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퀴어 퍼레이드] 우리 자긍심은 체제를 향한 저항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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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라는 이름으로 숨어있던 퀴어들은 축제에 모여 ‘우리’가 된다. 우리가 퀴어문화축제에 모여서 거리를 행진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저항과 도전의 의미를 띠고 있다. 억압받는 소수자들이 수만 명의 군중으로 사회에 힘과 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상황에 따라 축제의 형식과 강조점이 달라져도, 그 본질은 축제를 통해 우리가 한곳에 모이면 수만 명이 될 만큼 힘이 강하고, 일상에서는 용기낼 수 없던 말과 행동을 할 만큼 당당해지는 경험을 하는 것에 있다.

퀴어의 해방은 체제 전복을 향한 도전과 함께 한다. 억압적인 일상(저쪽)과 해방구로서 달콤한 하룻밤의 축제(이쪽). 두 가지 시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축제에서 경험한 정치적 자신감으로 우리의 일상을 바꿔낼 상상력을 가져가는 것이 퀴어문화축제의 진정한 의미다. 우리는 퀴퍼의 상징성(대표), 공간성(서울 시내), 규모(15만 명의 참가)의 장점을 극대화하도록 이 정치적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따라서 퀴어문화축제는 그 자체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더욱 정치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축제의 정치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매년 여러 비판과 우려에도 끊임없이 상업화, 탈정치화의 방향을 “선택”해왔다. 제국주의 국가 대사관들, HIV 감염인의 목숨을 저당잡고 팔아치우는 초국적 제약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어온 것, 행진 차량의 발언으로 참가자를 정치적으로 고무하기보다 케이팝을 트는 활동으로 획일화한 것, 참가자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경험과 분위기를 만들기보다 구획화된 부스와 차량을 축제의 소비자로서 선택하고, 개인적 경험으로 만족하게 만드는 것이 그렇다. 특히 2024년은 팔레스타인 학살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임에도 조직위는 학살 공모자인 미국, 영국, 독일 대사관과 파트너십을 맺어 미국의 핑크워싱에 공조했다. 길리어드의 행진 차량을 또다시 선정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축제를 향한 국가의 차별과 억압이 여전히 공고하고, 자원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이 거대한 규모의 축제를 운영하는 조직위의 헌신과 고충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에 질식되어, 축제를 감시하는 외부자들이 정치적으로 불편하지 않게, 참가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충실하게 적응하는 모범 퀴어로 표백되는, 즉 별생각 없이 적당히 즐기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얼마나 많은 변화의 잠재력을 삭제하고 있는지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더 많은 사람이 오게 하려면 재밌고, 활기차고, 감각적으로 축제를 꾸미는 것은 필요하다. 그래서 대중의 시선을 염두에 두면서 축제의 외형을 기획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축제의 참가자들을 꼭 그 기획의 자본주의적 ‘소비자’ 정도로 수동화시키는 것은 지나친 과소평가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은 클럽에서도 가능하고, 부스에 들려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플리마켓에서도 가능하다. 왜 꼭 퀴어문화축제여야 하는가. 이는 억눌린 소수자들이 서울 시내의 도로 한복판을 점령하고, 전복적 경험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긍심은 축제 참가자들이 모여서 만드는 에너지에서 출발한다. 퀴퍼 취지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외부 기관에 자긍심을 외주화하고, 춤을 추고, 물건을 사는 것만으로는 자긍심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 것이다.

퀴어문화축제는 2000년대 초반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한국 사회에 맞선 집단적인 커밍아웃에서 시작했다. 체제와 불화하는 불순분자들이 모여 경험을 나누고, 존재를 지우지 말라고 저항의 목소리를 외친 것이다. 2024년 우리는 여전히 억압받는 불순분자다. 퀴어문화축제의 시작점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를 억압하는 이 체제와 맞서 싸워야 한다. 우리가 해방되는 데 필요한 요구가 무엇인지, 그 요구가 관철된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함께 상상하고, 토론하고, 권력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저항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저항일수록 힘이 강하다. 우리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행동의 장으로서, 저항의 공간으로서 퀴어문화축제를 함께 만들어가자. [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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