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아름다움’의 나라다. 명절날 친척들의 외모품평부터 직장 상사의 지적질, 엔터테인먼트 산업까지 (특히 여성에 대한)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적 강압이 사방 천지에 가득 차 있다. 이런 분위기를 기반으로 성장한 K-뷰티, 미용의료 산업의 고객들이 해외에서 찾아올 정도다. 그러나 오늘날 상품으로 소비되고 숭배되는 아름다움은 필연적으로 그 대립항인 ‘추함’을 전제로 성립한다. 추함은 흠이자 흉이고, 열등한 것으로 비하되고 배척된다. “얼굴”은, 이렇게 추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불편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다.
영화의 중심인물은 ‘똥걸레’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추한 외모를 가졌다고 하는 여성 노동자 영희다. 1970년대 방직 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었다가 수십 년 후 야산에서 백골이 된 채 경찰에게 발견된다. 시신을 인계받은 그의 아들 동환(박정민 분)은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주변을 탐문해 나간다.
추함은 누가 규정하는가?
그런데 영희를 기억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를 두고 “하여간 못생겼어”, “못생긴 년”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영희가 아닌 그 주변인들이다. 그들은 함부로 말을 내뱉고, 온갖 이기적 행동을 일삼기 때문이다. 영화 거의 마지막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영희는 오히려 사람의 선량함에 희망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캐릭터다. 그는 억압적이고 반인권적인 노동 규율 때문에 화장실도 못 가고 일하다 선 채로 변을 볼 정도로 고통받지만, 그 와중에도 사장에게 성폭력을 당한 동료 여성을 위해 항의하며 목소리를 낸다. 공장 앞에 도장 좌판을 차렸으나 시각 장애인이라고 무시당하던 동환의 아버지 영규(박정민, 권해효 분)에게도 상냥하게 말을 걸기도 한다.
영규 역시 지극히 역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시각장애인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글씨의 도장 각인을 하는 장인으로 성공하게 된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가장 아름다운 글씨체를 만들고 새길 수 있을까?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과연 아름다움이라는 감각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영규는 영희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오로지 영희의 아름다운 마음과 행동을 보고 그와 결혼한다. 영희가 영규의 존중 덕에 자신도 비로소 사람으로서 자기 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영규는 영희를 깊이 사랑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영희의 외모에 대한 ‘진실’을 영규에게 전해준 순간부터, 영규는 더 이상 영희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되고 가장 추한 모습으로 뒤틀려버린다.
‘우리 안의 폭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얼굴”은 진정한 추함이 내면에 있다는 교훈을 던지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는, 추함은 추함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추함을 규정하는 사람들로 인해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밀어붙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피하기 어려운 다른 질문들로도 이끌리게 된다. 과연 나의 시선은 지금 이 사회가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일방적, 폭력적인 방식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런 시선들로부터 내가, 또는 우리가 자유로워질 방법은 있는 것일까? 개개인의 통찰만으로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우리 안의 폭력’으로부터 해방되기에 부족하다면, 결국 우리는 그 깨달음의 힘을 다른 방향으로도 옮겨 나가야 할 것이다. 가장 자의적이고 가장 획일적인 기준들로부터 이 사회를 해방할, 더 담대한 방법과 실천에 관한 이야기들 말이다. [V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