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28일, 아닌 밤중에 오물 풍선이 날아온 지 약 열흘 만에, 윤석열 정부는 휴전선 인근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오물 풍선 사건을 계기로 다시 전형적인 남북의 치킨 게임, 강 대 강 악순환이 시동을 걸 것처럼 보인다.
다시 커진 군사적 긴장
당장은 풍선에 확성기 소리가 서로 오갈 뿐이니, 이런 상황이 곧바로 총을 쏘는 충돌까지 가게 될까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 듯하다. 며칠 앞 일에 대한 예측으로 보면 일리 있지만, 그렇다고 (국지적) 충돌 발생 가능성 자체가 계속 낮을 것이라고 본다면 이는 너무 낙관적 예측일 것이다. 최근 10여 년 만 봐도, 2010년 연평도에서 포격이 있었고, 2013년, 2016년, 2017년에 북한의 핵실험이 반복됐다. 미사일 발사도 수 차례였다. 군대 장교나 냉전 우익 정치인들이 즐겨 말하는 ‘안보 위기’는, 그들의 이익을 위해 잘못된 방향으로 이용되고 있을 뿐 그 자체로 거짓은 아니다. 출근길에 동해 상으로 미사일이 날아오는데 안전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 이 순간 휴전선 전방에 배치된 병사들과 그 인근의 주민들의 불안감은 또 얼마나 크겠는가. 평범한 사람들은 오늘의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무감각해지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최근 2-3년 동안 미사일 발사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북한 정부의 적대 행위가 더욱 적극적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번개가 잦으면 천둥이 친다는 말처럼, 이런 긴장 강화는 결국 또 다른 충돌과 희생을 낳을 수 있다. 북한이 대북방송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국 정부는 그 대응보다 더 강한 대응을 하려고 할 것이다. 이번에도 윤석열 정부는 오물 풍선을 탓하면서 대북방송 재개와 함께 “9.19 남북 군사합의 전부 효력 정지”를 선언했다. 그 다음은 또 무엇일까? 돌아보면, 1월 미국 언론 <뉴욕타임스> 역시 복수의 미국 당국자를 인용해 최근 김정은의 발언 수위가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는 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북한이 향후 몇 달 내 한국에 대해 치명적인 군사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북한이 한국을 겨냥한 적대적 발언과 군사 행위를 늘리고 있는 것은, 두 가지 상황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첫째, 북한 지배계급의 위기와 그 사회 체제의 불안정성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 핵실험 등을 구실 삼아 미국-일본-한국이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중국-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견제 행위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지배계급의 위기
돌아보면, 2019년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에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된 것도 북한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있기 때문이었다.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이 주도하는 국제적 고립 속에서, 당시 북한 정권은 더 이상은 체제의 경제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듯하다. 그들의 궁박한 처지가 김정은 정권으로 하여금 3대 독재를 이어온 최대 명분인 ‘미국 반대’의 기치를 바꿀 것을 고민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에게 더 큰 문제는 정상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후였다. 정상회담 파트너였던 미국과 한국은 다시 ‘인민의 적’으로, 북한 체제 위기의 원인으로 재인식 되어야 했다. 코로나로 인한 국경 봉쇄로 설탕 값만 5년 사이 8배 폭등했고, 김정은이 직접 연단에서 사과할 정도로 지방의 낙후 상태는 더욱 심해졌으며, 중국 지린성에서 외화를 벌던 북한 노동자들은 파업까지 벌이기 시작했다. 이런 위기 속에서 북한 정권은 대중이 ‘외부의 위협’이 누구이고 얼마나 큰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기를 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북한 정권에게 한국은 북한 내에 끈을 가진 상당수 탈북자들이 행선지로 선택하는 곳이고, 지리적 인접지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심지어 ‘한류’를 유입시키는 위험국가였다. 그래서 김정은 정권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으로 한국 대중문화를 접하는 대중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대외적으로 한국을 더 이상 ‘같은 민족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라고까지 선언했다. 이번 오물 풍선 사건의 원인으로 북한정권이 지목하는 ‘탈북자 단체의 공중 삐라 살포’ 역시, 결국 그런 삐라가 북한 대중의 인식에 미칠 영향 때문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한-미-일 동맹의 강화와 도발
그러나 북한 정권이 내부 통제를 위해 실재하지 않는 ‘외부의 적’을 “창조”하려고 한다고 할 수는 없다. 미국은 실제로 수 십 년 동안 국제적으로 북한의 경제를 제재하고, 한국 정부 및 일본 정부와 함께 북한 인근 코 앞에서 최첨단 무기를 동원해 군사 훈련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당장 2022년 12월에도 미국의 스텔스기와 전략 폭격기, 한국의 최신예 전투기 등이 모여 연합 훈련을 한반도 상공에서 진행했다.
사실 미국은 이러한 행위를 멈출 의사가 없다. 북한이 ‘불량 국가’이거나 ‘반인권 국가’여서가 아니라(미국은 한국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진지하게 문제 삼지 않았다), 중국을 지정학적-군사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한반도에 미국 군대를 주둔시키고 군사 작전을 펴려면 북한을 구실로 내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20년 사이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과의 경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기꺼이 군사력도 활용하려 한다. 예컨대, 미국은 중국에 반도체 투자와 핵심 장비 수출을 하지말라고 동맹국들에 압력을 가하는 한편, 군사적으로도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파트너인 대만을 중국이 위협공하거나 포위할 경우 즉시 군대를 파견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북한을 명분 삼은 한반도에서의 잦은 군사 훈련 역시 누구보다 중국을 향한 미국의 무력 시위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군사 행위가 북한 정권을 자극해 그들의 미사일과 핵 실험 등을 부추기는 효과를 내고 있음에도, 일본과 한국 정부는 미국 지배계급의 이러한 계획에서 빠져나올 의사가 전혀 없다. 북한을 향한 도발이 한반도와 일본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데도, 오히려 일본과 한국의 지배계급은 미국에 협력하여 자본주의 국제 질서에서 보다 중요한 위치를 점할 생각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막대한 돈을 투자해 군비를 증강시키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는 무기 수입에 14조 원을 썼고, 한국 정부 역시 2023년 국방예산을 57조 원이나 책정했다. 이 중 30조 원은 대북 선제 타격과 연관된 것으로 2025년까지 정찰위성을 5대나 지구 궤도로 쏘아 올려 북한을 ‘감시’하겠다고 한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의 오물풍선을 멈출 수 있을까
오물 풍선과 대북 확성기 방송, 또 그에 따라올 북한의 후속 대응은 이런 위험천만한 악순환 과정의 일부다. <한겨레>가 한 전문가의 말을 인용했듯이, “북한도 오물 풍선을 보내면서 한국의 확성기 재개를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북한 정권이 “‘전술 핵 보유’를 과시하고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남쪽을 향해 “소총이나 곡사포를 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은 우리를 겨냥한 북한 정권의 오물 풍선 날리기나 미사일 발사, 무력 사용 위협 등을 비판하면서도, 이를 빌미 삼아 군사적 긴장만 더 강화할 윤석열 정부의 각종 조치들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군사 충돌을 원하거나 이를 통해 이득을 볼 평범한 사람들은 한국에도 북한에도 아무도 없다. 윤석열 정부의 대응 방식은 한반도 위기의 해법이 아니라 원인 그 자체다.
더욱이 김건희 명예훼손 소송 제기, ‘바이든/날리면’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 소송 제기, 용산 집무실 앞 집회 금지 남발 등 국민의 의사 표현의 자유 침해에 앞장서 온 윤석열 정부가, 유독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지 날리기에 대해서 만큼은 헌법 상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북한이 오물 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한 순간에도, 굳이 며칠 더 기다려보지도 않고 대북 방송을 즉시 시작했다. 채 상병 사망 사건 등으로 기존 지지층까지 등을 돌리는 상황에서, 지금 윤석열은 누구보다 선명한 ‘외부의 적’을 갈망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VF]
