만원이지만 숙소비 등 이것 저것을 제하고 난 실수령액은 겨우 50만 원 정도 였고, 그나마도 8월부터 두 주 동안 거친 ‘교육기간’은 무임금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결국 2명의 노동자가 생활근거지에서 이탈했다. 사업이 종료 예정된 내년 2월 말까지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터져나올지 우려스럽다.

이주노동자를 싼 값에 부릴 하인 취급하는 우익 정치인들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운동 세력과 시민사회운동 세력이 시범사업이 실시되기 이전부터 비판해왔듯이, 서울시의 이번 시범사업은 추진 동기와 목표부터 숱한 문제가 있었다. 당장 이 시범사업의 책임자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비록 이번 사업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외국인 가사관리 노동자에게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어차피 “후진국”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 미만 임금도 본국 기준 고임금이고, 이들을 고용할 한국인 노동자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도 한국의 저출산은 모두 양육비 부담이 높은 탓이라며 같은 입장에 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예 외국인 가사관리 노동자들에 대한 최저임금법 적용 여지 자체를 없애기 위해 정부가 주선해 각 가정이 1:1로 직접 외국인 노동자를 소개해주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여당 정치인들은 이제껏 이주노동자 국내 취업에 대해 계속 그래온 것처럼, 이번에도 이들을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그저 싼 값으로 부릴 편리한 노동력 상품으로 만들 생각 뿐이다. 더구나 이들은 필리핀 가사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을 통해 한국의 낮은 출생율이 드러내는 중요한 사회 문제들도 스리슬쩍 덮어버릴 작정이다. 장시간 노동, 치열한 경쟁, 불안정한 일자리, 여성 노동자들의 경력단절 불이익, 천정부지로 솟은 아파트 값과 고공행진하는 물가에 대한 불만을 그저 ‘싼 가사노동자를 써보세요’라는 시장논리로 떼우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범사업 폐지 요구는 부적절하다

그러나 우익 정치인들의 이런 행보에 반대하는 것과 별개로, 다수의 노동운동-시민사회운동 단체가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의 전면 폐지까지 요구하는 것은 다시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노동운동은 필리핀 가사관리노동자들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인권 침해와 차별 반대, 안전,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해야 한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자유로운 사업장 변경을 불허하는 E9 입국 비자를 변경하도록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 한국의 돌봄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을 위해 싸울 때 좌파가 함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필리핀 가사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하거나 조직화에 나설 때 이를 지지해야 한다. 우익 정치인들의 이주노동자를 앞세운 시장주의적 보육 문제의 해법에 반대해 공공보육 확충을 요구하는 것 또한 필요하고 정당하다.

하지만 이런 각각의 올바른 요구가 “시범사업 폐지”와 등치될 수도 없고, “시범사업 폐지”를 요구해야만 제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주노동자의 완전한 취업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함께 요구하지 않는 한, 시범사업 폐지 요구는 결국 이주노동자들이 가사관리 노동자로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없는 현 상황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주노동자들의 국내 취업 제한 요구가 과연 모든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추구하는 노동운동의 입장으로 적절하다 할 수 있을까?

사업 폐지 요구의 전제 : 이주노동자 유입은 국내 일자리를 나쁘게 만든다?

시범사업 폐지, 즉 이주노동자의 국내 가사-돌봄노동 취업 제한을 주장하는 단체와 개인들 사이에서도 크고 작은 차이가 있지만, 사업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 사업이 “가사-돌봄 노동의 저평가”를 초래한다는 근거를 내세운다. 미숙련 이주노동자의 유입으로 “전문화 역행” 현상이 일어나 결과적으로 “가사돌봄노동을 좋은 일자리로 만들”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에두르는 표현들이지만, 결국 이주노동자들이 싼 값으로 국내 노동 시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가사 돌봄 일자리가 “나쁜 일자리”가 되어 해당 분야의 한국인 노동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취지다. 낮은 임금의 이주노동자들로 인해 가사돌봄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지고, 전체 노동시장의 평균임금도 저하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본질적으로 차별주의다. 정주노동자들의 권익을 내세우든, 이주노동자들 자신의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해 취업이 당분간 유예되어야 한다는 식의 명분을 표방하든, 결국은 이주노동자들의 취업할 권리가 정주노동자들과 똑같이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노동운동에서 이런 이주노동자 차별적이고 배제적인 주장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 예컨대, 일부 조선업계 노동조합은 사용자가 값싼 이주노동자를 대거 고용해 고위험·고강도 작업에 저임금이라는 조선업의 나쁜  일자리”를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주노동자의 “무분별한 확대”는 숙련노동자 형성을 불가능하게 하고 안전사고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언급된다. 더 노골적인 주장은 주로 건설노동자 일부에게서 발견된다. 이들은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정주노동자들의 임금이 떨어지고 일자리도 줄어든다며,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자기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불안감이 확산되자, 이제 오랜 좌파 활동가들마저 영향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지난 총선에서 노동당 이장우 국회의원 후보도 조선업 노동자들이 많은 울산에서 이런 입장을 따라 갔다.

이주노동자 유입이 정주노동자들의 임금 저하 또는 질 낮은 일자리의 확대를 낳나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국내 취업이 증가한다고해서, 곧 정주노동자들의 임금이 저하되거나 나쁜 일자리가 유지-양산된다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법무부 통계월보에 따르면, 2012년 41만 명이던 이주노동자들의 숫자는 2015년 56만 명까지 늘어났다. 그런데 이주노동자 유입으로 가장 논란이 많은 건설업의 경우, 1일 8시간 기준 2012년 일반공사직종 평균임금(일)은 126,684원이었는데 2015년에는 149,959원으로 도리어 올랐다(2023년 대한건설협회  <건설업 임금실태 조사 보고서>). 건설노동자들이 투쟁해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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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간 동안의 실업률(“이주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는다”) 역시 이주노동자의 증가 규모에 비례하는  수준의 증가폭은 보이지 않았다(2012년 3.2%, 2015년 3.6%). 2015년의 실업률의 가장 큰 증가는 청년 실업 증가에 그 원인이 있었는데, 언론은 30대 그룹이 신규 채용을 전년보다 6.3% 줄인 것과 청년실업률 증가 사이에 연관이 있어보인다고 지적했다. 사실 실업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이주노동자 규모보다 경제 상황이다. 한국 사회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았던 때는 1997년 IMF 시기였는데, 당시 이주노동자 숫자는 도리어 과거보다 감소했다. 조선 노동자들 역시 2014년부터 2020년 초까지 계속된 임금 저하를 경험했지만, 이는 이주노동자들의 유입 때문이 아니라 수 년 간 이어진 업계 불황과 이로 인한 구조조정 여파로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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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소는 경제 상황과 투쟁의 성패

이러한 사실은 다른 국제적 사례들, 특히  이민의 나라 미국에서도 비슷하게 확인된다. 1865년부터 1917년까지 미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무려 2,750만 명이나 됐지만, 이 시기 일자리 숫자는 산업화의 급격한 진전으로 오히려 대거 늘어났다. 노벨상 수상자인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카드의 연구에 따르면, 1980년 미국 마이애미에 쿠바 난민이 급격히 유입되어(마리엘 보트 사건) 노동인구가 7퍼센트나 일시에 증가했는데, 이 때에도 일자리나 임금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헤인 데 하스 지음, 김희주 옮김, “이주, 국가를 선택하는 사람들”, 2024, 세종서적).  최근 전미경제학회는 미국의 고용시장에서 이민자가 증가하면 임금엔 상승 압력이 오히려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실업률도 임금 수준도 단순히 노동 시장에 값 싼 경쟁자가 등장했는지 여부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이주노동자가 단기적으로 특정 종류의 일자리에 임금 하방 압력을 형성하고 이것이 그 일에 종사하는 정주노동자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도 있지만, 실제 임금과 일자리의 상태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다. 또, 설령 여러 어려운 객관적 경제 여건 속에서도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과 일자리를 지키고 개선하기 위해 투쟁하여 승리하면, 노동 시장의 상황은 이주노동자 유입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의 승패라는 핵심 변수를 누락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본성 : 나쁜 일자리를 사회적 약자에게 떠넘기기

이주노동자의 유입이 임금과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자본주의가 노동 시장의 분할을 만들어 내고 선진 자본주의 국가가 이주노동자를 끌어다 쓰는 일자리의 종류가 정주노동자들이 이끌리는 일자리와 사실상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주자들이 맡는 일은 정주노동자들 다수가 더 이상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 3D 업무이거나 상대적으로 숙련도가 덜 요구되는 서비스 일자리(청소, 접객, 원예, 세탁, 운송, 배송, 식자재 가공, 농어업, 가사, 보건 등)다. 1960년대 한국의 노동자들도 독일로 건너가 현지 노동자들의 자원이 감소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로 일했다. 1900년대 초 미국 이민을 택한 최초의 세대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주로 일했고, 1970년대 이후 미국 이민을 택한 한국인들은 흔히 세탁소에서 일했다. 재일 조선 동포들, 영국의 인도와 무슬림 국가 출신 노동자들, 프랑스의 알제리 출신 노동자들, 독일의 터키 노동자들, 현재 한국에 들어와있는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이 모두 비슷한 처지에 있어 왔다.

더 힘든 일에 더 싼 값으로 일할 준비가 된 이주노동자의 존재와 이에 대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수요는 자본주의 불균등 발전의 필연적 결과다. 자본주의는 국제적 체제지만, 모든 나라들이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속도와 정도로 발전하지 않는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인들은 때로 사회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이주노동자나 난민들을 비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규모만 문제 삼을 뿐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여 적절히 활용하고 싶어한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사장들 역시 집단적 저항에 나서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을 더 싼 값에 고용해 이윤을 남기려 한다. 안타까운 것은, 자본과 국가의 이러한 부름에 응답할 이주노동자들의 숫자도 엄청나게 많다는 데에 있다. 당장 이번 시범사업에 지원한 필리핀 여성노동자들의 현지 경쟁률만 해도 무려 6:1에 달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발전의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의 취업 기회 확대가 이주노동자에게도 손해?

자본주의 체제를 폐지하고 모든 노동자들이 먼 나라까지 이동하지 않고도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지 못하는 한, 낯선 나라로 건너가 여러 위험과 저임금을 감수하려는 노동자들의 의지를 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앞서 본 한국인 이주노동자들도 그랬다.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의 월급은 70달러였지만, 당시 현지인들이 받던 월급은 2백50달러였다. 독일의 자르(Saar)와 루르(Ruhr) 지역 광부들의 월 평균 수입은 1961년 799마르크였지만, 한국의 독일 진출 광부들은 월 600마르크를 약속 받았을 뿐이다. 월 실적에 따라 400마르크 미만으로까지 수입이 적어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시 이러한 보수는 국내 직장인 월급의 4~5배 정도 금액이었다. 이번에 가사노동자로서 한국에 온 필리핀 여성들도, 대부분 현지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였지만 높은 임금을 받아 현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사업에 참여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무분별한” 이주노동자 고용 확대가 이주노동자들 자신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정작 이주 당사자들에게는 거의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물론 아리셀 참사에서 보았듯이, 자본이 이렇게 더 곤궁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을 불안정한 일자리에 채워 위험한 업무를 싸게 떠넘기려 하는 것은 매우 분노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비정규직으로 취업하지 말라고 설득하거나 그들의 비정규직 취업을 금지함으로써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들이 그러한 일자리라도 자신들에게 필요하다고 여겨 취업한다면, 그들이 그 자리에서 스스로를 위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나쁜 일자리”를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열악한 조건에 일단 동의해 일하게 되더라도, 노동자들은 곧 그 곳에서 투쟁에 나설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과 분석이 바로 좌파 노동운동의 출발점이다. 이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투쟁이 ‘개별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취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일어서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시범사업 반대?

한 편,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필리핀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을 폐지해야한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경력 개발을 원하는 적극적인 선진국 여성과 유급 일자리를 찾던 저개발국의 진취적인 여성이 성평등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진 자매로서가 아니라 사용자와 노동자, 주인과 하녀로 글로벌 돌봄 체인에서 만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돌봄노동을 제3세계 여성들에게 싼 값으로 떠넘겨지면서 돌봄노동이 여성에게 전가되는 현실이 고착되고, 복지국가의 지향은 사라지는 대신 계급 특권만 강화될 수 있다는 취지도 있다.

그러나 돌봄의 ‘시장화’, ‘외주화’가 낳는 문제가 단지 한국인 여성을 가사-돌봄 노동자로 고용한다고 해서 완화될 수 있을까? 지금도 국가는 재생산 노동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고, 돌봄과 가사를 위한 임금노동 시장에는 고용주 여성보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한국인 여성이 구직자로 나서고 있다. 정부의 이주노동자 유입 정책은 이러한 시장주의 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보조 수단일 뿐이다. 우리는 문제의 핵심인 “공공보육 강화”를 요구하며 싸워야지, 정부가 내세우는 곁가지 공격에 집중하다 이주노동자들을 차별하고 그들과 반목하는 상황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또, 국적을 떠나 여성들이 “성평등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진 자매”로서 만나는 최상의 방법은, 바로 정주노동자든 이주노동자든 그들이 투쟁할 때 연대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도 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주노동자의 돌봄 노동 취업 제한 주장에 언뜻 따라오는 돌봄 노동의 ‘전문성’에 대한 언급도 인종차별적 문제제기는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돌봄 노동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기지 말라는 비판은 그 노동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정부를 향한 타당한 비판이 될 수도 있지만, 자칫 돌봄 노동자로 취업을 원하는 이주노동자들을 겨냥하는 뾰족한 칼날이 될 수도 있다. 당장 이번 시범사업의 경우, 필리핀 노동자들은 한국의 간호조무사 자격과 유사한 성격의 케어기버(Care giver) 자격을 따기 위해 관련 교육과 780시간의 현장 수습 활동까지 거친 상태다. 또, 돌봄 노동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돌봄 주체가 돌봄 대상에 대해 진지한 관심과 헌신, 애정을 갖는지 문제에 있음도 짚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이주노동자들의 전문 자격증 보유 여부나 영어 실력, 국적과 인종, 학력 이상으로, 그들이 자신의 일에 충실할 수 있는 양호한 노동 조건을 보장 받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이미 들어온 이주노동자, 들어올 이주노동자와의 단결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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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도 합법이든 불법이든 이주노동자의 규모는 전 세계에서 꾸준히 증가해왔다. 소위 ‘저출산’으로 미래의 노동력 부족이 명백한 미래가 된 한국에서도 앞으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분명하게 확인될 것이다. 이미 농업 분야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의존이 절대적이고, 조선업과 건설업, 기타 제조업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이 보태는 일손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운동 진영이 이주노동자들의 유입에 반대하거나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 적절할까? 노동조합과 여러 이주 단체들이 국내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고 그들을 조직화하려는 훌륭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들 중 상당수가 곧 국내에 들어오게 될 미래의 이주노동자들의 추가 유입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모순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이주노동자 신규 유입에 대해 보수적 태도를 보인다면, 장래 국내에 들어오게 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 신뢰와 일치감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주노동자들이 장차 대중 투쟁에 나설 때 정주노동자들과의 연대를 효과적으로 건설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활동가라면, 현장 노동자들 일부의 불안감을 그저 따라가기보다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를 알리고 그들에 대한 부당한 편견에 맞서자고 제안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노동운동은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가 단결해 함께 공동의 이익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이슈를 발굴해 공동 파업과 투쟁을 조직화하려 애써야 한다. 임금과 노동환경의 후퇴, 산업재해의 발생 등은 이주노동자의 증가 그 자체의 필연적 결과가 결코 아니다. 이주노동자들과 정주노동자들이 함께 단결해 투쟁하면 어떤 문제도 개선해나갈 수 있다. 극우 정치인들이 노골적 차별주의로 세운 장벽이든, 우리 운동의 일부가 “좋은 일자리 만들기”라는 명분으로 내세우는 취업제한이든, 노동자에게 국경은 국경일 뿐이다. 국경이라는 장벽이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을 가로막고 서로를 갈라세운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그 장벽을 약화시키는 요구에서 출발해 투쟁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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