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합뉴스>>, 5월 24일 게재 양당의 지방선거 판세 예측 지도
선거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미 지난 5월 29일과 30일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사전투표가 실시 되었습니다. 본 투표일은 6월 3일입니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전국광역단체장과 광역의원,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그리고 교육감 의 새 얼굴들이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이 과연 선거 때 던진 약속들처럼 정말 한국 사회를 더 나은 모습으로 이끌 수 있을까요?
자유주의자들이나 학교의 교과서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소중한’ 한 표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좀 더 정직한 지식인들은 세상이 최소한 더 나쁜 방향으로 가지 않게 하려면, 투표를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선거라는 제도는 어떤 사회, 어떤 상황에서 치러지느냐에 따라서 그 기능과 효용이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선거는 이 사회의 핵심 권력 중 상당 부분을 선출 대상에서 제외합니다. 국가의 물리력을 담당하는 경찰과 군대의 지휘자, 대중을 법으로 다스리고 심판하는 판사, 세금의 사용과 집행을 책임지며 국가 행정력을 움직이는 고위 공무원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회의 부를 통제하는 기업과 자산 소유자들은 선거와 아무 상관없이 자신의 힘을 행사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협조를 구하지 않는 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대표자들 역시 위 사람들과 대통령, 국회의원의 협조를 모두 받아야 뭔가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선거 때 노동계급과 대중이 원하는 사회 개혁을 말로는 약속할 수 있어도(그 말조차 잘 하지 않지만), 진정으로 개혁을 현실화하지 못합니다. 즉, 선거를 통해 우리가 선출하는 것은 이 사회 권력의 “바지사장”일 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거가 중요한 것은, 이 사회의 진정한 권력이 선출되지 않는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은폐하고, 이 사회가 대중의 지지와 동의 하에 움직이는 것처럼 정당성을 부여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들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오직 대중투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경향>>,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대표격인 사법부
그렇다면 선거에 관심을 갖지 말거나 기권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하에서 치러지는 모든 선거에 무관심해도 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자들에게 선거가 사회 변화에 무용한 것으로 입증되었다고 해서, 투쟁하는 노동계급 다수에게도 그 점이 분명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계급의 의식은 모순되어 있습니다. 투쟁이 사회변화에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노동자나 활동가도, 자본주의 사회를 폐지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이 사회에서 실질적인 쟁점으로 떠오르기 전까지는 ‘그래도 투표로 노동자들을 잘 대변하는 사람을 뽑는 게 낫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대통령이나 의회, 지방자치단체 같은 국가기구들이 현실에서 큰 힘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투쟁하는 노동계급이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를 사회주의자들이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여기는 순간, 사회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의식과 행동에 진지하게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선거가 무용하다는 주장을 듣고 금세 이에 동의할 할 수 있는 노동계급이나 활동가는 일상적 시기에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물론 이런 사람들은 매우 훌륭한 급진적 문제의식을 가진 것이고, 이런 사람들이 바로 변혁적 정치조직으로 따로 뭉쳐 있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자들이 진보적인 대중에게 ‘자본주의 선거는 별 의미가 없어’라는 선언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별 의미가 없’는 행동이 되지 않을까요?
투쟁적인 대중이 어떤 후보를 지지한다고 하면, 그것은 그 후보가 진보적 사회 변화를 대변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특정한 후보를 통해 사회 변화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자들이 그러한 의지에 공감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엄밀하게 보면 사회주의자로서 동의할 수 없는 구호(“노동자에게 성과에 따른 공정한 보상을 지급하라” 등)도 계급 의식의 발전 과정으로 이해하고, 투쟁의 맥락에서 함께 외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이 보기에 부족함이 많은 후보일지라도, 투쟁하는 대중의 정서를 기준으로 우리도 그들과 같은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습니다(때로 그 후보는 한국 민주당이나 미국의 민주당 같은 주류 거대 정당 소속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히려 선출 이후 우리의 그 후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투쟁하는 노동계급의 기대와 실망과 분노를 모두 함께 느끼며 따라가는, 같은 처지의 사람의 목소리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거날 누구를 찍느냐가 아니라 선거 이후 싸우느냐가 핵심
역설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은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투쟁이 없다면 변화도 없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당선하면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할까 안 할까 같은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당선되든, 경제가 위기 상태고 자본이 필요를 느낀다면 정치인들은 방법만 달리할 뿐 어찌되었건 제도 개악을 추진할 것입니다. 즉, 사회주의자들은 선거날 누구를 찍느냐가 아니라, 계급이 선거 이후 투쟁을 멈추느냐 확대하느냐가 사회 변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만약 계급이 어느 진보 후보를 철석같이 믿은 나머지, 스스로 행동하지 않아도 그 후보가 개혁을 선물해주기를 기다리기만 한다면 어떤 개혁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개혁을 주장하는 후보가 당선되거나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것이, 그를 지지한 대중을 고무해 선거 이후 더 많은 행동에 나서게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의 동력이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선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선거라는 무대에서 선거의 한계를 계급에게 넘어서자고 말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가능한 대중의 자신감을 강화하려 하고 그들이 선거가 아닌 스스로의 힘을 믿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선거 과정에서 계급의식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려 하는지, 이후의 계급투쟁과 선거를 어떻게 연결시킬지가 관건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선거 시기에 (극)우파 후보들의 문제점들을 비판해 개혁 대중의 정서를 속시원히 대변하고, 대중이 특정 후보에 투사하는 개혁 요구가 정당함을 주장해야 합니다. 특히, 사회 개혁을 대변하는 후보에게 표를 줄 때조차, 더 중요한 것은 선거 이후 우리가 계속해서 목소리 내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이런 주장을 설득력있게 하려면, 우리의 접근방식도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선거 자체의 한계만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선거의 쟁점과 맥락, 각 정당과 후보의 구체적 말과 행동, 대중의 정서를 모두 종합해 이해해 우리의 입장을 정해야 합니다.

ⓒ <연합뉴스>>, 울산에서 진보당은 민주당 김상욱 후보로 단일화했습니다. 이런 전략은 비판 받아야 합니다.
진보당도 진보정당의 하나로서 비판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그러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입장의 한 예는, 바로 “진보당을 포함한 진보정당에게 투표하기”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 대중에게 섣불리 선긋지 않기”입니다.
당연히도, 우리는 민주당이 아닌 진보정당을 지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주장은 운동 안에서도 당연하다고 쉽게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진보정당 중 진보당이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고, 자신을 지지하는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진보당 비출마지역에서는 민주당을 지지하라고 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당의 이런 처신을 이유로 진보당은 ‘진정한 진보정당’이 아니므로 이들에게는 표를 줘서는 안된다는 입장이 존재합니다.
진보당의 전략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 전략이 왜 문제인지는 아직 사회주의자들과 소수의 급진적 투사들 사이에서만 명백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사실 진보당을 비판하는 많은 활동가들도 민주당과의 선거 제휴에만 반대할 뿐, 사회 개혁을 위해 우리 운동이 민주당과 협조해야 한다고 본다는 면에서는 진보당과 크게 의견이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투쟁하는 대중에게 민주당을 우리 편으로 착각해서는 안 되고 그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점을 차근차근 설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당연히 이번 선거에서 진보당 전략의 부적절함을 비판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진보당을 투표조차 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 낙인찍어서는 안 됩니다. 이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장 진보당 활동가들 다수는 노동운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실제 투쟁 현장에서 함께하는 동지들입니다. 그들이 단지 선거에서 민주당과 제휴하려 한다는 이유만으로 배신자라고 주장했을 때, 현장의 조합원들이 몇 명이나 납득할까요?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이 투표권을 가진 지역에 진보정당 후보가 진보당만 존재한다면, 그 후보가 민주당과 단일화에 실패해 완주하는 상황이든, 민주당과의 단일화가 성공해 유일 후보로 남은 상황이든, 그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주당과의 전략적 제휴 문제를 빼면, 진보당이 선거에서 하는 많은 주장과 요구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투쟁하는 대중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투표의 전후에 만나는 많은 진보당 지지자들에게 민주당과 진보당의 한계에 대해 우호적으로, 그러나 분명한 비판을 병행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진보 대중 상당수가 민주당에게 왜 투표하는지 이해해야
이러한 전술 판단은, 진보당은커녕 민주당의 본질도 여전히 투쟁하는 대중에게 충분히 입증되어 있지 않다는 냉정한 진단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민주당은 ‘진보’로 인식되어 있고, 진보정당들과 약간 차이만 있을 뿐 방향은 비슷하다고 여겨집니다. 최근 이재명 정부의 인기도 상당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진보 대중이라면 진보당도 민주당도 결코 선거에서 찍지 않아야 마땅하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면, 설득력이 없을 것입니다. 최근 투쟁에서 민주당의 한계를 입증시킨 적이 없는데, 대체 어떤 경험을 근거로 민주당을 보이콧해야 한다고 노동계급에게 말할 수 있을까요. 운동의 중요한 전략으로 민주당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추구하는 ‘직업 정치인’, ‘활동가’들과, 최근 사회적 경험을 근거로 선거에서 한 표 던질 뿐인 평범한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에 대한 진보 대중의 환상 또는 ‘차악론’은 전혀 놀랍거나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국민의힘과 그 전신인 정당들, 군사독재와 냉전우익의 계보를 가진 세력에 대한 진보 대중의 반감은 오래도록 누적돼 왔습니다. 윤석열 내란 이후 진보 대중의 반감은 절정에 달했고, 국민의힘이 최근 노골적으로 극우화하면서 그 정서는 더욱 정당한 것이 되고 있습니다. 극우화된 국민의힘에 대한 반발감과 경계심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결정에 이르렀다면, 그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구처럼 국민의힘이 전통적으로 초강세이고, 추경호 같이 ‘네임드’ 극우가 출마하는 지역의 진보 대중에게서 이런 정서는 훨씬 강할 것입니다. 그런 예외적 상황에서는,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기본적 원칙으로 분명히 하되 다른 적절한 선택지가 없을 경우 민주당에 불가피하게 표를 던져야 하는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선거가 끝난 이후, 민주당을 선택한 진보 대중과도 함께 대중운동을 건설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더 급진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그들 자신의 투쟁 경험을 통해 납득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선거날 선택만을 가지고 진보 대중에 대해 섣부른 꼬리표를 붙이거나 계몽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모습입니다.

오바마는 한 때 미국 노동계급에게 변화와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시 선거에서 노동자들에게 오바마를 찍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야 했을까요? 전술은 상황에 따라 구체적이고 유연해야 합니다.
선거가 왜, 얼마만큼 중요한지 판단하기
선거는 정치인이나 활동가들에게 있어 폭넓은 대중을 향해 정치적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무대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에게 이 무대는 투쟁의 흐름과 대중 정서의 방향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들과 선거 시기를 활용해 선거의 한계를 깨자고 설득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그 무대의 활용 방식이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이 선거에서 입장을 내고 지지 후보를 정하는 것은 대중 운동 확대를 위한 전술로서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선거로, 특히 누군가를 당선시키거나 낙선시키는 것 자체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또, 선거 정당과 활동가들의 정치조직은 그 목적과 기능이 아예 다르고, 다른 방법으로 건설되고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전제 위에서 선거의 전술에 대해 고민할 때, 비로소 사회주의자들은 선거에 ‘목숨을 거는’ 오류와 선거에 대해 추상적 비판만 반복하는 오류 모두를 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치렀던 선거 중 가장 정치적 첨예함이 없었던 선거로 기억될 듯합니다. 내란과 이재명 정부의 집권이 얼마 지나지 않아 치러진 선거이고, 아직 이재명 정부에 대한 진보 대중의 실망감이 크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선거는 2028년 4월에 총선으로 치러집니다. 앞으로 2년 동안 이재명 정부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반드시 변화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의 질과 양상을 추동하는 힘은 앞으로 2년 동안의 운동에 달려있습니다. 운동의 진로에 따라, 다음 선거를 규정하는 객관적 요건도, 그에 대응하기 위한 좌파의 전술도 모두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