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동과세계
* 이 글은 9월 3호 베프레터(9/18)에 실렸습니다.
민주노총이 지난 7일부터 2주간 전국 지역고용노동청 등 주요 거점에서 동시 농성 중입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3일 노동쟁의 대상(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는 의제)을 축소하는 노조법 시행지침”을 발표한 것이 주된 이유입니다. 민주노총은 위 지침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된 개정 노조법(노란봉투법)은 기업의 합병, 분할, 매각 등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에 대해서도 노동조합이 반대 의사를 표시하며 파업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불과 6개월 만에 대통령이 앞장서서 법을 무시하고 정리해고 등이 구체화된 경우가 아니라면 경영상 결정에 대해서는 파업할 수 없다고 지침을 내버린 것입니다. 이 지침은 최근 주목을 받은 기업이익 연동 경영성과급에 대한 파업도 불법이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아주 노골적입니다. 기업이 돈 좀 벌어보겠다는데 노동자들이 감히 제동 걸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행지침이 나오게 된 배경을 보면 명확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삼성전자 노조가 노동자들의 전보 가능성이 있으니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내년 교섭 주제로 다루겠다고 하자, “이런 식으로 하면 끝이 없다. 일정한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압력을 넣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3대 메가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주식시장을 성장시켜서 기업들로부터 더 확실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와중에 노동자들의 요구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지 우려한 것입니다. 이재명은 삼성전자 노조의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요구에 대해서도 “쟁의 대상이 아닌 쪽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고 공공연하게 밝혔습니다.

지난 4월에 이미 이재명 대통령은 “일부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들만 살겠다고 과도한 요구, 부당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며 파업을 앞두고 있는 삼성전자 노조를 겨냥했습니다. ⓒ KTV 캡처
기업이익과 연동하는 성과급 요구가 이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황당무계한 정책입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매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배분하라고 요구해왔고, 기아자동차 노조도 2020년 영업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요구한 바 있습니다.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가 반도체 호황으로 ‘이렇게나’ 많이 벌기 전까지, 즉 노동자가 요구하는 파이가 ‘이렇게까지’ 커지기 전까지는 성과급 요구를 문제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과에 따라 임금 배분을 할 경우 주주 등 제3자에 영향을 미쳐 문제가 된다는 논리 자체도 황당합니다. 그렇게 보면, 성과와 무관한 기본급 인상도 ‘비용’으로 주주와 기업에 영향을 미칩니다. 기업의 성과는 노동자들의 몫이 아니라는 결론에 맞춰 아무 말이나 갖다 붙인 주장인 것입니다.
시행지침에 맞서 싸우는 것은 노동자들의 투쟁 흐름을 지키는 데 너무나 중요합니다. 성과급 파업의 경우, 지난해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승리가 삼성전자 노동자들을 고무시켰습니다. 그리고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은 다시 현대자동차, 카카오와 카카오뱅크 노동자 등 다른 많은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파업에 나서게 했습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지금도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등을 요구하며 파업 중이고, SK하이닉스의 하청 노동자들도 원청의 성과를 자신들에게도 공정하게 배분하라고 나섰습니다.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내려지는 경영상 결정도 여러 투쟁을 촉발시키고 있습니다. 최근 금융 노동자들은 전보로 이어질 국책은행 지방이전에 반대하며 지난 4일 3만 명이 파업을 벌였습니다. 민주노총이 시행지침에 반대하며 농성에 나선 것은 그래서 지극히 정당합니다. 시행지침 폐기를 위해 더 많은 지지와 연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재 민주노총이 농성과 동시에 정부와의 대화에 나설 준비도 하고 있는 것은 아쉽습니다. 시행지침이 발표되던 날에도 양대노총 위원장과 이재명 대통령은 사회적 대화를 논의하는 차담회를 가졌습니다. 농성 돌입 이후인 지난 9일에도 양대노총은 풀빵, 청년유니온,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등 청년·비정규직 단체들과 함께 고용노동부의 ‘AI 시대 새로운 사회계약을 위한 논의체’에 참여한다고 밝혔습니다. 농성에서 ‘메가특구법 폐기’를 외치면서도,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이미 판을 짜놓은 메가특구법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도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자리든 대화가 의미 있으려면, 우리에게 힘이 있다는 사실을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상대가 시행지침으로 파업을 못하게 우리 손발을 묶으며 싸움을 걸어왔는데, 이 상태에서 계속 대화에 연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과급 파업조차도 못하게 막는 정부와 제대로 된 논의가 가능할까요? 대화 자리에서 ‘이러면 파업하겠다’는 압박조차 자유롭게 넣지 못하는 노동조합을, 과연 정부와 사용자가 얼마나 존중하려 할까요?

오는 10월 7일 민주노총은 사회적 교섭 추진(경사노위 복귀; 합의제 운영, 산별 참여 보장, 명칭 변경 전제) 건으로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했습니다. 사진은 지난 4월 청와대 민주노총 초청간담회에서 대화하는 양경수 위원장과 이재명 대통령. ⓒ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는 노동조합이 대화에 협조한다 한들, 그 대가로 순순히 무언가를 양보하기보다 공격과 기만적 대화를 병행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노동조합이 대화로만 상황을 바꾸려 한다면, 정부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시행지침 폐기 농성을 비롯해 노동조합의 투쟁도 정부에게 전혀 압박감 있게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더 효과적이려면, 더 단호해야 합니다. 사회적 대화를 제안하는 정부에게, 시행지침부터 폐기하면 생각해보겠다고 말해야 합니다. 정부가 손쉽게 몇 마디 말로 노동조합을 포섭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버리게 하고, 상층 간부 중심의 농성을 넘어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행동하는 투쟁을 조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번 시행지침도, 메가특구특별법도 진정으로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